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0
존 스튜어트 밀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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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제임스 밀의 아들로 태어나 세 살 때부터 영재교육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아버지의 지인들로부터 받은 교육, 당대의 지성들과의 사상적 교류, 그리고 그의 명석함으로 인해 높은 지적 수준에 이르렀고 위대한 철학자이자 사회학자로 명성을 떨쳤다. 대표적 저작으로 <논리학 체계>와 <자유론>을 들 수 있는데 당대에 유행하던 자유주의 사상을 정리한 <자유론>은 자유를 이해하는 기초도서로 인정받고 있으며,  <논리학 체계> 또한 논리학과 철학 입문서로 손꼽히는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밀의 자유론이 다루는 자유란 단순한 '의지의 자유'가 아닌 '사회가 개인에 대해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본질과 그 한계'에 관한 것이다. 
 밀의 주장에 따르자면 올바른 자유란 개인을 억압하는 공권력, 사회가 가진 문화, 그리고 오랜 시간을 이어온 관습적 사고로부터 침범받지 말아야 할 권리이다. 고대 국가로부터 근대 이전의 사회 전반을 형성하고 있던 전제군주제 혹은 원시 공화정 형태의 지배자나 근대 국가의 권력 등으로부터 개인은 간섭받지 말아야 하며(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한) 사회가 지닌 관습적 사고로 개인의 개성을 억누르려는 시도 또한 기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인간의 성장 과정에 개인의 판단을 좌우하는 가치관을 강압하는 사회 환경은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자유라는 것을 모든 존재가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유라는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집단이란 '문명화된 사회의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수준을 가진 자'들에 국한된다.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평균적 교육수준이 올라갔기 때문에 일정수준 이상의 지적 성취를 이룬 자들이 많이짐에 따라 자유를 누릴 전체 인구수가 늘긴 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우매한 집단은 자유의 오용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들의 자유는 제한되어야 한다.

 많은 이들은 자신이 자유롭다 여기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관습과 문화, 주변인들의 신념에 영향을 받아 부지불식간 자유롭지 못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과거로부터 지배층은 자신들의 구미에 맞고 자신들에 유리한 항목을 삽입하여 법규를 만들고 처벌을 가했는데 해당 사회에서 나고 자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모순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다. 이것은 개인의 잘못이라기 보다 그를 둘러싼 환경의 악영향에 의해 인지하지 못한 통제 하에 놓인 상태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은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감정에 어떠한 오류나 '개인적'이 아닌 '타의에 의한 영향'에 의해 그렇게 강요받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공권력에 의한 통제 뿐 아니라 종교와 사상에 의한 통제 또한 존재한다. 예를 들어 특정 종교를 믿는 부류는 다른 종교를 가진 집단을 이단으로 분류하고 지탄받아 마땅한 대상으로 간주한다. 자신들의 종교는 선이고 다른 이들의 종교는 악이라 규정하고 타인들에게 주입함으로써 이성적 사고를 방해한다. 그들은 서로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데 인색함을 띠며,자유가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타인의 자유를 존중한다고도 생각하지만 실제적으로 제대로 실천하지는 못한다.
 국가와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충분히 존중해야 하지만 최소한의 개입은 불가피하다. 누차 언급하는 부분이지만 개인의 행위를 미리 차단하지않는 경우 다른 사람에게 해악을 끼칠 우려가 있는 경우라면 그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
 
 인간은 '의식'이라는 내면적 영역을 온전히 소유할 자유를 누리고 개성적 삶을 영유할 수 있는 자유 또한 누린다.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발적이고 진정한 의사에 의거해 단체를 결성할 수 있
는 자유도 포함해야 한다. 자유로운 인간은 각자의 개성에 따른 다양성을 토대로 사회가 발전을 이룰 많은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국가와 사회의 번영을 위해서라도 인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자유주의 사회를 살고있는 현재의 우리가 읽기에도 지당하다 싶은 대목을 많이 담고 있다. 밀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고 존중해야 할 덕목으로 보고 국가와 사회도 타인의 자유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음을 천명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자유가 어떤 형태로 존재할 때 사회에 이바지하고 공공의 복리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논하고 있다.

 물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는 이샤야 벌린(Isaiah Berlin)의 소극적 자유에 해당하는 주장이며 현대적 관점의 자유와는 어느정도 거리감은 있다. 아마도 밀이 살던 시대가 야경국가와 자유방임을 추앙하던 분위기였기 때문에 밀의 '자유'도 여기에 큰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밀의 <자유론>이 두 세기 전에 쓰여진 글임에도 불구하고 자유의 의미를 되새기고 지난 두 세기 동안 자유의 의미가 얼마나 변했는지 생각케 하는 좋은 자극제라 생각한다. 타인의 간섭을 최소로하는 자유는 현대로 오는동안 적극적 자유와 혼합된 형태로 발전했다. 단순히 개인의 방임적 자유를 추구하는 것을 넘어 개인과 사회의 올바른 발전을 위한 간섭을 포용하는 것이 오늘날의 자유일 것이다.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자유에 관한 밀의 주장이 소극적 측면의 자유로 분류되긴 하지만 그의 글에서 적절한 교육수준과 환경을 갖춘 사회에서 자유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는데 이것은 '밀의 자유' 또한 적극적 자유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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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놀라게 한 경매 작품 250 - 세계적인 경매회사 크리스티를 거쳐 간 250점의 예술품과 흥미로운 뒷이야기
크리스티 지음, 이호숙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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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어린 시절, 그리고 40대인 현재까지도 예술에 대한 감흥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다. 인지력이 부족한 탓인지 공감력이 떨어지는 탓인지 원인을 제대로 알 수 없지만 그림이나 조각 작품을 보며 "잘 그렸구나" 혹은 "잘 만들었구나" 하는 잔잔한 감상 정도였다. 내가 어려서부터 접해보지 못했던 세계이기 때문에 내가 제대로 이해를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일부러 예술관련 서적을 뒤적거려 보거나 화가인 지인의 작품을 보며 감상을 만들어보기도 했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여느 사람들이 느낀다는 진정어린 감탄은 얻을 기회가 없었고, 책으로나마 세간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켰던 경매 작품을 통해 간접경험을 얻고자 이 책을 펼쳤디.


  250년의 역사를 가진 크리스티는 소더비, 필립스와 더불어 세계 3대 경매회사로 꼽히고 있으며 그간 수많은 물품들을 경매시장에 선보였고 유명인의 물건이거나 유명 예술가의 작품이 경매물품으로 나왔을 때는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고 엄청난 낙찰가로 세상을 놀라게하곤 했다.
 <세상을 놀라게 한 경매 작품 250>은 그간 경매에 등장했던 많은 물품들 가운데 의미있는 250선을 뽑아 정리하고 있다.
 각각의 경매품들의 만들어진 시기, 경매에 나온 날짜. 낙찰가, 현재가를 요약해서 적고 있으며 지면을 활용해 고화질 사진과 해당 물건에 대한 역사를 적고 있다.
 예술 작품의 가치를 어찌 돈으로 환산하는 것은 세속적이라 할 수 있겠으나 많은 사람들이 가치 척도 수단으로 이용되는 돈을 통해 낙찰가를 확인함으로써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물건'의 가치를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경매품들이 경매장에 나오기까지 나름의 역사와 사연을 지니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몇몇 작품은 물품의 종류와 작가의 생애가 더 관심을 끌었다. 
 예를 들어 '빈센트 반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은 1990년 경매에서 932억에 낙찰됐고 현재가는 대략 1530억 정도라 평가된다는 부분은 놀람을 넘어 헛웃음을 짓게 했다. 살아 생전 그의 작품은 동료들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했고 여러곳을 전전하는 삶을 살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고흐의 비극적 생애를 생각한다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18년 12월 1차 세계대전은 종식됐지만 전쟁이 남기고 간 상처는 아물리 없었고 전쟁 희생자와 그 가족을 돕기위한 자선모금이 한창일 때, 자선모금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되어 선의의 기부자들이 내놓은 각종 크기의 진주들을 모아 만든 목걸이, 경매장에 나와 높은 낙찰가를 기록한 것이나 외적인 아름다움보다 그것이 만들어진 과정이 주는 감동이 더 인상적이였다.  

 예술품을 보고 '웅장하다', '아름답다', '대단하다', '진짜같다', '멋지다' 등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지만(공감각이 떨어지는 나조차도 가끔은 놀라곤 한다) 일시적 감정 이상을 얻기 위해서는 그 작품이 가진 배경을 같이 접해야 함을 깨닫는다.
 단적인 예로 고흐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없었을 거라 생각하지 않지만 고흐의 작품이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은 그의 작가로서의 삶이 얼마나 고됐고 친구, 사랑, 화가로서의 명성,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자살로써 비극적 최후를 맞아야 했던 작가를 아는 이들이 그의 작품을 감상하며 단순한 그림 이상의 가치를 발견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세상을 놀라게 한 경매 작품 250>은 눈여겨 볼만한 경매품 250선을 소개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예술품이라 생각하는 그림이나 부조를 넘어 시계, 국기, 악세사리, 작가의 원고, 와인, 보석, 도자기, 장신구 등 역사적 가치를 지닌 다양한 물건을 포함하고 있다. 단순히 물품명과 낙찰가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짧게나마 작품들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도록 배려했기 때문에 관심있는 작가와 작품을 알아가는 안내서 역활을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많은 분야와 마찬가지로 예술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인물과 역사에 관한 배움이 절실하며 나 또한 지금 이상의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천만 원에서 천 억이 넘는 경매물품을 다루고 있는데 미술 작품은 그렇다 치지만 13억짜리 롤렉스 시계를 낙찰받은 사람은 그 시계를 차고 다니는지, 2억이 넘는 빈티지 와인을 낙찰받은 사람은 그 와인을 마셨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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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정리하는 4차 산업혁명
최진기 지음 / 이지퍼블리싱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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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대에 들어선 후로 이전과 다른 몇몇 고민과 마주하게 된다.

 가정을 꾸려가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책무가 어릴 적 생각했던 모습과는 다르다는 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는 점,
 과거 내가 어른들을 보며 '꼰대'라 조소하던 모습으로 내가 바뀌고 있다는 점,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는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는 점 등이다.
 
 마지막에 언급한 이유로 4차 산업혁명에 관한 글이나 책에 관심을 갖게 됐으며 내가 모르는 사이
 세상은 어떤 식으로 변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알고싶은 욕망이 커진다.  
 <한권으로 정리하는 4차 산업혁명>은 이런 내 욕심을 다소나마 충족시키고자 읽게 되었다.



 2016년 다보스 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밥 회장이 언급했던 '4차 산업혁명'은 
 현재의 생활을 반영함과 동시에 미래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인공지능, 생명공학, 블록체인,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자동차, 로봇, 3D 프린터 등
 차세대를 이끌 핵심 기술을 총 망라하고 이들이 불러올 혁신적 변화를
 '4차 산업혁명'이라 소개했다.

 18세기 후반,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상용화시키며 '1차 산업혁명'을 불러왔고 
 19세기 후반, 전기의 등장과 대량생산체제의 구축 및 노동의 분화가 '2차 산업혁명'을 이끌었다.
 20세기 중반을 넘어서며 컴퓨터와 인터넷이 '3차 산업혁명'을 야기했다. 
 그리고 현재,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생명공학 등의 기술이 기존의 기술 또는 신기술과
 서로 융복합하여 인간의 편의를 비약적으로 높일 것이라 전망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놓였다.
 (각각의 산업혁명의 시기를 두루뭉수리로 넘어가는 이유는 기술과 범용화 사이의 간극이나
 기술이 불러온 창조적 파괴가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시간을 고려했을 때, 각 산업혁명을 말함에
 있어 특정 년도를 칭하는 것이 어폐가 있다는 개인적인 생각 때문이다.)
 어쨌든 산업혁명을 통해 인간은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그 전과 다른 여가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되었으며 삶의 질 또한 크게 향상되었다. 
 
 과거 3차례에 걸친 산업혁명과 달리 4차 산업혁명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그 개념이 모호하고
 어떤 것들을 일컬어 4차 산업혁명이라 칭하고 우리는 어떤 대비를 해야하는 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일반적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모바일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경제, 사회 전반에 융합되어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차세대 산업혁명" 
  쉬운듯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이 정의를 최진기는 약간 각색해 쉽게 풀어쓰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무인차와 VR을 사용하는 정보 혁명이다.
  이와 더불어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산업기술이 발달되어 인간이 자유로움과 평화를 얻을 수 있는
  놀라운 신세계가 열린다."
   
 4차 산업혁명을 산업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제조업과 ICT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ies)가 융합될 것이며 둘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이다. 
 자동차를 예로 들자면 자동차 공장은 기존의 컨베이어 벨트가 사라지고 로봇과 인공지능에 의한
 생산라인을 구축할 것이며 소비자는 각자의 기호에 맞는 자동차를 주문 생산할 수 있고 이렇게 생산된
 자동차에 탑재된 인공지능 덕택에 자율주행과 타인과의 공유가 가능해지고 이것이 가전체품과 연동이
 되어 차가 주차장에 도착하면 집 안의 전등이 켜지거나 보일러가 켜지는 등 우리의 삶이 편의가
 비약적으로 향상되는 것이다.
 이미 이런 변화는 진행되고 있으며 스타트업 뿐 아니라 다국적 기업들도 앞다투어 뛰어들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 국가와 개인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국가적으로는 단단한 제조업 기반, 높은 정보화 수준, 스마트시티화에 유리한
 메트로폴리스 보유, 강력한 리더쉽으로 사회통합을 할 수 있는 정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한국의 현재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위의 조건에 부합되는 상황이라 판단하기 때문에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으리라 전망하고 있다.
 국가적으로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기존의 학문적 소양 (언어, 수학, 과학 등)
 은 당연히 필요하고 여기에 더해 4차 산업혁명의 기술들(VR, AR, MR, 3D 프린터, 무인차, AI, 드론,
 코딩, 빅데이터 수집 및 활용)에 친숙해지고 그 현장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창의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창의력을 끌어올리는 방법은 저자마다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
 겠지만 최진기는 자유, 긍정유인, 낯선 환경에 대면 등의 방법을 통해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고
 조언한다.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올 혁신적 변화에서 어떤 부분이 어느 정도로 변할 것이며 어떤 산업이 주목받고
 어떤 직종이 떠오를 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능동적인 공부와 노력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을 마주한다면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으리라 전망한다.   



 최진기의 <한권으로 정리하는 4차 산업혁명>은 채사장의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4차 산업혁명' 판이라 말하고 싶다. 4차 산업에서 거론되는 다양한 주제를 언급하고 있으며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을 정도의 깊이를 유지하고 있다. 
 언론이나 다른 책에서 다루었음직한 주제를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쉽게 풀어썼다.
 내가 채사장의 책들을 읽으며 '지식의 범위나 깊이'에 놀란 것보다 그 지식들을 연결하고
 쉽게 풀어내는 문장력에 감탄했던 것처럼 최진기의 책에서도 그 때의 느낌을 받았다.  
 
 만약 특정 분야에 관심을 갖고 심도있는 지식을 원하는 독자라면 이 책에 실망할 수 있겠지만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 갈 기술들에 대한 전반적 지식을 얻고자 하는 이들이나
 4차 산업혁명에 등장하는 용어에 대한 갈피를 못잡는 이들에게는
 이정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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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황제 - 로마보다 강렬한 인도 이야기
이옥순 지음 / 틀을깨는생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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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향한 배움의 노력은 과거를 스쳐간 흔적을 좇는 과정이 아니라 현대로 이어진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고 현대에 적용하거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힌트를 얻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이 과거의 미래이며, 미래의 과거이듯 역사는 파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가 다같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형태를 띤다. 오늘의 나를 돌아보기 위해 내가 살아온 길을 돌아봐야 하는 것처럼 국가와 시대의 모습 또한 역사로부터 배움을 얻어야 비로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전문가를 제외하고도 역사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매우 많고, 그만큼 역사서를 편찬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문자와 인쇄술이 대중에 널리 퍼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세계사의 중심은 서유럽이였고 근현대에 들어서는 서유럽의 후손인 미국이 부상했기 때문에 많은 역사서는 서양 위주로 발간되곤 한다. 동양의 역사도 유구한 전통과 찬란한 문화를 이룩했지만 17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서양 열강의 침입에 굴복했고 세계사의 변방으로 취급받음으로써 그 가치가 빛을 잃게 됐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에 치중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나마 동양사를 다루는 대부분의 서적은 중국사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사에 대한 접근은 용이한 반면 그 외의 동양 국가의 역사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서구 열강이나 중국을 제외한다면 특정 국가에 대한 각별한 관심없이 일반적 세계사 서적을 통해 그 나라의 역사를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다.

 국사를 제외한다면 내가 읽어 온 역사서의 대부분도 그리스 로마사로 시작되는 서양의 역사와 주나라로부터 시작되는 중국 역사를 다루고 있었다. 운 좋게도 이번에 리뷰하는 <무굴 황제>는 상대적으로 무지한 인도 역사를 들여다 볼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제목 그대로 무굴 제국의 흥망성쇠를 읽을 수 있어 의미있는 시간이였다고 생각한다.



 무굴제국은 1526년 중앙아시아에서 침입한 바부르가 인도를 정복하고 세운 왕국으로 '무굴'이란 말은 국명이 아닌 황제들이 속한 부족의 이름이었다. 바브르가 부계로는 티무르, 모계로는 칭기즈 칸의 후예기 때문에  페르시아어로  '몽골'을 뜻하는 '무굴'제국이라 칭하게 되었다. 

 무굴제국의 창시자 바부르는 1483년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페르가나에서 태어나 11살에 왕위를 물려받았지만 이내 동생에게 왕위를 뺏기고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가진 것이 미천했지만 칭기스칸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커다란 포부와 인심을 얻는 아량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숟한 전쟁을 치르며 성장했고 이길 때보다 질 때가 더 많았지만 인도 대륙을 점령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미 4차례 공격에 실패했음에도 좌절하지 않고 5번째 공격을 가해 뉴델리 이브라힘 왕조를 무너뜨리고 1526년 아그라를 수도로 삼아 무굴제국을 세웠다. 바부르가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인내한 30년이 결실을 맺어 인도 대륙을 통치하기에 이르렀지만 4년 뒤 병마로 쓰러졌고 생전에 그리워 마지 않던 고향 땅에 묻혔다.
 
 바부르의 뒤를 이은 후마윤은 게으르고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많은 곤란을 겪었다. 이복 동생들과의 골육상쟁과 더불어 이브라힘의 잔존 세력의 반란으로 수세에 몰려 15년 가량을 떠돌게 된다. 결단력이 부족하고 성정이 온화했기 때문에 이복동생들과 반란군을 엄벌하지 못했고 그것이 화근이 되어 아비가 물려준 제국을 지키지 못하고 쫒기게 됐다. 천운으로 숙적 세르 샤가 죽자 세르 샤 정권의 공백기가 생겼고 이 틈을 놓치지 않은 후마윤은 다시금 무굴제국의 영토를 수복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어이없는 낙상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고 후마윤의 아들 아크바르가 제위를 잇는다.

 13세의 나이에 왕위를 이어받은 아크바르는 후마윤과 달리 현명하고 결단력이 뛰어났다. 아크바르는 18세가 되자 섭정세력을 물리고 도를 넘는 행동을 하는 신하는 개인적 친분과 신분을 막론하고 엄벌에 처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정략결혼으로 토착민들의 지지를 확보하고 정복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제국의 영토를 확장한다. 아크바르 황제는 '제국의 지배자란 영화를 누리는 자가 아니라 제국에 영화를 가져오는 자'라고 믿었고 제국의 백성을 종교와 언어에 상관없이 공정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크바르의 관용은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들의 마음을 두드렸고 결국 그들이 마음을 열어 제국의 일원으로 적극 동참할 수 있게 도왔으며 고대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황제처럼 그의 이름 앞에 '위대한'이란 수식어가 붙게 됐다.
 위대한 아크바르도 자식농사 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3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모두 술에 찌들어 방탕한 생활에 탐닉했고 2명의 아들은 자신보다 일찍 생을 마감했다. 마지막 남은 아들인 살림은 두차례 반란을 일으켜 아비인 아크바르의 마음을 찢어놨다. 아크바르는 제위를 손자에게 물려주는 방안까지 고려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는 말처럼 결국 임종 시에 살림에게 왕위를 물려줬고 살림이 바로 무굴제국 4번째 왕인 자한기르 황제이다.

 1605년 제위에 오른 자한기르는 술과 아편에 찌든 왕이였음에도 전대의 치세 덕분에 순탄한 길을 걸었다. 아크바르가 닦아 놓은 탄탄한 기반 위에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부흥을 꿈꿨고 국민의 복지에 신경쓰고 정의로운 사회를 형성하고자 했다.
 과거 자한기르가 왕좌를 뺏기 위해 반란을 일으켜 아크바르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것처럼 자한기르의 자녀들 또한 반역을 저지른다. 업보인 것인지, 자한기르는 자신이 아비에게 저지른 잘못을 고스란히 되받게 된다. 다른 점이라면 자한기르는 아크바르와 같은 관대함을 베풀지 않고 아들들을 처벌한다.
 지나친 음주와 마약에 심신은 피폐해졌고 결국 통치를 왕비인 누르자한에게 넘긴다. 말년에 막내아들의 반란으로 건강이 악화되고 1627년 숨을 거둔다.
 자한기르가 아비인 아크바르의 덕으로 제국의 통치는 해나갔으나 뛰어난 위정자라 보기는 어렵다.  그는 위정자로서의 재능보다는 회화, 건축, 과학 등에 뛰어났으며 무굴제국의 예술 발달에 큰 업적을 남긴다.

 자한기르가 죽자 그의 막내 아들인 쿠람(자한기르 생전 반란을 일으켜 왕위 찬탈을 노리다 실패한 뒤 자신의 두 아들을 볼모로 내주고 목숨을 구했다)은 정적을 제거하고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발빠른 움직임을 보인다. 당시 자한기르를 대신해 통치를 하던 누르자한을 제압하고 왕위를 노릴 만한 이복형제들을 숙청했다. 영특한 면이 있었던 샤자한(쿠람)은 치세에 능했고 건축과 같은 예술 분야에도 두각을 드러냈다. 아그라에서 델리로 천도한 후 델리를 인구 50 만이 거주하는 당대 최고의 도시로 성장시킨다. 당시의 무굴 제국은 세계 최고의 경제적 번영을 누렸으며, 황제 샤자한은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건축물을 세우는데 공을 들임과 동시에 선대들이 행한 것처럼 정복전쟁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샤자한은 그의 아내인 뭄타즈 마할을 매우 사랑했다. 전장까지도 따라다니며 항상 샤자한의 곁을 지키던 그녀가 전장에서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뭄타즈 마할은 유언으로 자신을 위해 가장 아름다운 기념물을 세워 달라는 것과 재혼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샤자한은 그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연인원 2만 명이 20여 년에 걸쳐 만든 '타지마할(선택받은 자의 거처)'을 건설하고 재혼하지 않는다.
 샤자한의 노후는 끔찍함의 연속이었다. 막내 아들인 아우랑제브가 왕위 찬탈을 위해 형제를 숙청하고 황제인 샤자한을 감금했다. 무력으로 왕위를 계승한 후 피의 숙청을 이어갔고 샤자한 또한 그렇게 목숨을 잃는다. 

 1658년 아우랑제브는 왕위에 등극하면서 샤자한을 아그라 성에 가두었고 형제와 사촌형제를 제거해 정적의 수를 줄였다. 선대가 겪은 고통처럼 아우랑제브 또한 자식들의 반란을 겪기도 했지만 바로 진압한 후 자식들을 옥에 가둔다.
 왕좌에 다가선 과정과 왕좌를 차지한 직후 모습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지만 아우랑제브 황제의 재임 초기는 민생 안정에 애를 쓰는 애민 군주였다. 아우랑제브는 뛰어난 행정가이자 군사 지휘자였고, 그의 통치 시절의 무굴 제국은 1947년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할 무렵의 영토에 버금가는 넓은 영토와 1억 5천만에 달하는 인구를 자랑했다. 1690년 제국의 GDP는 약 4천 5백억 원으로 세계 1위였으며 당시의 조세 수입은 같은 시기 프랑스의 열 배가 넘었다.
 아우랑제브는 독실한 이슬람 신자로 근검절약하고 금욕적인 삶을 실천했다. 금주령을 선포하고 힌두교도에 대한 인두세를 추징하는 한편 노래와 악기 연주를 금지하기도 했다. 지나치게 이슬람 신앙에 몰두한 덕에 주변 사람들은 떠나갔고 결국 아우랑제브는 고립된 삶을 살았다. 그의 후반기 인생은 자식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인도 대륙의 남부 원정에 허비되었다. 무려 26년을 수도를 떠나 전장의 막사에서 지내다 1707년 노환으로 일기를 마친다.

 아우랑제브가 죽은 후 1526년 바부르부터 1707년까지 이어진 무굴 제국의 영화는 급격히 쇠퇴한다. 자한기르와 샤자한이 건축에 국고를 낭비했고 아우랑제브는 군사 원정에 국고를 탕진했기 때문에 무굴 제국의 재정은 갈수록 악화되었고 제국의 영향력과 영토도 축소되었다. 내란이 잦고 왕은 계속 바뀌었으며 왕권은 유명무실해 졌다. 설상가상으로 외세의 침입까지 겪으며 무굴 제국은 패망의 길로 향한다. 힘겹게 명맥만 유지하며 버티던 무굴 제국은 바하두르 샤 자파르 왕을 끝으로 1857년 막을 내린다.





 생소했던 무굴제국의 역사를 읽으며 제국과 황제의 흥망성쇠를 보게 됐고 흔히 접할 수 없었던 인도 역사가 주는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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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공부법
미키 기요시 지음, 이윤경 옮김 / B612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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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키 기요시는 일본의 대표적 철학자 중 한 명이다. 교토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이후 독일로 유학을 떠나 리케르트와 하이데거 등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일본에 귀국 후 발표한 <파스칼에 있어서의 인간의 연구>는 일본 철학계에 충격을 주었고 그의 대표 저작으로 남아 있다. 
 도쿄 호세이대학에 재직했고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사상범으로 몰려 수감되었고 1945년 48세의 나이로 옥사한다.



 저자의 유년기는 당시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공부나 독서보다는 자연을 접하고 친구들과 뛰어노는 데 치충한 생활이였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독서에 흥미를 갖고 중고등 학생 시절엔 독서에 탐닉하게 된다. 선생님과 독서를 좋아하는 친구들의 영향으로 독서의 영역을 확장해 문학을 넘어 종교, 역사, 철학 등을 섭렵한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진로를 철학으로 결심하고 여러가지 철학서적을 접하던 중 니시다 기타로의 <선의 연구>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니시다 기타로가 교수로 재직 중인 도쿄대에 입학한다. 대학에 입학한 후로도 탐독은 끊이지 않았으며 3년 간의 독일 유학시절에 절정에 이른다. 



 철학에 관심있는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이지만 '어떤 철학서를 읽어야 하는가'는 답하기 어렵다. '철학 개론'이라 명명된 서적을 접한다고 철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철학 개론이라는 이름과 달리 어려운 서적 또한 많기 때문에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 저자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철학에 입문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도서는 니시다 기타로의 <선의 연구>,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빈델반트의 <프렐루디엔> 등이다. 철학적 사고에 도움이 되는 심리와 논리를 정리한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 원리>와 존 스튜어트 밀의 <논리학 체계>도 추천하고 있다.
  
 철학을 공부함에 있어 철학적 지식을 채우는 것보다 철학적 사고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류 철학자의 저작을 자주 접하는 것이 좋은데 플라톤의 '대화편'과 같은 널리 알려진 고전을 접하는 것이 좋다. 미술 감정가가 진품을 수없이 보는 훈련을 통해 진품과 가품을 가릴 수 있는 안목을 키우는 것처럼 철학에 대한 접근 또한 명저를 통해 순수하고 뛰어난 것에 대해 익숙해 진다면 좋은 책과 나쁜 책을 감별하는 눈을 얻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철학은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철학에 사용되는 전문용어와 철학자들이 자신의 철학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용어를 도입하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이 보편적인 학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철학자들이 보다 보편적인 용어로 쉽게 풀어쓰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독자들 또한 공부가 필요하다. 독자들은 철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공부를 통해 철학 용어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으며 자신에 맞는 철학을 찾고 공부한 후에 차츰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좋다.
 철학이 보편성을 지향하지만 보편성과 특수성은 공존하기 때문에 다양한 철학 사상에 대한 얕은 지식을 넓게 접하는 것보다 특정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그 안에서 보편성을 발견하는 것도 철학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고대로부터 철학은 과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고 과학적 사고가 철학적 사고에 도움을 주므로 철학적 소양을 고취시키기 위해 과학적 접근방식에 익숙해지는 것이 도움이 된다. 철학에서 논리학이 중요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철학은 사고하고 또 사고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일류 철학자의 저작을 읽을 때 해설서에 의존하기 보다 본인의 숙고를 통해 저자의 사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쏟아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쉽게 읽힌다고 쉽게 지나가지 말고 문장 하나 하나가 주는 함의를 생각해야 한다. 철학 입문자들에게는 새로 발간된 것보다 고전이나 발간된지 10 ~ 15년 가량 지난 검증받은 서적을 접하는 것이 좋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철학 서적을 접함에 있어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독서법은 저자와 대화를 할 수 있는 독서이다. 내가 던지는 질문은 저자가 나에게 하는 질문이며 내가 무언가를 묻지 않는다면 저자 또한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철학적 독서는 독자와 저자가 끊임없이 주고받는 문답으로 전개되어야 하고 이런 대화야말로 철학 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저자의 친구인 고바야시 이와오가 중학생 때 관심있는 원서를 읽기 위해 독일어를 공부했다는 부분은 감탄스러웠다. 훌륭한 종이에 뛰어난 번역작업을 거친 명저조차 제대로 읽기를 꺼려하는 나를 돌아보며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변해도 진리에 접근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정과 지식을 늘리고자 하는 지적 욕망은 변치 않는다. 편의성과 접근성의 측면에서 우리는 이전 어느 세대의 선조들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 이 혜택을 당연시하며 지내왔는데 미키 기요시와 그의 친구를 바라보며 내가 버리는 많은 시간에 가치를 부여할 만한 서적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단 다짐을 하게 된다. 

 <철학자의 공부법>은 철학을 이해하고자 몇몇 서적을 들춰보다 이내 포기하는 내 모습과 내가 선택한 철학 공부법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철학의 역사와 철학 사상의 흐름을 알기 위해 철학사에 치중했던 독서법이 오히려 철학을 어렵게 만들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저자가 추천한 입문서 가운데 데카르트의 <방법서설>과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제대로 완독하지 못한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와 군나르 시르베크의 <서양철학사>를 다시 펼쳐 정독해야겠다. 

 철학을 접하고 싶은데 방향을 잡지 못해 혼란스러운 사람들에게 미키 기요시의 <철학자의 공부법>이 힌트를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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