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정동호 지음 / 책세상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 서적 뿐 아니라 인문/교양 서적을 읽다 보면 자주 접하게 되는 몇몇 인물들이 있는데 어떤 인물은 그 이름 자체가 깊은 의미를 전달하고 영감을 주기도 한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면 '니체'라는 이름은 근대철학의 선구자로서, 어려운 철학의 상징으로서, 니체 철학 그 자체로써 다가온다. 특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대표적 저작으로 니체의 사상을 집대성한 작품으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아포리즘 형식으로 전개된 내용을 읽고 있자면 난독증에 걸린 것 마냥 글귀에 홀려 여기저기 끌려다니다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채 책을 덮게 되곤 한다. 나도 이십여 년 전부터 여러 차례 도전했던 <차라투스트라>를 비교적 최근에야 완독하게 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니체를 처음 접하는, <차라투스트라>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해하며, 우리같은 일반 독자들이 니체의 저작을 이해하고자 무턱대고 덤비는 것은 정말 무모한 행위이며(극소수의 천재들은 예외로 하더라도) 니체를 연구한 사람들의 머리를 빌려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차라투스트라>를 세 번째 완독한 지금도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항상 남기 때문에 이번에 소개하는 것과 같은 해설서를 다시 읽어봄으로써 내가 느꼈던 바와 비교/대조해 보고 니체를 만나는 방법의 다양성을 추구하는게 좋을 듯 하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처음 60여 페이지는 니체의 삶 전반에 그가 추구했던 철학에 관한 개괄이다. 또한 신을 부정하고 도덕을 부정했던 니체의 사상과 상반된 길을 걸었다고 생각될 수 있는 차라투스트라가 니체의 철학에 들어오게 된 이유를 추론하고 있으며 차라투스트라가 종교적 선지자로서 혹은 선각자로서 고행의 길을 걸었다는 점과 뭇 대중의 몰이해로부터 겪었을 어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처지에서 니체 자신과의 유사성을 발견했다고도 할 수 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라는 동양의 인물(선지자, 종교인, 철학자, 어떻게 부르든지)이 가진 명성을 이용해 자신의 사상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사상을 집대성한 걸작으로 평가받는 만큼 무턱대고 읽어 내기엔 매우 어려운 책이다. <차라투스트라>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니체의 모든 저작을 다 읽고 이해한 후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련이 될 수 있으므로, 연구자가 아닌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차라투스트라>에 담긴 니체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니체의 사상에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누군가의 안내를 받는 것이 좋다. 저자 정동호는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가 그런 역활을 수행하길 바라며 이 해설서를 통해 일반 독자들이 '차라투스트라'에 담긴 '니체의 의도'를 알고 나아가 '니체의 사상'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후반부는 이 책의 본론이라 할 수 있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순서에 따라 니체가 설파하고자 했던 내용을 해설하고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전체적 줄거리인 "차라투스트라가 10년의 고행 끝에 얻은 깨달음을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산을 내려가지만 미몽에 빠져 있는 대중은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따르지도 않는다. 차라투스트라는 대중의 미개함에 수치심과 환멸을 느끼며 다시 산을 오르지만 다시금 대중을 깨우치고자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에 담긴 많은 글들의 속 뜻을 천천히 설명한다. <차라투스트라>에 소개되는 초인(위버멘쉬), 마지막 인간, 힘에의 의지, 영원회귀 등의 사상과 뱀, 독수리, 낙타, 사자, 아이 등 스쳐 지나는 듯한 단어에 담긴 깊은 의미를 끄집어 내 독자가 <차라투스트라>를 접근하는 기본적 틀을 잡도록 돕고 있다. 


니체가 주인공 '차라투스트라'의 언행을 빌려 전달하고자 했던 바는 현재의 삶을 지속시켜 준다고 믿어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철저한 회의, 그리고 현재에 안주해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구축하는 사회질서, 거기에 담긴 선악, 법, 도덕, 신앙, 종교, 학문, 예술 모든 것들에 대한 근본적인 재평가를 시도하는 것이다. 니체는 반사회적 사상이나 허무주의 사상을 주장한 것이 아니다. 니체가 전달하고자 했던 바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과연 진정으로 우리에게 옳고 정당하기 때문에 자리를 잡은 것인지, 권력을 지닌 자들에 의해 수동적으로 길들여진 것 인지에 대한 깊은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과정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고 이어져 전 날에 얻은 깨달음을 새로이 하고 다시금 보다 깊은 깨달음을 얻어가는 사람, 궁극적으로는 위버멘쉬가 되길 권한다.




<차라투스트라>의 부제인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면서도 그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니체는 자신의 저작이 쉽게 사람들에게 녹아들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차라투스트라>를 읽을 많은 독자들이 겪게 될 어려움을 니체 또한 짐작했을 테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전달하고자 했던 바를 상징과 비유, 아포리즘 형식으로 엮어내면서 깊은 사고와 인내를 지니지 못한 자들은 <차라투스트라>를 이해할 수 없도록 장치했다. 니체는 끈기와 노력에 더해 높은 지성을 지닌 소수의 사람들만이 자신의 사상을 이해하고 따라오길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나와 같은 일반 독자가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에 접근하기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니체에 대한 전문가나 연구자들이 안내를 받음으로써 조금이나마 니체의 의도와 사상에 다가설 수 있을 따름이다. 


이점에서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는 니체의 저작을 읽기 전에 적어도 한 번은 정독해 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차라투스트라>에서 주인공이 차라투스트라가 된 이유부터 <차라투스트라> 전반에 걸친 내용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까지 어느 부분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나는 이전에도 니체 해설서 몇 권을 읽은 바 있고 그것을 디딤돌 삼아 <차라투스트라>를 완독할 수 있었는데 그 이후로 다시 <차라투스트라>를 읽을 때 그 전 독서에서 내가 이해했었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새롭게 다가오는 경험을 자주하게 됐는데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를 읽은 지금 다시 <차라투스트라>를 읽는다면 마찬가지 경험을 더 많은 곳에서 하게 될 것이라 짐작된다. 


니체의 저작을 처음 접하는 분들과 니체를 조금 더 알고자 하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있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로메, 니체를 말하다 - 니체의 작품으로 본 니체 니체 아카이브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니체 평전을 읽다보면 자주 언급되는 몇몇 인물이 있다. 바그너, 쇼펜하우어, 그의 동생 엘리자베트 등 니체의 삶과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첬던 사람들, 그 가운데 '루 살로메'는 보다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니체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 니체의 구애를 거부하고 니체의 지인에게 간 인물, 니체에게 고독과 고통을 더해준 인물, 니체의 생각을 배우고 니체에게 영감을 준 스승과 제자 혹은 친구였던 인물, 니체가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터놓았던 인물 등 루 살로메의 존재는 니체의 삶과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여겨진다. 니체가 루 살로메에게 큰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 루 살로메도 니체와의 교류를 통해 큰 지적 성장을 이루었으며 니체라는 인물을 철학계에 알리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사람이다.  


루 살로메가 니체와 교류했던 1880년대의 니체는 학계에서 주목받는 인물이 아니었다. 니체는 다소 급진적이고 극단적인 사상을 주장하는 인물 정도로 여겨졌으며 소수(루 살로메나 브렌데스 등)를 제외하고는 그의 사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루 살로메는 니체와의 직접적 교류를 통해 그의 사상의 원대함을 짐작하고 있었으며 이후 니체의 저작들을 깊이 살피고 니체와의 교류에서 얻었던 니체라는 인물과 그의 사사상에 대해 정리해 1894년 <니체의 작품으로 본 니체>로 발표했다. 


<살로메, 니체를 말하다(니체의 작품으로 본 니체)>는 니체와 니체의 사상을 소개하고 니체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루 살로메의  조언대로라면  니체의 철학과 철학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이론적 고찰(니체의 저작)과 더불어 니체의 정신적 속성(니체의 삶과 성격)의 주요 특징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통과 안질이 삶을 고통스럽게 하고 자신의 사상이 그를 고독이라는 장소로 이끌어 니체의 삶은 전반적으로 고통과 고독의 연속이었다. 


니체는 '평범함은 우월함이 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가면이다.'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지닌 사상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리라는, (니체가 보기에 자신의 사상을 비하할 자격조차 없는 하등한)누군가에게 배척의 대상이 되리라는 두려움과 무지한 일반 사람들을 동정하는 마음에서 니체는 가면을 쓰고 생활했다. 니체가 깨달은 세상이란 모순이며 기득권자들이 설계해 놓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로 가득했기 때문에 더욱이 가면이 필요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살로메, 니체를 말하다(니체의 작품으로 본 니체)>에는 니체가 쓰러진 1890년 이전의 니체의 저작들을 자주 언급하며 니체의 사상을 이야기한다. <선악의 저편>, <도덕의 저편>, <그 사람을 보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 등 수많은 아포리즘으로 구성된 니체의 글에서 그가 의도하는 바와 그의 글에 접근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살로메는 그녀가 니체와 직접 교류하며 느꼈던 니체의 인간적 특징을 바탕으로 그의 사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녀의 니체에는 니체라는 인간, 니체의 삶, 니체의 정신, 니체의 사상이 모두 섞여 있다. 


루 살로메가 바라본 니체는 굉장히 섬세하고 감수성이 뛰어났으며 그를 자극하는 아주 사소한 무엇에서도 영감을 얻어 원대한 사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천재성 또한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니체의 생애를 따라다닌 물리적 정신적 고통과 고독감조차 니체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성장시키는 원동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살로메가 생각하는 니체의 사상은 끊임없이 저항하는 세계이다. 사회와의 불일치, 신앙의 불일치, 자기 자신의 불일치 등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을 회의적으로 살펴보고 스스로가 깨닫고 창조한 새로운 것에 이르러야 비로소 위대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그런 사상이었다. 


<살로메, 니체를 말하다(니체의 작품으로 본 니체)>는 니체 사상의 핵심적 언어들에 대한 해석도 담고 있다. 이를테면 영원회귀, 힘에의 의지, 철인(차라투스트라)에 담긴 뜻을 (니체의 생각을 들여다 본) 살로메의 시선으로 풀어쓰고 있어 니체의 사상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니체가 어떤 계기로 그런 생각들을 품게 되었고 어떤 식으로 그것들을 자신의 저작에 옮겨 두었는지 '니체의 글'을 인용하며 설명해준다. 


<살로메, 니체를 말하다(니체의 작품으로 본 니체)>는 루 살로메라는 인간이 니체를 겪고 들어다보고 이야기하면서 얻은 니체의 인간적인 면과 니체의 사상에 대한 고찰을 쉽게 풀어 제시하고 있다. 






내게 '니체'는 처음 그 이름에 끌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열었던 그 순간부터 어려웠다. 한 문장 한 문장이, 한 단락 한 단락이 제각기 따로노는 느낌에 이해도 안되는 말들이 쌓이다보니 금새 포기하고 니체를 멀리 했었다. '여우의 신포도'마냥 굳이 니체를 알지 못해도 세상에는 알 것이 많다고 생각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다른 책에도 니체라는 인물과 그의 사상에 대한 언급이 참 많기도 하단 사실을 알게 됐다. 인문소양을 고양시켜줄 만한 많은 책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 망정 철학을 다루는데, 이 철학에서 니체가 단골손님으로 등장했고 니체의 글을 인용하는 작가들도 많아 니체에 대해 알긴 알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시 펼쳐 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이전과 똑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몇 개 문장이 좀 더 와닿는가 싶다가도 전체적으로 보면 내가 무엇을 읽고 있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그렇게해서 찾게 된 게 니체 평전이나 니체의 사상을 다룬 입문서였다. 니체의 말이니 니체 평전이니 하는 책들을 좀 읽었지만 여전히 니체는 어려웠고 내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완독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준 책은 '베르너 슈텍마이어'의 <니체 입문>과 '이진우'의 <인생에 한번은 차라투스트라> 였다. 이 두 책을 읽음으로해서 니체에 대한 친밀함을 얻게 됐고 다시 잡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다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차라투스트라를 완독 후 니체의 글을 좀 더 읽고 싶어 접한 것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었고 차라투스트라와 마찬가지로 깊은 울림을 얻을 수 있었다. 


루 살로메의 <살로메, 니체를 말하다(니체의 작품으로 본 니체)>도 <니체 입문>이나 <인생에 한번은 차라투스트라>와 마찬가지로 니체에게 다가서는 길을 밝혀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겨우 일부를 읽었을 뿐이지만 니체의 저작에 대한 초보적인 입장은 바로 읽기에는 부담스럽고 어렵다는 점이다. 니체와 독자를 연결시켜줄 고리가 필요한데 그 역활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안내서가 많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살로메, 니체를 말하다(니체의 작품으로 본 니체)>는 니체를 독자로 끌어주는 역활을 할 수 있는 책이며 루 살로메가 니체에 미친 영향과 루 살로메가 니체 사상에 끼친 영향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니체를 잘안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루 살로메'라는 사람과 니체의 상호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니체를 읽고자 하는 독자는 니체의 생각을 직접 마주하기 전에 간접체험할 수 있는 기회로써 <살로메, 니체를 말하다(니체의 작품으로 본 니체)>를 읽어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니체가 어렵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니체의 사상을 읽다보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조금은 성숙해짐을 느끼게 된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많은 것들의 의미에 대해 잠시라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된다. 내가 독서하는 이유는 나와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함인데 '니체'의 관점은 그런 나의 바램을 성취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 가운데 맘에 와닿는 큰 틀을 제시해 주고 있다. 니체도 <살로메, 니체를 말하다(니체의 작품으로 본 니체)>도 좋은 것들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의 대답들 - 10가지 주제로 본 철학사
케빈 페리 지음, 이원석 옮김, 사이먼 크리츨리 서문 / 북캠퍼스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이 실생활과 동떨어져 일상에는 쓸모없다는 편견은 철학에 대한 접근을 저해한다. 그러나 어느 분야의 책을 읽던지 결국 선인들의 생각을 좆아 철학이라는 학문을 마주해야 하는데, 일반 독자에게 철학(자)은 다른 책을 읽는 기초가 되어주며 철학이 주는 지혜를 통해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고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 생각토록 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철학은 쉽지 않다. 애초에 쉬울 수 없는 학문이라 생각한다. 한 철학자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그 철학자가 남긴 사유의 과정과 결과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후대에 이름이 알려질 정도의 철학자라면 당연히 남다르게 뛰어난 인물일 것이며 그런 뛰어난 사람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 쌓아 종국에 내세운 이론은 당연히 깊이가 상당할 것이기에 어떤 철학자나 철학 이론에 대해 우리가 몇 페이지의 글로써 온전히 깨닫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이유로 철학서나 철학자의 서평을 읽노라면 문장이 주는 의미를 되새겨보느라 다른 분야의 책을 읽을 때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읽고난 후에는 어떤 지식을 얻었다는 생각보다 머리가 더 어려지러워진 기분을 느끼게 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세상과 나의 인생을 보다 명료한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욕심에 철학책에 의지하게 된다.  


<철학의 대답들>은 일상적이고 흥미로운 열 가지 주제(삶, 인간, 지식, 언어, 예술, 시간, 지유의지, 사랑, 신, 죽음)를 다룬다. 산다는 것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나는 10가지 주제는 시대를 막론하고 해당 주제에 괄목할만한 발자취를 남긴 철학자들의 생각을 적고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로부터 20세기 근현대 철학자들까지 굉장히 넓은 범주를 다룬다. 보통 한 주제에 대해 시대순으로 7~10명의 철학자의 주장이 싣려 있고 각 주장은 2-5 페이지 분량으로 짧은 편이다. 내가 여지껏 접했던 철학서와 <철학의 대답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고대 그리스와 계몽주의 시대의 철학자들보다 근현대 철학자들에 대한 언급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현대 철학에 관심이 없던 나같은 사람에겐 대부분이 낯선 이름이었지만 그들의 주장을 읽노라면 공감하는 바가 크게 다가왔다.  


<철학의 대답들>은 주제로 묶여 있어 소개된 철학자들이 해당 주제에 대해 언급했던 바를 제시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든 주제와 철학자에 관한 글들은 독립성을 띠고 있다. 예를 들어 '안다는 것(지식)'을 다룬 챕터에서 소개하는 데이비드 흄부터 앨빈 플레팅가까지 8인의 철학자들의 이론은 지식에 관련하여 같이 묶여 있지만 개별적으로 읽어도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흥미있어하는 10가지 주제로 묶여 있을 뿐 무작위로 어떤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별다른 지장은 없다. 오히려 그렇게 읽으라고 만든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주관적인 경험과 관점에 따라 선호도가 갈리긴 하겠지만 내가 느낀 바로는 10개의 챕터 중 '앎'이 가장 인상깊었는데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여기는) 것들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으며 진리라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공감이 되긴 하지만 그 반대가 맞길 바라게 마음 또한 컸다.


철학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현대 철학자들이 어떤 하위분야에서 어떤 연구를 하는지 관심이 있다면 <철학의 대답들>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 거창한 학문으로서의 철학 뿐 아니라 소위 개똥철학이라 불리는 개개인의 철학조차 쉬워지는 날이 오리라는 생각 해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사는 인생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생각을 멈추지 말아야 하고 현인들의 사상에 도움을 청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교 권력은 세계 역사를 어떻게 움직였나 - 믿음의 흥망성쇠로 이해하는 세계사
우야마 다쿠에이 지음, 안혜은 옮김 / 시그마북스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종교가 가진 정체성은 인간무리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고래로부터 지배자들은 종교를 공작과 지배의 도구로 활용해 왔으며 이런 흐름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저자 '우야마 다쿠에이'는 <종교 권력은 세계 역사를 어떻게 움직였나>에서 종교, 특히 일신교가 선인의 탈을 쓰고 구원이라는 가상의 열매로 사람들을 현혹하지만, 실상 종교는 흉악성을 내재하고 기만과 패권 역학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중국은 유교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이다. 춘추시대 공자에 의해 등장한 유교는 예를 중시하는 학문(이념이나 종교로도 해석될 수 있다)으로 중화사상의 핵심적 역활을 했다.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보고 그 외의 나라들을 오랑캐(미개인)로 보는 중화사상은 11세기 북송의 사마광이 집대성했고 남송의 주희에 의해 더욱 견고해졌다. 이후 유교가 미덕으로 삼는 신분제와 질서는 중국통치의 근간을 이룬다. 1949년 마우쩌둥의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하면서 문화대혁명 시기에 유교를 계급주의의 잔재라 하여 무자비하게 탄압하기도 했지만 덩샤오핑이 집권한 1980년에 이르러 사회주의와 유교를 접목시킨 유교사회주의가 부상했고 다시 유교의 덕목(중화사상, 지배층의 계급서열화)이 강조되었다.

중국은 힘을 바탕으로 주변국을 종속시키고자 한다. 종교가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으로써 문화와 문명을 상징하기 때문에 중국은 자신들과 다른 종교, 즉 다른 정체성을 지닌 신장이나 티벳 등을 무력으로 지배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상대의 정체성을 말살시키기 위한 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종교로 인해 형성되는 강한 결집력을 방해하기 위해 종교탄압을 비롯한 각종 공작을 펼치는 것이다.

인도의 힌두교는 브라만교에 그 뿌리를 둔다. 기원전 13세기 토착부족을 물리치고 인도를 점령한 아리아인은 통치를 수월하게 하고자 자신들을 '신이 선택한 종족'이라 칭하며 브라만교를 창조한다. 브라만교의 계급(카스트)은 신분제에 당위성을 부여해 소수 기득권층에 의한 지배를 정당화시켰다. 거대한 인도 아대륙을 통일한 왕조가 세워지는 경우 통일 왕조는 국교로 불교를 택했는데 이는 신앙의 형태가 다양한 브라만교보다 하나의 교리를 지닌 불교가 통치에 용이했기 때문이다. 통일 왕조는 불교로, 호족(부족 국가)들은 힌두교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싸웠으며 7세기 마지막 통일왕조였던 바르다나 왕조가 무너지면서 인도는 분열의 시대를 맞이하게 됐고 힌두교가 다시 성행하게 됐다.

유럽은 기독교가 득세한 지역이다. 4세기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로 기독교는 꾸준히 세를 확장해 중세시대에는 왕보다 높은 자리에 교황이 위치하게 됐다. '카노사의 굴욕'은 당시 교권이 얼마나 막강했는지를 상징하는 사건이며 교황의 권위는 지방 성직자 및 지방 호족에 힘을 발휘해 강력한 중앙통치의 도래를 방해했다. 기독교가 유럽 전역에 퍼져감에 따라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종교적 귀속의식이 강해졌으며 기독교 교리는 유럽의 윤리와 법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십자군 원정의 실패와 교회의 타락이 심해짐에 따라 교권에 대한 반감과 도전이 이루어졌고 14세기 프랑스의 필리프 4세는 교황권력을 약화시키고 아비뇽 유수를 감행했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교권에 대한 반감이 팽배해짐에 따라 교황권은 추락하고 교회의 분열이 촉진된다. 16세기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를 비판하며 기독교의 부패를 꾸짖을 때 제후들은 이를 이용해 교회와의 이권투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다. 종교 개혁은 올바른 신념의 관철이라기 보다는 이권을 노리는 자들의 암투를 반영한 운동이라 볼 수 있다. 독일에서 비롯된 종교적 신념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던 기득권의 세력다툼은 주변국으로 번져 나갔고 프랑스, 영국, 네델란드, 북유럽, 러시아 등의 변혁을 이끌었다. 이 때 종교는 해당 지역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게 제단되고 가공되어 권력을 장악/강화하는데 이용되었다. 


미국의 건국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종교가 국가의 정치와 사회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깨닫게 해준다. 영국의 국교회로부터 핍박받던 퓨리턴(청교도)은 생존을 위해 대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이주했다. 이들은 미국에 정착해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고 미국 성교회를 발전시켰으며 이권을 위해 영국 본토와 손을 잡았다. 영국과 합심해 미국에서 프랑스를 몰아낸 후 영국이 경제적 억압을 가하자 청교도의 반골 정신은 독립전쟁으로 이어졌고 결국 승리해 미연방을 세웠다. 미연방의 설립 때부터 국교의 제정은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지만 현제까지도 종교가 정치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미국을 이끌어가고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신도를 보유하고 있는 이슬람교는 중동과 아프리카 그리고 중앙아시아 일대에 널리 퍼져있다. 이슬람교의 초기 행보는 (의외로) 타종교에 관용적인 모습을 띤다. 7세기 아라비아 반도의 헤자즈에서 탄생해 주변으로 세를 확장해 간 이슬람은 종교적 신념보다는 실질적 이득에 더 관심을 보였다. 이슬람의 팽창은 정복전쟁이 주는 이득을 더욱 갈망하게 했고 사산 왕조 페르시아를 넘어 유럽을 점령해 그 열매를 누리고자 했다. 그러나 유럽진출이 비잔틴제국에 의해 막히자 방향을 틀어 아프리카와 이베리아 반도로 나아간다. 


이슬람은 종교적 신념을 앞세워 주변국을 침략했는데 이것은 '코란'의 가르침이 아닐 뿐더러 기대한 바와 같은 종교적 성취를 이루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침략행위는 빈번하게 발생했는데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이권의 찬탈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의 십자군 원정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의 지하드 또한 결국 이권 다툼의 연장임을 종교라는 허울로 교묘히 감추고 포장해 그럴듯한 명분으로 자행되었던 것이다. 





<종교 권력은 세계 역사를 어떻게 움직였나>는 종교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한지, 지배층이 어떻게 종교를 착취와 지배의 도구로 사용했는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과 더불어 세계사의 흐름을 파악하고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데 큰 도음을 준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공부하는 마음으로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얀 토끼를 따라가라 - 삶의 교양이 되는 10가지 철학 수업
필립 휘블 지음, 강민경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엘리스는 하얀 토끼를 따라가다 이상한 나라에 도착하고 영화 <메트릭스>의 네오는 '하얀 토끼를 따라가라'는 메시지를 보고 토끼 문신을 한 여자를 따라가 진실된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최고의 여행은 미지의 땅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는 여행이다."는 말처럼 철학은 삶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담금질한다. 이 책은 신, 감정, 자유의지, 인식, 의지, 죽음 등의 10가지 주제에 대해 현대철학이 제시하는 방향을 담고 있다. 저자는 철학이 어려울수록 심오하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고 흥미롭고 이해하기 쉬운 철학, 새로운 세상이 아닌 현실을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철학을 제안하고 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해봤을 법한 주제들에 대한 철학자의 생각은 좀 더 명확하고 논리적인 답변을 추구하는데 '감정'을 예로 들자면 감정이 선천적인지, 감정이 생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감정의 조작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와 같은 의문에 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감정의 정의부터 감정의 원인과 영향까지 인간의 감정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수많은 결과물에 대해 객관적 성찰을 문자로 드러내는 것이다. 

<하얀 토끼를 따라가라> 본문의 내용들은 어떤 질문에 대한 논리적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루는데 이 과정에 새로운 질문이 생기기도 한다. '믿다' 챕터에서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를 논하면서 '신은 스스로 들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돌도 창조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내비친다. 이 질문은 유신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용도로 쓰일 수도 있고 사람들이 신의 존재와 역량에 대해 논리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신의존재증명(Gottesbeweis)을 시도한 '안셀무스'나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을 읽으며 논리적 사고를 시도할 수도 있다. 영성, 신성, 종교, 신에 대한 무신론자들의 자연과학적 접근과 유신론자들의 예감이나 믿음을 기반으로 한 접근을 비교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고를 해 볼 수도 있다. 철학은 이러한 모호한(답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설득되지 않는 반대에 직면해야 하는) 주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오컴의 면도날'같은 직관적이고 합리적 결론을 추구하고 있다.


인간은 많게는 한 세기 가량 세상을 살다 가는데 종국에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산다는 것, 죽는다는 것을 재조명하는 것도 철학의 범주에 속한다. 지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은 보통 두 가지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죽은 자에 대한 긍정적 기억과 시신에 대한 부정적 두려움이다. 시체를 표현할 때 보통 부모, 친구, 친지 등이라고 여기지만 철학적으로는 '과거 ~였던 사람으로부터 남겨진 물질'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음은 모든 생명체의 종착점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품지 않는다. 간혹 지인의 죽음으로부터 그 의미를 간접체험할 뿐이다. 


죽음이 주는 두려움은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에 대한 언급을 터부시하게 만들었고 기피해야 할 무엇으로 여겼다. 죽음을 사유해 보자면 신체적 죽음과 의식적인 죽음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고 이 두가지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이게 된다. 죽음을 자연과학적으로 정의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유한성으로 인해 어떤 이는 삶을 긍정적으로 보기도 하고 다른 이는 삶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기도 하는데 자신의 삶이 어떤 모습인가는 그 사람의 현재의 삶에 대한 만족과 죽음에 대한 관점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우리가 사는 삶이 현재 어떤 의미를 띠고 있으며 죽음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 것인가는 난해하지만 직면해야 하는 주제이다.  


<하얀 토끼를 따라가라>가 다루는 10가지 주제 가운데 위에서 언급한 3가지(감정, 믿음, 죽음)를 간략히 적어봤는데 다른 주제도 마찬가지 양상을 띤다. 주제(단어)의 정의를 구체화하고 그것이 삶에서 어떤 의미를 띠는지에 대해 분명한 말로써 드러낸다. 








<하얀 토끼를 따라가라>를 읽다보면 철학에서 사용되는 단어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와 다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철학은 말이나 언어로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들에조차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 <하얀 토끼를 따라가라>에서 다루는 10가지 주제 모두가 삶에 밀접하게 녹아있는 부분이며, 우리가 나름의 이해와 신념을 갖고 있는 분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자의 시선으로 재조명된 후에는 우리가 이해했던 것과는 약간 다르거나 훨씬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데 이를 통해 사고를 명료하게 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하얀 토끼를 따라가라>에 담긴 철학자들의 고민(답)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깊게 만들어주고 사고능력을 더 높은 단계로 끌어주는데 도움을 준다. 저자가 서문에 밝힌 것처럼 철학이 어렵지 않고 현실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점을 증명하듯 전체적으로 편안히 읽을 수 있으며 대주제와 소주제는 우리가 생각해봤을 법한 범주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다.

철학에 관심있는 독자들뿐 아니라 인문/교양 서적을 찾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좋은 권하고 싶은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