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날마다 축제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주순애 옮김 / 이숲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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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날마다 축제>

 

<파리는 날마다 축제>을 읽으면서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1)에서 주연인 길 역을 맡은 오웬 윌슨(Owen Wilson)이 된 기분이었다왜냐하면 이 책은 Lost Generation을 대표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 이하 헤밍웨이’)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배경과 비슷한 시기[1921~1926]의 파리에 거주하면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회고록이기 때문이다.

, <파리는 날마다 축제>는 헤밍웨이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헤밍웨이의 이동경로에 따라 파리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그렇기에 저자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느낌도 든다.

 

 

가난마저도 추억이 되는 도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헤밍웨이는 갓 결혼한 아내 해들리 리처드슨과 함께 파리로 향했다비록 그가 <토론토 데일리 스타>의 해외 통신원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는 있었지만가난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작가 지망생 혹은 무명의 작가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다이 무렵의 헤밍웨이가 살던, “카르디날 르무안 거리에 있는 방 두 칸짜리 우리 아파트는 온수도 안 나오고 제대로 된 화장실 시설도 없이 간단한 변기통만 있었지만그래도 미시간의 오막살이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p. 35]

 

불편하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베를린의 <데어 크베어슈니트>에서 보내온 원고료 600프랑을 받고 생 제르맹 거리의 리프(Lipp)에서 가졌던 한 끼 식사를 수십 년이 지나도록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왠지 짠했다.

이제 어디 가서 식사나 할까나는 리프 Lipp에 가서 한잔하면서 식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략 ~

맥주는 시원하고 맛있었다올리브유를 뿌린 감자 샐러드는 적당히 짭짤하고쫀득쫀득했으며 올리브유의 향미도 감미로웠다나는 통후추를 가루 내어 감자에 뿌린 다음빵을 올리브유에 적셨다첫 잔을 시원하게 들이켜고 나서그 다음부터는 천천히 마시면서 식사했다감자 샐러드를 다 먹고 나자한 접시 더 주문하면서 세르벨라를 추가했다세르벨라는 굵은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를 세로로 자르고 그 위에 겨자 소스를 끼얹은 요리다.

올리브유와 소스를 빵으로 깨끗하게 닦아 먹은 다음나는 맥주가 미지근해질 때까지 천천히 다 마시고는 반 리터짜리 맥주를 더 주문하고 웨이터가 맥주통에서 맥주를 뽑아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이번 것은 1리터짜리보다 더 시원했다나는 단숨에 잔을 반쯤 비웠다.” [pp. 83~84]

SNS에 사진을 올리고 기록하는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몇 십 년 전이 아니라 1년 전 식사도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도대체 얼마나 평상시에 제대로 먹지 못했기에 저 한 번의 식사가 그렇게 인상적이었을까?

문득 김소운의 <가난한 날의 행복>에 실린 실직한 남편이 직장 다니는 아내를 위해 따뜻한 밥 한 그릇에 간장 한 종지를 마련해서 왕후(王侯)의 밥걸인(乞人)의 찬이라는 메모를 남긴 한 가난한 신혼부부 이야기가 떠오른다.

 

파리에서의 삶은 힘겨웠지만헤밍웨이는 굴복하지 않았다. “당시 우리는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스스로 자부했으며부자들을 경멸하고 불신했다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속옷 대신 스웨터를 입는 것이 내게는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그런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자들뿐이라고 생각했다우리는 값싼 음식으로 잘 먹고값싼 술로 잘 마셨으며둘이서 따뜻하게 잘 잤고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pp. 50~51]고 얘기한다.

 

나아가 그는 파리는 내게 언제나 영원한 도시로 기억되고 있습니다어떤 모습으로 변하든나는 평생 파리를 사랑했습니다파리의 겨울이 혹독하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가난마저도 추억이 될 만큼 낭만적인 도시 분위기 덕분이 아닐까요아직도 파리에 다녀오지 않은 분이 있다면 이렇게 조언하고 싶군요만약 당신에게 충분한 행운이 따라주어서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에 당신이 어딜 가든 늘 당신 곁에 머무를 거라고바로 내게 그랬던 것처럼.” [p. 361]라고 말했다.

 

 

나는 글을 쓰려고 태어났고지금까지 글을 써왔으며앞으로도 글을 쓸 것이다.

 

이 시절 헤밍웨이의 동료였던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Fitzgerald, 1896~1940, 이하 피츠제럴드’) 헤밍웨이에게 팔리는 글을 쓸 것을 권유했다헤밍웨이에 따르면, “[피츠제럴드]는 내게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가 원하는 단편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 잘 알고 있다면 그런 잡지사에 팔기에 알맞은 단편 원고 쓰는 방법을 일러 주었다일단노력을 기울여 좋은 단편을 써놓은 다음잡지사가 원고를 청탁하면 그 잡지사가 원하는 대로 잡지의 판매부수를 올릴 만한 작품으로 다시 수정해서 원고를 넘긴다고 했다그의 말에 충격을 받은 나는 그것은 몸 파는 여자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했다그는 그렇긴 해도좋은 작품을 쓸 돈을 마련하려면 잡지사에서 돈을 벌어야 하므로 어쩔 수 없다고 했다나는 그에게 작가라면 자기 능력이 닿는 데까지 가장 좋은 글을 써야 하면그렇지 않는다면 자기 재능을 파괴하게 되리라고 말했다그는 자기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팔릴 작품을 쓰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 자기 재능에 해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진짜 작품을 먼저 써놓았기에 설령 그것을 파괴하고 변형한다 해도 자기에게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pp. 170~171]

 

하지만 가난해도 훌륭한 글과 문장에 대한 헤밍웨이의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다그래서 그는 피츠제럴드와 달리 나는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절대로 생계의 수단으로 소설을 써서는 안 될 것이다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고다른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을 때 나는 소설을 쓸 것이다따라서 나는 더 많은 압박이 쌓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기다리는 동안은 우선 내가 잘 아는 주제에 대해 긴 글을 써봐야 할 것” [pp. 87]이라고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슬럼프가 와서 새로 시작한 글이 전혀 진척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그럴 때면 벽난로 앞에 앉아 귤 껍질을 손가락으로 눌러 짜서 그 즙을 벌건 불덩이에 떨어뜨리며 타닥타닥 튀는 파란 불꽃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그렇지 않으면 창가에서 파리의 지붕들을 내려다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걱정하지 마넌 전에도 늘 잘 썼으니이번에도 잘 쓸 수 있을 거야네가 할 일은 진실한 문장을 딱 한 줄만 쓰는 거야네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문장 한 줄을 써봐.’ 그렇게 한 줄의 진실한 문장을 찾으면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계속 글을 써나갈 수 있었다. 그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p. 18]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실린 췌장암에 걸려 복수(腹水)를 빼내고 있던 에반 쉬프맨(Evan Shipman, 1901~1957)과의 대화는 헤밍웨이의 꾸준히 노력하는 글쓰기를 한 마디로 압축시켜 보여준다.

“ “헴글 쓰는 것잊지 않을 거지?

“물론이지.” 내가 대답했다“내가 글 쓰는 걸 잊을 리가 있나.

나는 전화를 걸려고 밖으로 나갔다물론이지하고 생각했다글 쓰는 걸 절대로 잊지 않을 거야나는 글을 쓰려고 세상에 태어났고여태까지 글을 써왔으며앞으로도 다시 글을 쓸 거야.” [p.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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