나의 로망, 로마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김상근 지음, 김도근 사진 / 시공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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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우리는 로마를 마음대로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로마는 우리가 만든 상상의 도시일지도 모른다” [p. 22]라고 말한다. 그런데 로마만 상상의 도시일까? 아마도 유럽의 파리도, 아메리카의 뉴욕도, 아시아의 교토도 그런 도시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우리는 그곳을 방문하고 싶어한다.

 

문제는 우리가 그곳들을 방문하면 그저 사진을 찍고, 음식을 먹고, 특산품을 사기 일수라는 것이다. 그런 여행이 잘못되었거나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보여주기 위한 여행만 한다면 그 여행은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닐까? 이 책, <나의 로망, 로마>를 고른 것은 로마를 배낭여행으로 한 번 방문한 적이 있기에, 인문학자의 시각으로 로마를 바라보고, 걷고, 느낀 기록은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테르미르 역의 지하의 맥도날드

출처: <나의 로망, 로마>, p. 24

 

나는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기차로 로마를 향했기에 저자처럼 테르미르 역을 거치지 않아 그 지하에 있는 맥도날드에서의 느낌을 알지 못한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그러나 그 위대한 로마의 출발은 맥도날드에서 한 끼 배고픔을 달래는 이방인들에 의한 것이었다니, 기대에 크게 어긋나는 것은 사실이다. 위대한 제국의 출발이 이렇게 초라했다니! 우리는 로마 여행의 첫 번째 장소 (테르미르 역의) 맥도날드에서 로마 탄생의 첫 번째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p. 26]

그렇기에 한국의 서울 역에 해당하는 테르미르 역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로마 탄생의 순간을 떠올리는 저자의 감성은 독특하고 신선했다. 하지만 ‘로마의 출발은 맥도날드에서 한 끼 배고픔을 달래는 이방인들에 의한 것’이라는 표현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 차라리 <로마사>를 쓴 “역사가 리비우스가 밝힌 대로 로마는 원래 외국인들이 만든 나라다. 가난에 찌들다가, 심지어 죄를 짓고 도망 다니다가 마지막 희망을 품고 도피해 온 사람들이 모여 세운 나라다.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사람들의 희망이 모여 로마가 탄생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수도에 성벽이 쌓이기 시작했을 때, 다른 것과 다른 사람들을 향한 경계의 빗장이 그들의 마음을 닫게 만들었을 때, 로마는 존재의 이유를 잃고 무너져 내렸다” [pp. 42~43]처럼 풀어 쓰거나 ‘~ 배고픔을 달래는 [이들과 같은] 이방인들에 의한 것’이라고 보충하는 편이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팔라티노 언덕에서 내려다 본 포로 로마노(Foro Romano)

출처: <나의 로망, 로마>, p. 75

 

포로 로마노(Foro Romano)! 언뜻 보면 유채꽃이 피어있던 경주의 황룡사 터처럼 무너진 건물 잔해가 이리저리 흩어진 폐허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이곳에서 다른 것을 보고 있다. 포로 로마노, 즉 로마 광장은 바로 이 로마 공화정의 난제가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곳이다. 권력의 질주를 막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이곳에서 정교한 법률적 장치를 고민했고, 어떤 사람은 종교적 믿음을 이용하려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제어할 수 없는 권력의 찬탈자에게 암살의 단검을 휘두르는 마지막 선택을 하기도 했다.” [p. 72]

그렇기에 저자는 이곳에서 로마 공화정 최후의 수호자’라는 마르쿠스 톨리우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B.C. 43)를 떠올린 것이 아닐까? “포로 로마노의 한 건물 외벽에 키케로의 잘린 혀와 팔이 효수되었을 때, 역사가들은 그 잔혹했던 장면을 위대한 로마 공화정의 마지막 사건으로 간주한다. 로마 공화정은 키케로의 시체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p. 73]는 추도의 말은 아마도 그래서 나온 것이리라.

 

판테온 내부에서 태양을 상징하는 오쿨루스를 올려다 보는 모습

출처: <나의 로망, 로마>, p. 162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이하 ‘미켈란젤로’)가 ‘천사의 작품’이라고 극찬한 판테온은 유현준 교수가 TV프로그램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얘기했듯이 아치(Arch) 구조와 화산재 등을 이용한 저밀도 콘크리트 등이 특징인 건축물이다.

만신전(萬神殿)이라는 이름 그대로 여러 신을 모시는 신전으로 출발한 이 건물은 “거대한 황실의 신전인 동시에 우주의 조화를 지상에 펼치고 있는 거대한 해시계이며, 황제들의 신격화를 위한 거대한 정치적 무대였단 것이다.” [p. 163] 한국으로 치면 역대 국왕 부부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례를 봉행하는 사당(祠堂)인 종묘(宗廟)와 제천의식(祭天儀式)을 지내는 환구단(?丘壇) 등이 결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판테온을 세운 사람은 로마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의 오른팔이자 절친한 친구이며 사위인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Marcus Vipsanius Agrippa, B.C. 63(?)~ B.C. 12, 이하 ‘아그리파’)로 우리에게 친숙한 아그리파 석고상의 모델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판테온에서 아그리파가 묻힌 아우구스투스 영묘(靈廟)까지 이야기를 이어가며, 한 마디를 덧붙인다. “로마에서 무엇인가 큰 뜻을 품은 사람들은 두 사람[아우구스투스와 아그리파]의 우정에 주목해야 하리라. 캄푸스 마르티우스의 정중앙에 있는 판테온에서 출발해, 트레비 분수를 거쳐 아우구스투스 영묘까지 걸어가는 데 직선거리로 30분이면 충분하다. 서둘러 걷지 말고 두 사람의 우정을 생각하며 천천히 그 길을 걸어보자. 참된 우정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될 것이고, 우리가 꿈꾸는 큰 뜻을 이루려면 소중한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먼 길을 가려면 그 먼 길을 함께 갈 수 있는 소중한 길동무가 필요하다.” [p. 172]

 

콜로세움

출처: <나의 로망, 로마>, p. 210

 

콜로세움은 베스타시누스 황제의 놀라운 정치적 판단력을 보여준다. 그는 로마 시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공짜 빵을 바랐고, 원형 경기장에서 피를 튀기며 싸우는 격투사의 구경거리를 원했던 것이다. 콜로세움은 로마 제국 황제가 처했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 거대한 원형 경기장에서 울려 퍼지는 시민의 환호가 멈추는 순간 황제의 권력도 추풍낙엽처럼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진다는 사실 말이다.” [pp. 210~211]

로마 황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한국의 대통령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처럼 저자는 ‘1장 세르비우스의 성벽’에서 ‘11장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까지 로마를 걸으며 로마 제국의 창건에서 멸망까지의 역사와 각각의 장소와 관련된 고전 등을 언급한다 예를 들면, 포로 로마나와 키케로의 <의무론>, 아우구스투스 영묘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콜로세움과 타키투스의 <역사>, 산탄젤로 성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명상록> 등이 있다.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의 <아폴론과 다프네>

출처: <나의 로망, 로마>, p. 383

 

물론 로마에는 고대 로마 제국의 흔적만 있지 않다. ‘12장 성베드로 대성당’부터 ‘15장 브르게세 미술관’까지는 로마의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를 더듬어 보는 자리이다. 르네상스 시기를 대표하는 라파엘로 산지오(Raffaello Sanzio, 1483~1520)의 <아테네 학당>이 있는 바티칸 박물관과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이 그려진 시스티나 성당 등이 있고,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 1598~1680)의 <다비드>와 <아폴론과 다프네> 조각상이 있는 보르게세 미술관 등이 그것이다.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나를 낯설게 만들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저자가 “우리는 로마에서 ‘재탄생’을 경험한다. 로마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다시 태어난 우리 자신이다. 그러니, 로마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그것은 “인생에는 오직 의무밖에 없단 말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럼 로마가 그 질문에 답해줄 것이다.” [p. 404]

다만, 그런 질문을 가지고도 “로망만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수탉의 여행”[p. 406]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것으로 보아 저자는 힐링의 여행보다 배움의 여행을 권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를 한 마디로 보여주는 것이 독일의 르네상스 문학을 탄생시킨 세바스티안 브란트(Sebastian Brant, 1459~1521)의 ‘바보 배(Das Narrenschiff)’라는 시다.

 

바보 배

"바보라네, 여러 나라를 두루 여행하고도

바른 행실과 이성을 깨치지 못한 사람은.

처음 날아갈 때는 거위였는데,

고향에 돌아온 걸 보니 수탉이로구나.

파비아, 로마, 예루살렘에 다녀왔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네.

이성과 이모저모 지혜의 덕목을

배워와야 진짜배기라네.

나는 그런 여행을 권하고 싶네” [p. 406]

 

나는 저자와 달리 여행을 떠나 로망만 안고 힐링하는 수탉의 여행[관광의 여행]이나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나와 우리를 돌아보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거위의 여행[사색의 여행] 모두 좋은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그것이 로마 여행이라고 해도 사람마다 처해있는 상황이 다른데, 굳이 거위의 여행만 권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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