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기타오지 로산진?
<무타협 미식가>. 왠지 ‘비타협 민족주의자’처럼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가시밭길에 서슴없이 발을 들여놓을 사람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드는 제목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누구에 관한 책일까? 일본의 전설적인 미식가인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 魯山人, 1883~1959, 이하 ‘로산진’]에 관한 책이다.
‘기타오지 로산진’. 처음 듣는 이름이고,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니, 본명은 후사지로[房次郞]로 일본의 화가, 도예가, 서예가[書道家], 칠공예가[漆藝家], 요리사[料理家], 미식가 등 다양한 얼굴을 가진 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분야에 글을 남겼고, <무타협 미식가>는 그 중에서 음식과 요리, 미식 철학이 담긴 글을 취사 선택해 엮은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옛 문인들의 글을 모아 문집(文集)을 펴낸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로산진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4개월 전에 자살하고, 어머니는 태어난 지 이레도 지나지 않은 로산진를 핫토리[服部] 순사의 소개로 알게 된 농부에게 양자(養子)로 보냈다. 이후 스무 살에 도교로 가기까지 여러 집을 떠돌며 살아야 했다. 1904년 스물한 살의 나이로 일본미술협회전에 <천자문(千字文)>을 써내 입상한 뒤 서예와 전각 분야에서 명성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대에 이르기까지 궁핍하게 살아야 했다. 1921년 벤리도우[便利堂]의 나카무라 다케시로[中村 竹四郎, 이하 ‘다케시로’]와 함께 회원제 식당 ‘미식구락부(美食俱樂部)’를 열었고, 1925년에는 도쿄 중심부에 자신의 미식 철학을 집대성한 ‘호시가오카 사료[星ケ岡茶寮]’를 만들었다. 이때가 미식가로서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1930년대에 조선을 사랑하는 민예운동가로 알려진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에게 독설을 퍼붓는 등 제멋대로 행동하고, 자금의 낭비도 있어서 호시가오카 사료의 사장 다케시로에게서 해고된다. 어떻게 보면 애플을 만든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가 애플에서 축출당했던 것을 연상시키는데, 의외로 두 사람은 양자출신이라든지 외골수라든지 여러 면에서 닮았다.
미식(美食)이란 무엇인가?
로산진은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요리의 근본이 식재료를 살리는 데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p. 50]고 했다. 또한, “맛있는 음식은 무엇보다 재료의 맛이다. 재료가 나쁘면 아무리 솜씨 좋은 요리사라도 어쩔 수 없다” [p. 59]고 해서 식재료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는 “요리하는 사람이 식품 그 자체가 가진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요모조모 요리를 궁리하고, 요리법을 제대로 개발해 알맞게 요리한다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은 영양 공급은 물론,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고, 건강과 평안을 선사한다. 제대로 만든 요리는 그 자체로 예술이며 삶에 재미를 더한다.” [p. 46]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미료의 사용에 엄격해질 수 밖에. 그의 입장에서는 “오늘날처럼 쓸데없이 설탕을 부어 재료의 본 맛을 잃게 만들고서는 조금도 돌이켜 볼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개탄을 금치 못하겠다. 양식은 설탕 맛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면서 서양인이 하는 일이라면 무턱대고 받아들여 그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따라 하려는 풍습은 분별 있는 사람들을 빈축을 산다. 설탕은 식재료의 뒤떨어진 맛을 감출 때 쓰는 것으로, 설탕을 사용하는 일은 재료의 질이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꼴이다. 설탕과 화학조미료를 줏대 없이 사용하는 습관은 마땅히 삼가야 한다” [pp. 25~26]고 하는 것도 당연하다.
식재료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로산진은 요리에 맞는 식기의 필요성도 강조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당장 그런 도구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 [p. 24]는 변명이 튀어나온다. 이에 로산진은 “식기를 만드는 사람이 식(食)의 고상함과 속됨을 모르고, 요리하는 사람이 어떤 음식에 어떤 식기를 써야 하는지도 분별하지 못한다. 사람이 요리와 식기를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개나 고양이와 다름없지 않은가” [pp. 43]하고 말한다. 한 번뿐인 인생, 하루에 한끼라도 제대로 먹어야 하지 않을까?
“요리(料理)는 헤아릴 ‘요(料)’에 이치 ‘리(理)’자를 쓴다. 그만큼 합리적이어야 한다. 어떠한 음식이든 도리에 맞지 않으면 안된다. 요리는 음식을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일이다.
갓포(割烹), 즉 조리는 자르거나 삶는 것만을 일컬을 뿐 음식의 이치를 헤아리는 일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요리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치를 헤아리는 일이므로 부자연스럽게 음식을 만들거나 무리하면 안된다” [p. 57]고 요리와 조리를 구분하는 로산진의 입장에서 미식(美食)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즐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로산진이 말하는 미식가(美食家)도 단순히 음식 맛만 느끼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 음식과 식기와의 조화, 손님과 주인의 대화, 가게 분위기 등 맛을 둘러싼 모든 풍경도 두루 살필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식사의 효율성을 따지는 입장에서는 로산진의 말이 가진 자의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요리를 단순한 기술로 보지 않고, 하나의 예술로 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로산진은 “단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아름답고, 건강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삼시 세끼 식사를 하고, 맛있는 음식만 먹고, 좋아하는 음식만 먹어라. 시시한 식기로는 밥을 먹지 않는다는 의지를 품고 인생을 깊고 의미 있게 살아라” [p. 43]고 말한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 그렇게 살기는 쉽지 않다. 다만 한끼라도 돼지처럼 주어진 것으로 때우는 데 급급하지 않고, 제대로 먹기 시작한다면 무엇인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로산진의 무타협 미식 철학은 단순히 음식 맛에 대한 철학이 아니라, 아무 의미 없이 인생을 살아가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일지도 모른다. 즉, 우리 삶에서 가장 자주 하는 행위 가운데 하나인 식사조차도 적당히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뿜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책은 ‘1장 미식가의 길’과 ‘2장 요리의 본질’은 단순히 미식에 관한 책이 아니라 일상에서 삶의 철학을 노래하는 책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