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건축, 잊힌 거리 - 부산 근대건축 스케치
최윤식 지음 / 루아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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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서 근대의 기점을 어디로 잡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지만, 일본에 의해 강화도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내적으로 근대화가 시작되고 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는 1876년도 주요한 후보 가운데 하나이다.

동래부(東萊府) 관할이었던 부산포(釜山浦)가 도시로서의 틀을 잡게 된 것이 앞에서 언급한 강화도 조약에 의해 개항장으로 지정된 이후이니 어떻게 보면  ‘부산(釜山)’이라는 도시의 존재감은 근대도시로 형성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전쟁 등을 거치면서, 또 경제개발과 산업화의 과정에서 근대도시 부산의 거리와 건축물은 훼손되거나 소멸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자는 “오래된 것이 낡은 것이 아니라 쓰지 않은 것이 낡은 것이다. 그 낡은 것조차 얼마 남지 않았으니 뒤를 이을 부산 사람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p. 5]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 아마도 그렇기에 1910년대 부산항과 1926년 무렵의 광복로, 1930년대 대청정 거리 모습에서 시작해 1943년 화재로 소실된 태평관,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로 소실된 옛 부산역, 공회당 그리고, 부산우편국, 1979년에 철거된 부산세관, 1983년에 헐린 상품진열관, 마지막으로 현재 보존되고 있는 석당박물관, 일신여학교, 임시수도기념관, 부산근대역사관 등에 대한 68점의 세밀화를 우리에게 건네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1910년대 부산항

출처: <사라진 건축, 잊힌 거리>, pp. 8~9

 

부산우편국

출처: <사라진 건축, 잊힌 거리>, pp. 72~73

 

석당박물관

출처: <사라진 건축, 잊힌 거리>, pp. 84~85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노화되어 간다. 도시의 거리와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거리와 건축물에는 그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아갔던 사람들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단순히 우리가 당장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그러한 공간들을 계속해서 파괴하기만 하면 오래 전부터 이루어졌던 자연 파괴의 대가를 지금에 받는 것처럼 또 다른 형태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저자가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있는 건축물, 잊혀진 거리를 세밀화의 방식으로 남기는 것은 벌목으로 더 이상 나이테가 생기지 못하는 나무처럼, 그 공간에 쌓인 추억과 이야기가 휘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사라진 건축, 잊힌 거리>는 건축에 관심 있거나 부산의 역사에 흥미를 느끼는 이에게는 큰 선물이 되리라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책등이 없는 누드 사철 제본으로 되어 있어 68점의 세밀화를 보다 편하고 제대로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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