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으로부터의 역사가 어려운 이유
과거에는 기득권층이 문자로 전승해온 텍스트를 그대로 기록하고 해석하는 소위 ‘술이부작(述而不作)1)’의 방식으로 역사를 서술했다. 때문에 역사의 대부분을 왕이나 귀족 같은 지배층의 이야기가 차지했다.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운 역사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왕과 귀족 중심의 ‘위로부터의 역사’가 아닌 민중 중심의 ‘밑으로부터의 역사’를 주장하고 싶어도 그 바탕이 될 텍스트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점도 한 몫 한다.
<고양이 대학살>을 번역한 조한욱 교수가 ‘옮긴이 서문’에서 “무명 인사들이 남겼거나 그들에 대해 서술한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서술을 체념적으로 포기한 채 그들을 그늘 속에 남겨두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p. 8]고 말한 것도 같은 이야기인 셈이다.
<고양이 대학살>은
여기서 이 책 <고양이 대학살>의 가치가 드러난다. 이 책의 저자인 로버튼 단턴이 “<신데렐라>나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사람들이 흔히 보아왔지만 지나쳤던 농민들의 이야기에 역사적 차원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복원” [p. 8]시켰기 때문이다. 이 책의 1장 ‘농부들은 이야기한다: 마더 구스 이야기의 의미’는 바로 이런 점에 충실하다. 즉, 이 시대 민담에 대한 해석을 통해 18세기 프랑스 농민들의 물질적 여건과 생활, 그리고 정신세계에 대해서 일종의 ‘복원’ 혹은 ‘재구성’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2장 ‘노동자들은 폭동한다: 생-세브랭 가(家)의 고양이 학살’은 극히 드문 피지배층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1730년대 파리 생-셰브랑 가의 인쇄소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던 니콜라 콩타는 ‘고양이 대학살’이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을 기록했다. 우리에게는 단순한 동물 학대로 보이는 “고양이 학살이 노동자들에게 재미있었던 이유는 명백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즉 그것은 그들이 '부르주아'에게 반격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고양이 울음소리로 괴롭힘으로써 그들은 '부르주아'로 하여금 고양이를 학살하도록 위임하게 부추겼고, 다음으로는 학살을 이용하여 그를 상징적으로 재판에 회부하여 불공정한 경영을 이유로 단죄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또한 그것을 마녀 사냥으로 이용하였다. 그것은 여주인이 가장 아끼던 고양이를 죽일, 그리고 그녀 자신이 마녀였다는 것을 암시할 구실을 제공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고양이 학살을 샤리바리[Charivari]2)로 변형시켰다. 그것은 여주인에게 성적인 모욕을 줌과 동시에 남편을 오쟁이진 사람으로 조롱할 수단으로 작용하였다.” [pp. 146~147]
즉, 조선 시대의 탈춤처럼 부르주아가 애지중지하는 고양이를 학대 혹은 학살하는 과정과 이를 재연하는 행위를 통해 지배층[부르주아/양반]과 피지배층[인쇄공/농민]의 갈등을 ‘모욕’과 ‘풍자’라는 수단을 통해 해소한 것이다. 따라서 지배층은 ‘고양이 학살’과 그 재연을 허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갈등 해소 수단을 제제하다가 체제 전복으로 이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3장 ‘한 부르주아는 그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한다: 텍스트로서의 도시’는 <1768년에 만든 몽펠리에 시의 상태와 설명(이하 ‘설명서’)>이라는 익명의 시민에 의한 기록에 근거하고 있다. ‘설명서’를 저술한 익명의 시민은 “한 측으로는 귀족과, 다른 한 측으로는 평민들과 자신을 구분시켰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기 주장에 공개적으로 집착하여 매 페이지마다 확인되고 있는 그의 공감대는 도시 사회의 중간 범위 어디엔가 그를 위치시킨다. 즉 그는 (‘구세대의 부르주아’에 속하는) 의사, 법률가, 행정가, 금리 생활자 등 대부분의 지방 도시에서 인텔리겐치아를 형성하였던 자들에 동조하였던 것이다.” [p. 164]
뼛속까지 부르주아였다고 자처하는 익명의 시민은 “대표자를 뽑거나 국가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자율적인 개인들로 구성된 정치적 집합체를 상정할 수 없었다. 그는 집체적 집단이라는 틀 속에서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 지역에서 베르사유에 대표단을 파견하였을 때, 그 대표단은 신분별로 왕에게 말해야 했다는 것은 그에게 완전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하나의 신분으로서 귀족의 용도를 느끼지 못했지만 그는 사회의 자연적인 조직으로서 신분의 위계 질서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또한 그는 부르주아 계층이 상당수 작위를 받았던 것은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였다. 진정으로 그를 경악시켰던 것은 평민의 ‘부르주아화’였다. 왜냐하면 “제2신분”에 대한 최대의 위협은 “제3신분”과의 접경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 [pp. 187~188]
이를 위협이라고 느낀 부르주아 가운데 하나인 익명의 시민은 신분간의 경계선을 강화시킬 것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폭동에 몰입하는 난폭한 무리인 대학생들은 매 학부마다 특수한 교복을 입어 정상적인 시민들과 섞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공원과 산책로는 특정의 시간에 특정의 집단에게 예약되어야 한다 특정 직종의 장인들은 특정의 지역에 살도록 요구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인들은 그들의 의복 위에 특징적인 기장을 달도록 강요되어야 한다” [p. 195]와 같은 일이다.
이런 식으로 같은 부르주아 입장에서 바라 본 ‘부르주아’를 소개하는데, 의외로 진보적이라고 간주되는 18세기 부르주아가 복고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4장 ‘한 경찰 수사관은 그의 명부를 분류한다: 문필 공화국의 해부’은 서적 거래 수사관인 조세프 테므리가 1748년부터 1753년까지 파리의 문필가 501명에 대한 보고서를 다루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18세기 중엽에 문필 인구는 제어하기 힘들었을지는 몰라도 혁명적은 아니었다. 그 대부분은 <메르퀴르>의 서평이나 프랑스 국립 극단의 단원 자리나 학술원의 회원 자리를 얻으려고 애썼다.” [p. 2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필가에 대한 절대왕정의 입장은 “무신론이 왕의 권위를 침해한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자유 사상가들은 중상가들이나 마찬가지의 위협을 이루고 있었다” [p. 262]고 하는 조세프 데므리의 인식을 통해 엿볼 수 있다.
5장 ‘철학자들은 지식의 나무를 다듬는다: <백과전서>의 인식론적 전략’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백과전서>라는 텍스트가 아닌 그 안에 담긴 의도를 얘기하고 있다.
계몽 사상 최대의 텍스트인 <백과전서>는 모든 것에 대한 잡동사니 같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기에 이것이 왜 18세기에 그렇게 큰 반향(反響)을 일으켰는지 의아해하기 쉽다. 하지만 “분류 정리를 한다는 것은 권력을 행사하는 일이다.”[p. 272]라는 말에 동의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와 장바티스트 르롱 달랑베르(Jean-Baptiste le Rond d’Alembert, 1717~1783)는 인간 지식의 체계를 분류하고 정리하는 방식을 통해 구체제와의 단절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6장 ‘독자들은 루소에 반응한다: 낭만적 감수성 만들기’에서는 라로셸의 부유한 상인인 장 랑송이 서적 도매상에 보낸 주문목록과 잡담을 통해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의 소설 <신(新) 엘로이즈>에 대한 반응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장 랑송 이외의 다른 독자들의 반응을 추가해서 이들이 어떤 공통감정을 가졌는지 보여주는데, 소설 속 인물이 실존하는 것처럼 저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18세기 독자들의 몰입에 당혹스러우면서도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현대의 드라마 시청자의 모습이 겹쳐져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고양이 대학살>은 하나의 일관된 주제를 서술한 것이 아니라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일부를 논한 6편의 논문을 엮은 책이다. 그래서 읽다 보면 다소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있다. 게다가 이 책이 두괄식 혹은 미괄식으로 결론을 내지 않아 다 읽고도 다 읽은 것 같지 않은 찜찜한 느낌이 들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구전(口傳)되어 온 민담(民譚), 경찰의 보고서, 루소의 소설 등을 통해서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기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살아갔는지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좀 더 상세하게 말하자면, 일반 민중들의 삶과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고 있었는지, 귀족들과 부르주아들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고 계급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나아가 지식인이 등장하기 시작할 무렵 공권력은 그들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고, 계몽주의가 어떻게 기존의 것들과 선을 긋기 시작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역사가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던 자료를 토대로 당시의 사회를 분석하는 것은, 누구도 쉽게 다루지 않았던 것들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신선한 자극이 된다. 비록 자료의 애매한 부분 때문에 저자의 모든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역사는 암기과목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머리가 생각하고 이해하기 위해 달려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1) 술이부작(述而不作): 옛 글을 인용하여 기록했을 뿐 스스로 창작한 것은 아니다.
2) 샤리바리: 성(性), 정치, 경제, 종교 등과 관련하여 공동체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문제가 생겼을 때 이것을 소란과 조롱, 폭력 등으로 처벌하는 유럽의 민중적 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