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프 푸셰 -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전면 새번역 누구나 인간 시리즈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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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조제프 푸셰?

 

조제프 푸셰(Joseph Fouche, 1759~1820, 이하 푸셰’)라는 인물은 우리에게 상당히 낯선 인물이다그러나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프랑스 혁명기에 테르미도르의 반란을 계획하여 막시밀리앵 드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de Robespierre, 1758~1794)와 그 일파를 축출하고1제정시기 경찰장관으로 2인자로 군림하다가 백일천하 후 나폴레옹 1(Napoléon Bonaparte, 1769~1821)의 퇴위를 주도했다그 후 임시정부의 수반이 되어 루이18세를 왕으로 맞아들이고 경찰장관이 되었다가

하지만 그 프랑스 혁명나폴레옹의 출현과 몰락왕정복고가 이어지는 전환기를 대부분 양지에서 즐기며 살았던 정치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선의 이완용(李完用, 1858~1926)처럼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프랑스의 모든 역사가들 역시 왕당파든공화주의자든보나파르트주의자든 상관없이 푸셰라는 이름에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타고난 배신자보잘것없는 모사꾼미끌미끌한 파충류 같은 인간변절을 밥 먹듯 하는 놈경찰의 비열한 기질이 몸에 배인 놈한심하기 짝이 없는 악당…… 다들 온갖 모욕적인 언사를 거리낌 없이 푸셰에게 퍼붓고 있지만 아무도 그의 성격을 밝혀 내려고 진지하게 노력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놀라울 만큼 일관성 있게 지조 없이 살았다는 사실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pp. 4~5]

그러나 이완용과 달리 푸셰라는 인물은 상당히 모순적인 존재인데그의 삶을 살펴보면 극과 극으로 널뛰듯 자신이 속한 진영을 바꿔왔다예를 들면, “1790년에는 수도원의 교사였던 사람이 1792년에는 교회를 유린했고, 1793년에 공산주의자였던 사람이 5년 후에는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10년 후에는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오트란토 공작이 되었다.” [p. 9]

삶 그 자체로만 따져보면푸셰는 평생 2인자로 지내면서도 절대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점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영원한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끝임 없이 변신을 했다는 점에서 5개 왕조의 12명 황제 밑에서 승상을 지냈던 풍도(馮道, 882~954)에 더 가까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숭고하면서 비열한 역할

 

여기까지만 보면 그는 세상에 흔한 비열한 기회주의자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그것도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 1890~1976)의 소설 <커튼>에 나오는 스티븐 노튼이나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희곡 <오셀로>에 나오는 이아고처럼 배후 조종자 혹은 흑막(黑幕)의 역할을 고수하는 존재였다, “조제프 푸셰는 결코 눈에 보이게 권력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권력을 온전히 가지고 있으며 모든 끈을 손에 쥐고서 조종하지만 결코 책임자로 거론되지는 않는다항상 누군가를 일인자로 만들어 방패로 내세우고 그의 뒤에 서서 그를 앞으로 몰아가다가 그가 지나치게 앞으로 나갔다 싶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거침없이 등을 돌리고 마는 것바로 이것이 푸셰가 가장 좋아하는 역할이다정치사를 통틀어 가장 노련한 모사가인 푸셰는 공화국과 왕정과 황제의 제국을 무대 삼아 펼쳐지는 숱한 에피소드에서 스무 번이나 의상을 바꿔 가며 한결같은 명배우의 솜씨로 이 역할을 연기한다.” [pp. 32~33]

 

그런데 저자는 푸셰와 동시대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알퐁스 드 라마르틴(Alphonse de Lamartine, 1790~1868)의 말을 빌려, “한편으로는 다시 살아난 전제정치와 새로이 싹트는 자유 사이에 끼여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국을 희생시킨 나폴레옹과 단 한 사람 때문에 도살당하지 않으려는 프랑스 사이에 끼어 있어서 운신의 폭이 좁았다황제를 압박했고 공화주의자들의 비위를 맞추었고 프랑스 국민을 진정시켰으며 동시에 전 유럽에 인사를 건넸고 루이 18세에게 미끼를 던졌고 각국의 조정과 담판을 벌였고 탈레랑과 가식적인 편지를 주고 받았다.

(이렇게그는 백 개의 얼굴을 요구하는 어려운 역할을 소화했다숭고하면서도 비열한 역할이었고 어마어마한 역할이었다하지만 역사는 오늘날까지도 이 역할에 제대로 주목하지 않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그가 비록 고귀한 영혼을 가지지는 않았어도 애국심과 영웅다운 용기를 지니고 있었기에 신하의 신분으로 주군과 같은 높이에 서고 장관의 신분으로 통치자 위에 서서 제정과 왕정복고와 자유사상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pp. 293~294]라고 평가한다.

 

도대체 푸셰의 어떤 점이 그런 평가를 하게 만들었을까?

이 책을 다 읽어도 잘 모르겠다다만저자가 아래에 말한 것처럼 나폴레옹 전설이 그에 대한 악명을 높여주었을 것이라는 것은 이해했다영웅의 배신자만큼 악당이 되기 좋은 포지션은 없을 테니까.

50년 후 1,000만 명의 시체가 이미 썩어 없어지고, 불구가 된 사람들도 묘지에 묻히고, 폐허가 되었던 유럽이 회복된 후 나폴레옹 전설이 시작되면서 푸셰는 이전보다 더욱 가혹하고 부당한 평가를 받게 된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영웅의 전설은 항상 역사의 후방 지대에서 만들어진다. 후방에 있는 사람은 몸소 겪어본 적도 없고 겪을 리도 없는 온갖 덕행을 전방에 있는 사람에게 요구한다. 영웅전설도 다를 바 없다. 영웅 전설은 제대로 겪어 본 적도 없고 겪을 리도 없는 온갖 덕행을 당연한 것처럼 요구한다는 점에서 후방에 있는 사람들과 흡사하다. 영웅 전설은 무수한 인명을 희생하라고 요구하며 영웅이 광기를 부릴지라도 그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장렬히 죽으라고, 아무 소용이 없어도 충성을 다하라고 요구한다. 나폴레옹 전설은 초지일관 흑백논리를 택하고 있기에 그 안에는 영웅에게 충성한 자와 영웅을 배신한 자만이 존재한다. 더구나 이 전설은 초반기의 (조국에 평화와 질서를 가져다 준) 통령 나폴레옹과 후반기의 (권세욕을 채우기 위해) 폭주하는 독재자 나폴레옹을 구분하지 않는다.” [pp. 294~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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