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 - 서울을 다시 짓는 건축가, 황두진의 나의 도시 이야기
황두진 지음 / 해냄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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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인가

 

남북 분단과 한국 전쟁이라는옆구리에 깊이 새긴 상흔(傷痕속에서 우리는 쓰러지지 않고 일어났다물론 그 짧은 시간에 일어나기 위해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의 희생이 요구되었다더불어 우리만의 확고한 정체성도 잃어야 했다.

때문에 특색 없는 아파트와 빌딩이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한회색도시 서울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화상 같은 공간이 되었다물론 김영삼 대통령이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했듯이 우리도 아파트와 빌딩 같은 건물을 무너뜨리고 다시 세울 수는 있다하지만그런다고 해서 개화기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수천 번도 넘게 우리 스스로 내팽개친 우리의 정체성이 되돌아 오지는 않는다지금이라도 우리의 정체성을 쌓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솔직히 잘 모르겠다다만예일대 건축학교를 졸업하고 미국건축사 자격을 획득했지만한옥을 현대건축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일련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이라면 뭐라도 힌트를 줄 것 같았다그래서 선택한 것인 서울 토박이 황두진이 자신이 살았던 동네와 집들을 떠올리며 쓴 개인의 역사이자 서울 변천사인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이다물론 이런 류의 책이 처음인 것은 아니다얼마 전에 읽었던TV프로그램 <알쓸신잡시리즈로 인기를 얻은 건축가 유현준의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도 저자의 어린 시절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살았거나 특별한 추억이 있는 공간들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


,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는 서울에서 태어나지금도 서울에 사는서울 중에서도 강북 통의동에 사는 ‘동네’ 건축가 황두진이 얘기하는 서울이야기이다자신의 어렸을 적 서울을 얘기하면서 그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느꼈던 서울의 기억과 지금의 서울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어 청바지에 기타 하나 들고 노래하는 포크 가수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무엇보다도 거창하거나 난해한 건축 이야기가 아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서울이라는 도시는 나에게 이런 곳이었습니다라고 읊조리는 느낌이어서 더욱 그렇게 느낀 것 같다.



세간의 관심이라는 독()


그러면서도 건전한 상식인이라면 말할 수 있는 일침(一針)도 몇 개 늘어놓아초밥의 와사비처럼 톡 쏘는 느낌을 안겨준다.

통의동을 포함한 창성동 및 효자동 일대는 여러 가지 점에서 경복궁 반대쪽인 사간동과 삼청동 등 소위 북촌 지역과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여기에는 북촌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도 없고유수한 화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것도 아니다서울시가 야심 차게 추진했던 도심 역사지구 보존사업에서도 이 지역은 빠져 있다한마디로 이렇다 할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지역인 셈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축복인지도 모른다지금까지 그 세간의 관심이라는 것이 한 동네를 얼마나 순식간에 망쳐놓는지 보아왔기 때문이다인사동은 이제 사람이 살 수 없는 동네가 되었고풍운아 박영효의 집은 남산 한옥마을로 옮겨졌다가회동 일대는 한옥보존지구에서 해제되는 즉시 개발의 열풍이 불어 닥쳤다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공룡 같은 굴착기에 의해 수많은 한옥들이 쓸려나가는 광경을 잊지 못한다그리고 드라마 <모래시계>로 인해 정동진은 더 이상 한가로운 바닷가 기차역이 아니다무조건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이 진보며 발전이라고 믿었던 그 시기에그나마 통의동을 지켜준 것은 엉뚱하게도 이웃의 청와대였다.

남북분단이라는 민족의 비극이 세계적인 자연생태환경인 비무장지대라는 뜻밖의 결과를 낳았다면청와대를 중심으로 하는 권력의 강박적인 자기보호본능이 통의동이라는 도시적 타임캡술을 만들었다.” [pp. 135~136]

저자가 아쉬워했듯이 번듯하고 유서 깊은 집들이 개발과 확장이라는 이름으로 무수히 사라졌다이러한 집 한 채가 사라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살아있는 화석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다게다가 이 순간에도 재건축 승인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무기로 아파트 1개 동은 미래유산이라는 이름으로 보존하고 있다1) 2)고 한다뭔가 반대로 된 것이 아닐까차라리 오래된 건축만큼은 함부로 부수거나 개조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법과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황당한 상황은 저자가 서울 성곽 답사를 시도하면서 맞이해야 했다김중업이 설계한 서산부인과김수근이 설계한 타워호텔을 보면서 그는 김중업과 김수근이들은 우리나라 근대 건축의 두 거장이자 누구보다도 한국적인 것에 대한 논의를 자기의 건축에서 중요한 담론으로 제시했던 장본인들이다그러면서 정작 자신들의 작업 대상지와 직접 관계된 한국건축의 중요한 역사적 유산인 서울성곽에 대해서 이들은 아무 말도 남기고 있지 않다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p. 251]라고 탄식해야 했다.

뿐만 아니다홍파동의 한 다세대주택의 주차장 기둥 사이로 서울성곽의 하부가 보이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마주치기도 해야 했다풍납토성 해자 터에 태양광 주택단지 철거에 따른 건축 폐기물을 매립하라고 지시3)한 공무원에 버금갈 과오가 아닐까?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이 책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통의동도 가 보고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와 내가 거쳐온 동네들을 되돌아 보고 싶다.

 

p.s. 북촌에 있는 1930년대 한옥을 개보수한 무무헌(無無軒), 설계도를 그린 후 그것에 충실하게 낡은 한옥을 해체하고 재구성한 취죽당(翠竹堂), 1936년에 지어진 서촌의 한옥을 젊은 신혼부부의 살림집으로 리노베이션한 애지헌(愛智軒등 저자인 황두진의 한옥 프로젝트의 산물도 보고 싶다.




1) 흉물 아파트가 미래 유산?... 강남 재건축 둘러싼 논란 가열”, <매일경제신문> 20.09.25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20/09/990869/]

2) “금남로 아파트 재개발 문화자원 보존.활용 외면’ “, <광주매일신문> 20.08.31 

 [http://m.kjdaily.com/article.php?aid=1598871549522570005]

3) “송파구청 직원 풍납토성에 쓰레기 불법 매립”, <YTN> 13.02.02

 [https://www.ytn.co.kr/_ln/0103_201302021424127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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