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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책세상 세계문학 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정회성 옮김 / 책세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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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학, 특히 고전이 한국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오고 널리 읽히는 것과 달리, 일본 문학에 대한 한국인의 일반적 정서는 '약간의 거리감'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근현대사의 아픔으로 인해 한국인의 마음 한 켠에 일본에 대한 배타적인 마음이 웅크리고 있는 탓도 있겠으며 이웃나라임에도 국민정서가 크게 다르다는 인식도 작용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돌이켜보면 내 글읽기도 고전을 비롯한 중국 문학은 적잖이 읽은 듯 하지만 일본 문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는 수 년 전에 <대망>을 읽은 정도와 작년인지 올 초인지 가물거리지만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 몇 선을 접한 정도가 떠오를 따름이다. 이 작품들은 그것들이 갖고 있는 유명세 만큼이나 내게 신선하게 다가와 '재밌다'는 느낌을 듬뿍 선사해 주었고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생각과 행동을 좀 더 이해해보고 싶어 <국화와 칼>이라는 고전을 찾게 되는 계기를 주기도 했다. 




이번에 소개하게 된 <인간 실격>은 한 때 천재 작가로 칭송받았으나 불운한 삶으로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이다. 

주인공 요조는 풍족한 가정환경에서 나고 자랐지만 어렸을 때부터 '인간 무리'에서의 정체성을 찾기 어려워한다. 부모님에게서도, 형제에게서도, 그 외의 주변사람들로부터 '함께 살아간다' 혹은 '같이 한다'는 느낌을 얻지 못하고 단지 그들과 섞이기 위해 자신이 내면에 품은 이질감과 의문을 숨긴 채 '어릿광대'처럼 행동한다. 다행히 총명한 머리와 능숙한 연기로 많은 이들에게 '조금 특별한 아이' 정도로 인식되며 무리에 섞여 지내지만 요조에게 인간이란 여전히 낯설고 어렵고 두려운 존재로 남아 있다. 


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온 요조, 그가 접한 도시의 풍경과 사람들도 낯설긴 마찬가지였으며 잠시나마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해소시켜주는 것이라곤 술과 담배, 여자, 그리고 당시 유행하던 좌익사상(공산주의)정도였다. 그러나 요조가 느끼는 해방감은 찰나에 불과했고 술에서 깨면, 좌익사상에 대한 회의감이 찾아올 때면 여지없이 자신이 다른 인간과 다르며 스스로는 인간으로서 부적격하다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찻집의 원숙한 여인이나 약국의 순수한 소녀를 만나며 자신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기도 하지만 그 또한 일시적일 뿐이었다. 


한량인 친구 호리키와의 방탕한 생활이 요조를 현실로부터 조금 떨어뜨려 놓았지만 그가 가진 본질적인 다름이 다시금 요조를 인간 무리에서 괴로움에 시달리게 했다. 그는 생을 마감하는 것이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인간 무리를 위한 최선책이라 생각하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을 마감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동반자살을 시도했던 여인만 죽고 자신은 살아남게 되자 본래의 고뇌에 죄책감과 주변의 따가운 눈총이 더해졌다. 


요조는 인간 세상 어디에서도 자신의 설 자리를 찾지 못한다. 현실도피를 위한 일탈을 더해갈수록 그의 몸이 망가져 갈 뿐 어떤 사람과 어떤 일에서도 '요조'라는 인간의 적격성을 발견하지 못한다. 술에 찌들어 지낸 시간은 결국 그에게 결핵을 안겨줬고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복용하는 과정에서 몰핀에 중독된다. 이를 안 가족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되면서 늘 그랬듯 인간 무리에 적합하지 못한 자신을 재발견한다. 


요조는 생각했다. 인간이 보여주는 모순된 행위와 그에 대한 불이해, 거기서 오는 인간에 대한 두려움, 그럼에도 그런 무리들과 어울어져 살아야 한다는 생존의 욕구, 이 모든 것들이 어렵고 어려운 것이지만....결국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깨달음. 요조는 지난 모든 고통의 시간과 현재의 고뇌도 지나가리라는 믿음을 얻게 됐다. 




<인간 실격>은 20세기 중반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남달랐던 주인공이 뭇 인간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들을 떠나 홀로 존재할 수 없음에 자신을 감추고 보통의 인간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다름을 재확인할 뿐인 삶에서 요조는 외로움, 슬픔, 두려움, 고통, 그리고 무기력함을 느낄 뿐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일반인들과 다름은 보통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되는데, 전체주의에 물들어 있고 남들의 시선을 지극히 신경쓰는 당시의 일본에서 요조라는 인물의 삶은 감옥과도 같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본문에서 요조가 '감옥에 가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 그의 삶이 감옥보다도 외롭고 두려웠음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 실격>에서 '다자이 오사무'가 요조라는 주인공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자신의 고독과 고통은 일본인의 정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일본인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한 책(이를테면 국화와 칼)을 접한 후 읽게 된다면 더욱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인간 실격>은 다소 어두운 분위기로 전개되지만 이를 읽으면서 재미와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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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문명 1~2 - 전2권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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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접했던 <개미>를 시작으로 최근의 <심판>에 이르기까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기발한 발상으로 독서의 몰입도를 높여주곤 했다. 대략 2년 전 쯤 발간된 <고양이>도 그런 작품가운데 하나였는데, 인간들이 행한 테러와 전쟁으로 인간문명이 붕괴될 위기에 처했을 때 도도한 암고양이 바스테트와 현자인 수고양이 피타고라스가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극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고양이>의 주인공인 바스테트와 피타고라스는 동료들과 함께 세느강의 시뉴섬에 정착했는데 온 파리를 장악한 쥐떼들은 세느강을 건너 시뉴섬까지 습격해 왔다. 바스테트의 임기응변으로 쥐떼의 1차 침입은 막아냈지만 절대적인 수에서 크게 밀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어질 쥐떼의 공격이 성공할 경우 섬에 있는 인간과 고양이의 멸종까지 감수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이에 현자인 피타고라스는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방대한 지식을 후대를 위해 남겨놓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시뉴섬을 벗어나 보다 안정적인 곳으로 공동체를 피신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양이와 인간의 우호적 관계는 약 1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농경을 주업으로 하는 정착생활이 확산되면서 곡물을 쥐로부터 보호해 줄 수단이 필요했고 쥐의 천적인 고양이가 해결책으로 부상했다. 이해관계의 일치로 인간과 고양이는 공생관계를 이어갔고 지역에 따라 고양이를 신으로 추앙하기도 했다(예를 들어 주인공 바스테트는 고대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고양이 모습을 한 다산과 풍요의 여신 이름이다). 때로는 종교적 박해가 인간사회를 넘어 고양이에게까지 전파되면서 온갖 수난을 겪기도 했다. 17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고양이에 대한 박해가 멈췄고 인간들이 자유롭게 고양이와 함께 할 수 있었으며 21세기에 이르러 고양이는 프랑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반려동물의 자리를 꿰차게 됐다. 


피타고라스의 의견에 따라 시뉴섬으로 피신했던 인간과 고양이의 공동체는 보다 안전한 장소로 여겨지는 시테섬으로 이동한다. 시페섬 둘레를 따라 방벽을 설치하고 세느강 연안과 연결된 부위를 막음으로써 쥐떼의 습격을 막는다. 쥐떼의 수장이던 캄비세스는 시뉴섬에서의 패배로 탄핵되고 그 뒤를 이어 티무르가 쥐떼를 이끌게 된다. 실험용 쥐였던 티무르는 피타고라스처럼 이마에 제 3의 눈(인간의 실험에 의해 만들어진 뇌와 연결된 USB 포트)를 갖고 있었고 피타고라스가 그렇듯 UBS 포트를 통해 인터넷의 수많은 정보를 취득할 수 있었다. 티무르는 인간과 고양이에 대한 큰 적대감을 품고 이들을 궤멸시킬려는 목적으로 전면전보다 시페섬을 포위해 섬 안의 공동체를 고사시키는 작전을 수행했다. 티무르의 무리에 위한 포위를 돌파하기 위해 시페섬의 인간과 고양이들은 하늘을 나는 열기구를 띠워 외부에 도움을 청하게 된다. 


열기구가 성공적으로 작동해 시페섬을 빠져나오는데는 성공했지만 파리 대부분의 지역은 이미 쥐 떼들에 장악된 상태였다. 인간들이 거주했던 공간들은 쥐나 다른 동물들이 점유했다. 인간의 지배가 사라진 후의 세상은 가장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 쥐 떼 뿐 아니라 개, 돼지, 고양이 등이 각자의 영역을 구축해 살아가고 있었고 바스테트 일행은 쥐 떼를 피해 다니면서 원군을 확보하고자 노력했지만 흔쾌히 지원을 약속하는 동물집단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우여곡절 끝에 바스테트 일행은 인간 생존자들이 모여사는 곳에 다다랐고 그곳은 쥐, 고양이, 토끼, 돼지 등 다양한 실험동물들에 '제 3의 눈'을 부여한 실험실이 있는 곳이었다. 바스테트는 자신도 피타고라스처럼 인간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인간의 방대학 지식에 대해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제 3의 눈'을 얻고자 했고, 자원해서 '제 3의 눈' 수술을 받게 된다. 수술결과는 성공적이였고 바스테트는 인터넷 접속을 통해 인간과 직접 소통하거나 인간의 정보에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인간 사회의 붕괴의 원인이었던 테러와 전쟁은 인간 사회가 무너진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바스테트 일행이 머물던 실험실에는 (어떤 열정적인 연구원에 의해) 현재까지 존재하는 모든 인간 문명의 기록을 저장한 장치(ERASE)를 만들어 보관하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단순한 지식 뿐 아니라 치명적인 무기 제조법 등이 수록돼 있었다. 극단주의자들은 강력한 무기를 얻고 자신들이 정보를 통제해 사람들을 지배하고자 실험실을 공격했고 ERASE를 탈취해 간다. 바스테트 등은 ERASE를 탈환하는 임무에 나선다. 


시테섬의 포위를 뚫기 위한 원군 확보를 위해 열기구를 탔던 바스테트 일행...처음의 목적은 제대로 이루지 못한채 여러 사건에 휘말려 위기에 위기를 겪게 된다. 믿었던 대상에게 뒤통수를 맞기도 하고 인간들이 이전 사회에서 저질렀던 만행에 대한 재판에 엮이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씩 시테섬의 구출에 참여하겠다고 하는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 


개, 앵무새, 돼지, 인간 등! 바스테트 일행은 지원군의 도움을 받아 티무르가 포위한 시테섬의 탈출을 위해 출진한다. 그리고 시테섬을 빠져나온 후, 더 큰 세상으로...




<문명>은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사회의 몰락과 새로운 사회의 도래를 그려내고 있다. 우화가 주는 재미와 더불어 주인공 베스테트의 오만한 모습은 시종일관 미소를 짓게 하는 포인트가 된다. <문명>을 개별적으로 따로 읽어도 전혀 상관이 없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이전 작품 가운데 <고양이>를 먼저 읽어보았다면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지리라 생각한다. 


내가 이제껏 접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들에서 느꼈던 재미와 독창성은 <문명>에도 담겨 있었다. <문명>이 선사한 결말로 유추해 보건데 <고양이>에서 <문명>으로 이어진 것처럼 몇 년 후 <문명>과 이어질 다른 작품이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된다. 그 때 다시 베스테트와 피타고라스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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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개정판
김훈 지음 / 푸른숲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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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의 소설을 몇 편 읽으며 공통적으로 느낀 바는 일상적인 단어로 만들어내는 문장이 지닌 마술같은 변화이다. 늘상 읽고 듣는 단어들을 조합해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그의 작품 곳곳에 녹아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집중하고 몰입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번에 읽게 된 <개>는 2005년에 발간된 작품의 개정판이다. 오래 전 읽었다는 기억과 잔향만 남아, 전반적 줄거리조차 희미해져 버린 <개>를 다시금 읽게 됐다. 


<개>는 진돗개 '보리'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들의 세상이다.  어린 보리, 청년이 된 보리, 그리고 성년이 된 보리가 겪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약간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주인공 보리는 한 마리의 개로써 긍정적이고 씩씩하게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자신의 코와 수염과 굳은 발로 스스로 터득해 나간다. 보리의 모습은 사람의 기준에 비춰보자면 단순하기 그지 없지만 그의 삶은 작은 것들에도 신비함을 느끼고 어디서든 행복을 발견한다. 개보다 훨씬 지능이 높은 인간의 삶이 온갖 불만과 불행으로 얽매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보리에게도 슬픔이 없진 않다. 맏형을 일찍 떠나보내야 했고 어미와 헤어져야 했으며 다른 형제들과도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그리고 김춘수의 '꽃'의 한 구절처럼 "주인님이 보리! 하고 나를 부를 때, 나는 비로소 이 세상의 수많은 개 가운데 한 마리가 아니라 주인님의 개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게 만든 주인의 죽음을 마주해야 했다. 보리는 군자(君子)처럼 생각한다. "지나간 날들은 개를 사로잡지 못하고, 개는 닥쳐올 날들의 추위와 배고픔을 근심하지 않는다.


보리는 즐겁다. 자신이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알아가는 것도 즐겁고 주인들의 곁에서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을 지키는 것도 즐겁다. 보리에게는 어떤 것도 싫증나지 않고 어떤 시간도 충만하지 않은 때가 없다. 스쳐지나는 바람 한 조각, 땅에서 올라온 희미한 내음, 숲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조차 보리를 기쁘게 할 수 있다. 겨울이면 봄을 기다리고 여름이면 다시 겨울을 기다린다. 겨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온 세상이 빛과 힘으로 충만한 봄이여서 고대하는 것이며 여름이 싫어서가 아니라 겨울에는 별들을 가까이 볼 수 있어서 고대하는 것이다. 보리에게 삶이란 아름답고 신비로운 여정이다. 풍경도, 계절도, 사람도 아름답다. 그러나 정작 사람은 그들 자신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것 같아 보리를 의아하게 한다. 


보리는 흰순이를 만나 사랑을 배운다. 누가 그것을 사랑이라 일깨워주지 않았기 때문에 당사자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를 수 있지만 사람의 기준으로 보자면 '사랑'이 맞는 것 같다. 흰순이를 만나는 길에는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악돌이라는 덩치 큰 개를 이겨내야 한다. 악돌이는 심술굳게 다른 개들을 윽박지르고 초라한 행색의 사람을 무시하지만 말끔한 차림의(지위가 높아보이는) 사람에게는 저항하지 않는 얄미운 개다. 보리는 갈등한다. 자신보다 훨씬 크고 강한 상대를 마주해 넘어서야 하는 상황, 보리는 이런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 고민한다.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보리는 회피하지 않는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인지, 그에 대한 해답이 없다면 해답이 없다는 사실만이라도 확인하고 싶어한다. 


보리는 모험을 즐긴다. 도전을 받아들인다. 무섭다고 돌아서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이별이 왔을 때조차 '지나간 날들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단지 '우우, 우우우, 우우우우~' 하고 짖으며 추억을 남길 뿐이다. 





<개>를 통해서도 김훈 작가의 달필을 접하게 된다. 글을 참 잘 쓰신다. 초등학생들도 알만한 단어들을 조합해 몇번씩 되내여 볼만한 문장을 만들어 낸다. 주인이 고깃배를 타고 출항하는 모습에서 '달의 부름을 받아 떠나는' 것으로 표현하는 장면처럼 번뜩이는 재치가 <개>의 곳곳에 묻어있다. 또 어떤 장면에서는 글들이 책에서 나와 스크린에 재생되는 것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눈발이 점점 굵어졌다. 바람이 눈을 휩쓸고 몰아갔다. 흰순이의 모습은 바람 속에서 나타났고,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바람이 멈추고 눈발이 곱게 내릴 때, 흰순이는 눈 속에서 희미한 윤곽만 보였고, 바람이 눈을 휩쓸어갈 때 흰순이는 바람이 쓸어가는 눈 속으로 사라졌다가 바람이 잠들면 다시 희미한 윤곽으로 나타났다." (171 페이지) 


<개>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잔잔하고 서정적이고 교훈적이다. 보리의 가치관은 무척이나 단순해 보이지만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시간 속에서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인생에 정답은 없겠지만 삶의 방향이 '행복 추구'라면 보리를 통해 '내가 너무 복잡하고 각박하게 사느라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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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명화로 보는 셰익스피어 - 베스트 컬렉션 5대 희극 5대 비극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은경 옮김 / 아이템하우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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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1564 - 1616)는 영국 문학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세계적 대문호이며 그의 수많은 작품들은 연극, 영화 등으로 자주 소개될 뿐 아니라, 후대 작가들의 소설, 희곡 등에 영감을 불어넣어 현재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한눈에 명화로 보는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를 대표하는 4대 비극(햄릿, 맥베스, 리어왕 오셀로)과 5대 희극(베니스의 상인, 한여름밤의 꿈, 말괄량이 길들이기, 십이야, 뜻대로 하세요)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추가해 5대 비극과 5대 희극으로 구성하였다.  ​희곡으로 만들어졌던 작품들을 다룸에 있어 간추린 줄거리와 연관된 예술 작품(그림, 사진 등)으로 독자의 흥미를 돋우고 서술과 대본(대사)을 적절히 섞어 가독성을 한층 높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조차 대략적 줄거리를 꿰고 있는 작품 뿐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과 5대 희극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그들을 드러내는 독특한 개성으로 인해 다양한 장르의 책들에서 비유적으로 인용되곤 하는데, 이들 인물들을 들여다보자면 인간이 가진 천성,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생과 사 등에 대해 진중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문학작품과 인문학 서적에서(간혹 딱딱한 역사서에서조차)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한 인물의 이름으로 어떤 상황을 설명하는 경우도 많다. 이를테면 햄릿은 비운의 상징으로, 이야고는 간사한 혀를 가진 간교한 인물로, 샤일록은 표독스러운 사채업자를 나타내는데 사용되곤 한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담긴 인물들은 단순히 선과 악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다양한 측면에서 고찰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이분법적인 분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품에 인용되는 인물들은 인간성의 특정 측면을 반영하는데 사용된다.) 


셰익스피어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어 사용한 강렬한 은유적 표현들은 후대에 깊은 인상으로 남아 5세기가 지난 현재까지도 자주 인용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호소력 짙은 직관적이고 통찰력 있는 문장들은 실생활에도 종종 등장하는데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거나 <십이야>의 "영리한 바보는 미련한 현자보다 낫다."와 같은 표현은 문학적 수준을 넘어 격언처럼 쓰이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과 5대 희극의 작품들은 이전에도 종종 접했지만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면 다시 읽고자하는 생각이 피어오르는데, 이것은 해당 작품에 등장했던 인문들을 다시 접해보고 싶다는 마음과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상이나 간과했던 부분들을 한번 더 읽음으로써 보충해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시 읽게 된 셰익스피어는 이전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부분들을 세세히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고 문장에 담긴 의미를 다시금 곰곰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했다.  


지금 당신 말한 대로 생각한다 믿지마는 아무리 뜻을 세웠다 할지라도 깨질 수 있는 법이오. 결심이란 기껏해야 기억력의 노예일뿐, 태어날 땐 맹렬하나 그 힘이란 미약한 것이오.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아니하며, 사랑조차 운에 따라 바뀌는 건 이상할 것 하나 없소. 그리하여 둘째 남편 안 맞겠다 생각하나, 첫째 주인 죽었을 때 그런 생각 죽을 거요. 

(햄릿 왕이 거트루드 왕비에게) 

 

왕비도 언젠가는 죽을 몸이고, 또 그날일 올 줄 알았다. 내일, 또 내일. 이 더딘 걸음으로 하루 또 하루,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어가서 우리의 어제들이 흙덩이 속으로 고꾸라지는 어리석은 자들 앞을 비추리. 꺼져라. 꺼져라 잠시 동안의 촛불아. 인생이란 한순간을 거두는 그림자에 불과할 뿐 무대 위를 잠깐 우쭐대며 오가다 가뭇없이 잊혀지는 불쌍한 배우. 바보가 떠드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격정의 소란으로 가득하지만 덧없는 이야기. 

(맥베스가 왕비의 죽음 앞에서) 


<한눈에 명화로 보는 셰익스피어>는 5대 비극과 5대 희극을 중요한 대목 위주로 지루할 겨를 없이 진행하기 때문에 희곡으로만 쓰인 책을 보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삽입된 많은 예술작품 덕택에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대한 이해를 높일 뿐 아니라 미술에 대한 감상도 겸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순수한 형태로 만나보는 것도 즐거움이 될테지만 <한눈에 명화로 보는 셰익스피어>처럼 가독성을 높인 책을 먼저 접해 셰익스피어에 대한 흥미를 얻는 것도 보람된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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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 원전 번역) - 톨스토이 단편선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8
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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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톨스토이의 대표적 단편을 모은 책으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로 시작해 '대자(代子)'까지 10편의 작품을 소개한다각 작품은 쉽고 간결하게 쓰여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교훈을 담고 있어 마치 '어른을 위한 동화'로 읽혀졌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는 가난한 구두장이 부부, 거만한 부자, 그리고 자비로운 여인을 통해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가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사랑이 있는 곳에 신도 있다'에 담긴 성경의 구절은 이 소설의 주제를 대변하고 있는데 나를 비롯한 현대인들이 간과하는 보편적 원칙을 상기시켜 준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끝없는 인간의 욕심은 화를 부른다는 사실을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의 주인공 바흠에게서 배울 수 있다. '사람에게는 얼마의 땅이 필요한가'는 (이제껏 저자와 제목을 몰랐을 뿐)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들어봤을 이야기이기 때문에 아주 친숙하게 다가왔다.


'촛불'에는 악덕이 쌓이고 쌓여 자신을 죽음으로까지 내몬 관리인의 이야기를 담겨 있는데 내용 중 소작농들이 이야기하는 참새 이야기는 교훈적이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그냥 참새처럼 입으로만 떠들지. '뭉쳐야 돼, 뭉쳐야 돼.' 그렇게 철석같이 약속해놓고 정작 일이 닥치니까 꽁무니 빼는 꼴이라니. '배신하면 안돼, 배신하면 안돼, 다 같이 뭉쳐서 맞서야 돼!'라고 떠들다가 막상 매가 나타나니까 숲으로 달아나버리는 참새 떼랑뭐가 달라. 그러니까 매는 한 마리만 노렸다가 잡아채 가는 거지, 그러고 나면 참새들이 다시 나와 짹짹거리지. 그리고 한 마리가 없어진 걸 알고는 떠들어대. '누가 없어졌지? 바니카구나! 그놈은 그런 꼴을 당해도 돼. 그럴 만 해.' 자네들이 꼭 그 꼴이야....


사람들이 종종 잊곤 하는 '파랑새는 내 곁에 있다'는 사실처럼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 가장 중요한 사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에 대한 답이 '세가지 질문'에 담겨 있다. 현자가 왕에게 전해준 교훈은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며 함께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점이다. 파랑새를 찾아 떠났던 틸틸 남매가 결국 자신들의 새장에서 파랑새를 발견한 것처럼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어떤 것들은 모두 우리 자신과 주변에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바보이반'의 3형제는 군인으로서, 상인으로서, 그리고 우둔한 농부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각자의 직분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만 최후의 순간까지 변함없는 풍요를 누린 것은 손에 굳은 살이 박히게 부지런히, 성실히 일한 농부 이반이었다. 권력과 재력에 탐닉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거나 다른 이들의 것을 탐하다 좌절에 이른 두 형들에 반해 이반은 자신이 풍족할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항상 베푸는 것을 당연시했고 노동이 주는 삶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인간 사회의 불화는 '불을 놓아두면 끄지 못한다'에 잘 표현돼 있다. 이반과 가브릴로의 반목을 보며 이반의 노쇠한 아비가 '다른 사람의 잘못은 눈앞에 놓고 자기 잘못은 등 뒤에 놓고 있다'고 말한 것은 주인공들의 이기적이고 편협한 행태를 나무라기도 하지만 나 자신에게도 쓰디 쓴 충고로 느껴졌다


'두 노인' 은 순례길을 떠나는 예핌과 예리세이의 엇갈린 여정을 그리고 있다. 인생의 황혼기에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떠나는 예핌과 예리세이는 예기치 못한 일로 인해 서로 헤어지게 되고 예핌은 예정대로 예루살렘에 이르지만 예리세이는 중도에 포기하고 다시 마을로 돌아오게 된다. 두 노인의 행보를 통해 신의 뜻은 자신을 찾아 먼 길을 찾아온 예핌보다 '사랑'과 '박애'를 몸소 실천한 예리세이에게 향해 있음을 알게 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담긴 톨스토이의 10개의 단편 가운데 적어도 서너개는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내용이다. 다만 그 글의 제목과 저자를 몰랐을 뿐!

톨스토이의 시대는 종교가 흔들리고 전제국가의 가치관이 위협받던 시기였다. 그의 단편 소설에는 이런 환경에서 톨스토이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미덕을 엿볼 수 있는데 하나님에 대한 믿음, 인류에 대한 박애, 노동의 숭고함 등이 그것이다. 기독교도라면 더욱 더 공감할 법한 내용이 많고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교훈적 어른동화로써 재밌게 유익하게 읽을만한 주제들이다.


이전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를 읽을 때는 지루함이 없지 않았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단편들은 간단명료한 진행으로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위의 단편들을 통해 톨스토이의 사상을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 '이샤야 벌린'과 '슈테판 츠비이크'의 글에서 작가로서의 톨스토이가 아닌 인간 톨스토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더해져 톨스토이라는 인간을 좀 더 이해하게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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