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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인류 - 인류의 위대한 여정, 글로벌 해양사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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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땅을 딛고 살아간다. 하지만 지구의 71%를 덮고 있는 바다는 인류의 팽창과 발전의 터전이 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그 가치는 변함없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바이다. 주경철의 <바다인류>는 인류가 이룩한 문명의 발전과정을 바다와 결부시켜, 바다가 인간의 문화와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조명하고 바다가 가진 무궁한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태어나 유럽으로, 아시아로, 아메리카로, 그리고 오세아니아까지 세력을 넓혀 나가면서 바다는 이동의 걸림돌이 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인구 과잉이나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등의 목적에 의해 인간 무리는 이동을 결심했고 항해술을 발전시켰다. 그 결과 남극을 제외한 전 대륙에 인간의 손길이 닿게 되었고 인류는 지형적 제약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진화되었다. 


인류가 바다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시기를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려운 면이 많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지적 수준에서 살펴보자면 바다를 광범위하게 활용한 첫 번째 지역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며, 초기 이를 주도한 세력은 이집트였다. 이집트는 근방의 지역들과 교역과 교류를 위해 해로를 이용했으며 레반트, 에게해, 키프로스, 소아시아 연안 국가들과 잦은 왕래를 했다. 기원전 13-12세기 경 이집트가 쇠퇴하면서 지중해 무역에서 두각을 드러낸 것은 페니키아였다. 페니키아는 특정 국가라기 보다는 고대 가나안 지역의 문명을 일컫는 말로써 주로 지중해 남부 연안에 해상 교역망을 구축했다. 페니키아는 지중해 서쪽으로 세력을 팽창하면서 카르타고, 가디르와 같은 식민도시를 건설했으며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대서양까지 진출하였다. 이런 팽창의 동기는 금, 은, 구리 같은 광물자원과 수산업 및 교역이 가져다주는 이문이었다. 


페니키아의 확장을 보던 인접국가 그리스도 페니키아와 같은 노선을 걸었다. 그리스는 지중해 동부, 아프리카 연안, 시칠리아, 프랑스 남부, 그리고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식민도시를 건설했고 광물, 올리브기름, 도자기, 포도주, 직물 등을 교역했고 문학, 건축, 예술 등을 전파/교류했다. 여기서 지중해는 그리스 민족의 확산과 교역의 실크로드로 작동했다. 


기원전 6세기 중동지역에서 페르시아가 제국으로 성장하면서 인접국들에 대한 지배를 강화했다. 이에 대한 저항이 일자 페르시아는 무력으로 진압했고 소아시아 서부 해안을 따라 존재하던 그리스 식민도시들의 봉기가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밀레투스를 들 수 있는데 페르시아에 대한 밀레투스의 저항과 이를 지원한 아테네는 결국 페르시아에 부딪치게 된다. 다리우스와 크세르크세스, 대를 이어 벌어진 페르시아 전쟁은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연합군이 승리하면서 페르시아 세력은 위축된 반면 아테네의 입지는 크게 강화되었다. 


아테네가 그리스 도시국가연합(델로스 동맹)을 이끌며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려 하자 델로스 동맹 내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그리스의 강대국인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연맹과의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결국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이어졌고 스타르타 연합군이 승리하면서 아테네의 기세는 꺾이게 된다. 


기원전 6세기부터 두 세기에 걸친 전쟁으로 그리스가 몸살을 앓고 있는 사이 지중해 중부에서는 로마와 카르타고라는 걸출한 국가가 성장하고 있었다.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외부로 눈을 돌렸을 때 이미 지중해 해상을 장악하고 있던 카르타고와의 충돌을 피할 수 없었으며 3차례의 포에니 전쟁을 거치며 카르타고를 복속시키고 지중해 패권을 장악한다. 이어진 지중해 동부 세력과의 쟁탈전에서도 승리함으로써 기원전 1세기 무렵에 이르렀을 때 로마는 지중해를 내해(mare internum)로 여기게 된다. 


로마가 지중해 패권을 장악하던 시기 동아시아, 인도 아대륙, 동남아시아, 그리고 중국에서도 활발한 해양활동이 이루어졌다. 육상 교역보다 수월했던 바다 교역은 중동에서부터 동아시아에 이르는 광활한 해역을 연결시켜 주었고 수많은 도시가 무역로를 위한 징검다리 역활을 수행하거나 무역의 중심이 되어 성장하였다. 


로마가 전성기를 구가하다 제국이 분열되고 5세기 말엽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동로마 제국 또한 점차적으로 힘을 잃어가던 시기 중동지역의 힘이 커지기 시작했다. 7세기 이슬람 세력이 등장해 중동 전역과 지중해 동부를 장악하기에 이르렀고 이내 아프리카와 스페인까지 그 세력을 확장시켰다. 로마 제국은 수많은 국가들로 분열되었으며 로마의 내해였던 지중해는 많은 국가들의 교역로로 이용되었다. 이슬람의 지배력이 강해지면서 홍해를 통한 무역로의 활용이 어려워지자 지중해를 벗어나 대서양과 아프리카 대륙을 이용한 새로운 항로가 개척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고 인도로 향하는 새로운 항로가 개척되었다. 해양 세력의 활동범위가 더욱 넓어진 것이다. 


15세기 말에 콜롬버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이 서유럽에 소개되면서 대서양을 이용한 항로가 적극적으로 개척되었고 수많은 교류가 행해졌다. 자원을 수탈하기 위한 인간의 움직임을 따라 생태계 전체가 교류되었으며 천연두와 같은 각종 질병 또한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서유럽이 주축이 된 아메리카 원정대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을 거의 멸절시켰지만 신대륙을 식민지로 활용하고자 하는 강대국들의 움직임에 따라 유럽의 이주민, 아프리카의 노예, 중국의 노동자 등이 아메리카로 향했다. 유럽의 강대국들의 움직임은 아메리카에서 멈추지 않았다.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혹은 지중해를 넘어선 해로를 통해 인도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동아시아까지 그 세력을 미쳤으며 상대적으로 우월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이런 지역들을 식민지화했다. 이 시기부터는 전지구적인 교류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해로가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역활을 수행했다. 


산업화가 먼저 진행된 유럽 열강들은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무력을 동원해 세계의 다른 지역들을 지배하기 위한 각축을 벌인다. 아메리카 대륙 뿐 아니라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 동아시아의 수많은 국가가 서구 열강에 지배당했고 착취당했다. 인류의 기술의 진보는 범선을 대신할 증기선을 발명했고 증기선이 대두되자 해양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이 크게 상승했다. 산업화와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18세기 중엽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내란으로 쇠약해진 무굴제국을 정복했고 19세기 중엽에는 중국과 두차례의 아편전쟁을 벌여 승리하며 동아시아를 침략했다. 해양에 대한 지배권과 해군력이 취약했던 거대 제국들은 수적/지리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열강의 선진화된 해군력 앞에 쉽사리 무너졌다. 19세기 말엽부터는 증기선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고성능의 엔진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세계는 좁아졌고 열강들이 전세계적 지배를 행사하고자 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결국 근대사에 제국주의의 대두를 불러오고 침략과 약탈로 세계사를 얼룩지게 했으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초래한다


현대에 이르러 바다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면서 세계의 패권은 미국과 소련의 양강구도로 짜여졌고 이들 국가는 상대국을 압도하는 군사력을 가지고자 군비경쟁에 돌입했다. 무기는 보다 강력하고 정교해졌으며 핵폭탄, 수소폭탄 등 소위 게임체인져라 불리울만한 위력을 지닌 무기들이 속속 등장했다. 더욱이 잠수함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의 형태로 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는 기술적 발전을 이루면서 강대국들의 대양지배에 대한 욕구는 더욱 커졌다. 바다는 식량자원의 보고, 교역을 위한 실크로드를 넘어 군사적 이점을 차지하기 위한 필수요인으로 자리잡게 됐다. 20세기 말 소련이 붕괴되었지만 소련의 빈자리를 중국이 차지함으로써 미국과 중국이 많은 갈등을 야기하고 있고, 남중국해나 동중국해는 자칫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화약고로 비춰지고 있다. 


초반에 언급했듯 바다는 전체 지구 면적의 2/3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인류의 생존에 직결되는 자원의 보고이다. 해양 자원은 앞으로 인류가 번영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고 폭발적 인구증가를 떠받칠 수 있는 곳은 바다 외에는 상상하기 힘들다. 현재 국제문제로 대두되는 환경오염이 바다와 그 안의 수많은 자원을 파괴시키고 있기 때문에 낙관적인 전망만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인류가 바다를 미래를 위한 희망으로 인식하고 바다를 지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면 바다는 인류에게 풍부한 식량, 각종 해저 자원, 우수한 교역로, 해저 도시 등을 제공할 것이기에 인류의 미래는 바다에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바다인류>는 바다를 품은 인류의 역사이다. 인류의 문명이 발전해 온 과정에서 바다가 활용된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바다가 인류의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세계사 책이라 칭해도 부족하지 않을만큼, 기원전 10세기 무렵부터 현대사회에 이르는 과정에 인류가 만들고 겪은 수많은 사건을 다루기에 9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어느 곳 하나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다. 바다가 제목에 적혀 있으나 실제로는 세계사 그 자체라 할만하기 때문에 인류 역사에서 바다가 얼마나 중요한 역활을 담당해왔는지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바다인류>에 담긴 역사는 사람과 물자, 정보와 문화 요소들이 바다를 통해 교환되고 섞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거나 보다 진보된 기술을 불러온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또한 과거, 현재, 미래로 갈수록 더욱 바다의 중요성이 높아짐을 강조하고 있다. 인류의 미래가 바다에 담겨 있다는 저자 주경철의 말을 다시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류의 기술이 진보할수록 바다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와 수단이 증가하게 되고 바다가 품고 있는 자원의 가치는 더욱 상승할 것임은 자명하다.  


<바다인류>라는 책을 읽으며 세계사를 한 번 정리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 리뷰는 지면상의 이유와 연속성의 문제로 서양사에 치중해 적었지만 <바다인류> 내용의 상당부분은 중동, 인도, 동아시아의 해양사를 포함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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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와 천황 - 일본의 이중구조를 이해하는 두 가지 방법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이마타니 아키라 지음, 이근우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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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를 접하다 보면 천황이란 존재에 대한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전제군주라기 보다 상징적 존재로 비춰지기도 하고 실존하는 통치자가 아닌 종교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질 때도 있다. 일본의 무사가 권력을 쥐고 흔들었던 막부 시절, 우리가 익히 아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의 무장이 활개를 치던 시절에도 천황의 존재는 항상 그들과 함께 논의되었다. 실권은 빈약할지라도 천황이란 존재가 갖는 상징성(신의 후손이며 일본의 최고 지위에 있다는 믿음)에 의해 막부의 수장들조차 천황을 버리지는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무가와 천황>은 12세기 말엽부터 메이지유신 직전까지의 시기동안 무가(막부)와 천황 사이에 일어났던 패권 다툼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이 둘 사이의 균형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통해 일본의 중세를 들여다보고 있다. 


일본은 천황이 다스리는 단일왕조 국가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기도 한다. 천황이 일본 역사에서 왕조라 칭해질만큼 권력을 떨치는 자리였는지가 의문으로 남는데 <무가와 천황>에 실린 내용을 보자면 가마쿠라 막부(1185년부터 1333년까지)와 무로마치 막부(1336년부터 1573년까지)를 거치며 천황의 세는 크게 위축되었다. 당시 천황가에는 권력자의 가장 큰 무기라 할 수 있는 군수통제권은 물론이고 과세권이나 경찰권까지 막무에 모두 빼앗겼으며 연호의 제정이나 제사의 주최권 정도만 유지되었을 뿐이다. 이 의례적이고 종교적인 부분마저도 점차 잃어 16세기에는 천황이란 말 그대로 빈 껍데기처럼 남겨졌다. 드물긴 했지만 천황가의 제위를 찬탈하려는 시도까지 행해지기도 했다. 즉, 당시의 천황이란 허수아비 군주에 불과했을 따름이다. 


의례적이고 종교적인 권위는 16세기 말엽 오다 노부나가 시대에 어느정도 회복하였으나 실질적으로 군사를 부릴 수 있는 권력은 여전히 갖추지 못하였다. 무가의 지배자(쇼균, 정이대장군)의 의중에 따라 꼭두각시 노릇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았고 쇼군의 눈 밖에 나는 경우 유배되거나 강제로 천황의 위를 내줘야 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런 자신들의 처지에 분노하여 변혁을 도모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오다 노부나가가 암살당한 후 권력을 잡은 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그는 농부에서 대장의 위치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써 노부나가 사후 그의 빈 자리를 재빨리 차지했다. 노부나가를 따르던 중신들을 차례로 제거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견고히 해나간 히데요시는 숙적이랄 수 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강화(실질적으로는 항복)을 맺고 나머지 다이묘(대명)들을 굴복시키며 열도의 통일을 이뤄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열도를 병합했지만 그의 출신의 한계로 쇼군(천출인 히데요시가 쇼군의 지위에 오를 명분이 없었다)의 위치에서 전국을 통치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그는 결국 임진왜란을 일으켜 대의명분을 획득하고 쇼군의 지위를 얻고자 했으며 아직 전력이 온전한 다이묘들을 약화시키려 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런 히데요시의 의견에 반대했고 여러 핑계를 대며 임진왜란에 참전하지 않았다. 


1598년 히데요시가 생을 마감하자 그의 권력은 도요토미 히데요리에게 이어졌으나 아버지와 달리 굳건한 군사력을 가지지 못했단 히데요리는 결국 야심을 드러낸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자결로 내몰렸다. 결국 열도의 권력은 도쿠가와 가문으로 이어졌다. 


막부의 성장과 견고함은 천황가의 위축으로 이어졌지만 천황의 위치와 그가 내리는 윤지는 (비록 막부의 지시를 이행하는 것일지라도) 대의명분을 상징했기에 천황이란 존재를 내치지 않고 막부는 천황의 지위를 이용하곤 했다. 자신의 경쟁자를 토벌하거나 자신의 사람을 요직에 앉히거나 자신이 하는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할 때 천황의 윤지를 오용하였다. 이에야스의 시대에는 아예 천황가에 자신의 후손(딸)을 시집보내 자신은 국구가 되고 천황가 자체를 손아귀에 쥐고 흔들 수 있는 척신정치를 꿈꿨다.

막부의 권력(군사력, 지배권)이 강해짐에 따라 천황가의 위상은 더욱 형이상학적 위치로 강제되었으며 상징성을 제외하고는 천황가가 통치 전반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18세기 말엽부터 서양열강의 압력이 거세졌고 막부의 군사력이 이를 저지할 수 없음이 자명해지자 막부는 천황의 권위에 의존하게 된다.

외압에 의한 위기는 일본은 신국이다 고 말한 히데요시나 일본은 신국이자 불국이다라고 한 이에야스의 말처럼 일본을 천황이 최상위에 위치한 신국으로의 회귀와 존왕사상의 대두를 불러왔다. 더불어 외세에 무력한 막부를 타도하고자 하는 운동이 활발해졌고 결국 메이지유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무가와 천황>이란 책에 담긴 일본의 역사는 아마 일본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리라 생각되는 중세 막부시대를 담고 있으며 막부와 천황의 관계를 배타적이라기 보다 공생관계로써 풀어내고 있다. 이 시대의 천황은 '을'의 입장에서 막부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럼에도 천황이 상징하는 위상은 신의 자손이자 최고지위를 상징했으며 이것은 후일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의 성장과 제국주의에 물든 일본을 설명해주는 주요한 열쇠가 된다고 생각한다. 


등장인물이 많고 역사가 간략히 설명되고 있어 쉽게 읽히진 않지만 일본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읽어 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며 특히 일본사를 파편적으로 알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매우 유용한 책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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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세계사 - 9개 테마로 읽는 인류 문명의 역사
표학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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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읽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건과 얼마나 많은 인물이 얽혀 있는지 가늠하게 된다. 인간의 수명을 넉넉히 일 백 년이라 가정하더라도 보통의 사람이 직접 경험한 역사란 전체로 보았을 때 편린에 불과할 것이기에 인간 문명의 발자취를 되짚어보기에 역사를 다룬 서적은 항상 최고의 스승이라 생각한다. 


특정 국가, 민족, 혹은 제국의 역사라 할지라도 깊이 있게 알고자 하면 전공자가 아닌 이상, 마주해야 하는 방대한 양에 질려 어느새 역사가 지루하고 고루한 학문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때문에 역사서를 읽더라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몇몇 사건이나 인물에 치중하게 되는 경향이 있어 세계사의 전체적 맥락을 이해하기 보다는 특정 지역의 특정 인물에 의한 특정 사건의 나열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런 현상이 나쁘거나 부족하다고 여기진 않으며 오히려 역사에 대한 흥미를 이어나가고 이후 깊이 있는 역사 공부를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여긴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세계사>라는 책은 다양한 주제를 제시하고 그 주제에 맞는 에피소드를 추려 소개하고 있는데, 어떤 지역이나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 폭넓은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총 9개의 장에 걸쳐 신화, 종교, 종교와 정치, 선동의 정치, 세기의 전쟁, 이슬람, 일본사, 실패한 이상주의자, 여성 지도자, 대도시를 소개하고 있다. 


각 장은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는데 예를 들면 "선동의 정치"에는 프랑스 혁명에서 선동이 어떻게 작동했고 민중을 혁명의 장으로 인도하기 위해 사용된 거짓(선동)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보여준다.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온갖 음해적 소문은 프랑스인의 분노를 촉발했고 혁명에 당위성을 부여했다는 식이다. 미국 독립전쟁에 관한 에피소드에서는 '보스턴 차 사건'을 유발한 독립파(미국의 독립을 원하는 자들)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수의 온건파(영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자들)를 선동하여 독립전쟁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을 소개한다. 20세기 가장 큰 사건이라고 칭할 수 있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가운데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전범국으로 낙인 찍힌 독일, 그 나라를 전란의 아수라장으로 이끈 히틀러와 괴벨스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 대중을 선동하고 세뇌시켰는지를 들여다 보는데 이런 선동 방식이 현대 사회에까지 잔존해 있는 것을 느끼게 되면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가깝지만 먼 나라라 할 수 있는 '일본', 동아시아사의 수장은 중국이 되겠지만 일본의 역사 또한 인접국인 한국의 입장에서 한번쯤 읽어봄직 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정체성'이란 장에서는 일본의 탄생에서부터 막부 시대의 혼란 그리고 일본 열도를 통일하는 기반을 다진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를 이어 대권을 거머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근대에 접어들어 메이지 유신을 통한 발빠른 근대화를 이뤄내며 급성장을 했고 결국 제국주의로 변모해 수많은 침략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결국 미국에 패해 쇠락했지만 고도의 경제성장으로 선진국으로 발돋음한다. 저자는 일본의 초고속 경제성장은 일본이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에 끼친 해악에 대한 역사 청산을 덮는 도구로 활용되었음을 주지시키고 있다. 


재미있게 읽을만한 에피소드들이 많은 장은 이 책의 첫 번째 장인 '신화 이야기'와 마지막 장인 '대도시'라고 생각한다. 그리스 신화, 중국 신화, 북유럽 신화, 티베트 신화, 아메리카 신화는 각 지역의 사상과 문화의 중추적 역활을 해왔고 현재까지도 사회 곳곳에 그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 현대인들에게도 신화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의 진위 여부 보다는 신화에 담긴 문화를 이해하고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을 앎으로써 지식의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도시에 소개된 곳은 콘스탄티노플, 장안, 앙코르툼, 테노치티틀란, 게르마니아 인데 이들 도시가 시대의(적어도 해당 대륙의) 대표성을 띠기도 하지만 도시의 흥망성쇠가 역사적 사건과 결부돼 있음을 소개하고자 함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세계사의 대도시에 당연히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바빌론, 로마, 아테네 등이 빠진 것은 해당 도시가 이미 많은 곳에서 소개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하다 할 수 있는 주요도시를 소개한 저자의 배려로 받아들여졌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세계사>는 시대와 지역을 고루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세계사라는 큰 맥락에서 보면 분명 주안점을 둬야 하는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저자 표학렬은 다양한 사건과 인물을 고루 소개함으로써 더 깊은 역사로 다가설 수 있는 징검다리 역활을 하고자 했거나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사건과 인물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각 장과 그에 속한 에피소드가 분량이 많지 않아 가볍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이 가진 큰 장점이다. 지면 상의 이유로라도 개개의 사건과 인물을 깊이 있게 파고들지는 못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잡아줌으로써 독자가 사건의 핵심에 다가설 수 있도록 돕는다. 지엽적인 것들은 차치하고 역사의 중심에 섰던 사건과 인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가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들이 자주 등장하고 이로 인해 독서의 피로감이 매우 낮아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접하는 역사라는 것은 인간이 만든 셀 수 없이 많은 일 가운데 기억할만한 굵직한 사건의 나열이라고 생각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과거를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가 현대로써 존재하는 이유를 알고자 한다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섣부른 대응이라도 해보고자 한다면 역사를 아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반복되고 사람 또한 같은 실수를 저지르곤 하는데 선현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라는 가르침으로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 질 것이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세계사>에 대한 리뷰를 마무리하며 이 책을 한 줄로 말하자면.....

"흥미로운 사건과 인물을 등장시켜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 이라 평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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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의 역사 - 홀연히 사라진 4천 년 역사의 위대한 문명도시를 다시 만나다 더숲히스토리
카렌 라드너 지음, 서경의 옮김, 유흥태 감수 / 더숲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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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이룬 문명을 돌아보는 책이나 고대사를 다룬 책을 읽다보면 꼭 등장하는 몇몇 단어가 있는데 신석기 혁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수메르, 바빌론, 히타이트, 아시리아, 메디아, 그리스, 페르시아, 로마 등이다. 그리스로마시대가 꽃을 피우기 전, 현재의 이라크에서 시리아 요르단에 이르는 소위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수많은 문명 왕국들이 흥망성쇠를 겪었는데 바빌론 왕국도 그 중 하나이다. 


바빌론 왕국의 명확한 출현시점은 불분명하지만 기원전 3000년대 후기에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발생한 많은 도시국가들처럼 바빌론 역시 유프라테스 강, 티그리스 강, 그리고 디얄라 강에 인접한 곳에서 강들의 범람이 가져다주는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발전했다.

바빌론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어권 사람들이 만들어낸 명칭이다. 바빌론은 기원전 2천 년 초부터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주요 도시 가운데 하나였고 일반인들의 생각에 세계사의 중심을 차지했으리라 짐작될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저자(카렌 라드너)에 따르면 실제로 바빌론이 세계 최고의 도시였던 적은 없다. 우르크, 우르, 에쉬눈나. 키시와 같은 고대 도시는 바빌론보다 긴 역사를 가지고 바빌론 이상의 번영을 누렸고 이후 등장한 페르시아의 대도시(수사, 페르세폴리스 등)와 그리스 로마시대의 아테네 로마 등이 당대를 대표하는 도시라고 볼 수 있다.

바빌론 왕국이 대외적인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8세기 함부라비 왕이 즉위하면서부터이다. 함부라비 왕은 주변국을 병합하면서 세를 키웠으며 메소포타미아의 중심국가로 자리매김했다. 바빌론만큼이나 유명한 함부라비 왕의 위명은 함부라비 법전으로 더욱 높아졌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함부라비 법전이 세계 최초의 법전은 아니지만(우르 왕국이나 에쉬눈나 왕국의 법전이 더 이른 시기에 제작됐다고 여겨진다.) 당시의 법체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자료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하다.

많은 왕정시대처럼 바빌론의 왕은 신의 대리인으로 추앙받았는데, 왕의 지위는 바빌론인들이 모시던 하늘의 신 아누, 땅의 신 엔릴과 바빌론의 수호신 마르두크로부터 신성함을 위임받아 통치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바빌론의 가정은 철저히 가부장제를 따랐으며 교육은 주로 가정 내에서 이루어졌다. 여성의 결정권은 매우 빈약했으며 가문을 위해 기도하도록 마르두크 신전의 수녀로 맡겨진 여인들은 약간이나마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교육은 주로 바빌론어와 수메르어로 읽고 쓰는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철학, 시, 역사로 영역을 확장해갔다.

바빌론은 함부라비 왕이 죽은 후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걷다가 1600년경 아나톨리아의 히타이트의 공격으로 약 2백 년 가량을 이어져 내려오던 함부라비 왕조의 종말을 고했으며 바빌론의 통치는 바빌론 역사상 가장 긴 왕조인 카시트 왕조로 이어진다. 카시트 왕조는 전성기의 바빌론 왕국에 비해 위세가 크게 꺾였으나 나름의 위치를 유지하며 대를 거듭해 오다가 기원전 13세기 말엽 메소포타미아 북부에서 일어난 아시리아에 정복당한다. 바빌론을 정복한 아시리아의 왕 투쿨티니누르타는 바빌론의 문화와 학문을 아시리아로 전파했으며 자신이 직접 바빌론을 통치하지 않고 대리인을 세웠는데 그로인해 바빌론은 수많은 환란을 이어가게 된다. 결국 기원전 12세기에는 카시트 왕조의 대가 끊어지게 된다. 


카시트 왕가의 뒤를 이어 이신 왕조가 바빌론을 통치하게 되었으며 바빌론은 아시리아와 동맹관계를 유지하며 그 명맥을 이어나간다. 기원전 7세기 말엽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바빌론을 통지하게 되면서 바빌론은 다시 위세를 떨치게 되지만 그 시기는 길지 않았고 얼마가지 않아 페르시아의 키루스에게 정복당한다. 이후 바빌론은 페르시아와 운명을 같이하다 기원전 4세기에 마케도니아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함락된다. 알렉산더 대왕이 31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 후 마케도니아 제국은 내분으로 갈라졌고 바빌론을 비롯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셀레우코스 왕조에게 넘어간다. 로마가 동방원정을 감행함에 따라 셀레우코스 왕조가 기원전 1세기에 멸망하고 로마의 세는 더욱 팽창되어 서기 116년에는 트라야누스 황제가 바빌론을 정복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에도 이미 바빌론의 과거의 영광을 찾아볼 수 없는 여느 도시가 되어 있었고 그 후에도 다시금 세계사의 중심으로 떠오르지 못했다. 




<바빌론의 역사>는 바빌론의 흥망성쇠에 집중해 세계사를 간접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역사를 말하자면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바빌론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나고 어떻게 사라져 갔는지를 세밀히 들여다보고 바빌론에 영향을 끼친 수많은 주변국들을 통해 당시의 세계사를 짐작할 수 있도록 한다. 


고대문명에 관심이 있고 바빌론이라는 나라를 더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좋은 지침이 될 책이라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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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제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들 - 장군, 상인, 지식인
미할 비란.요나탄 브락.프란체스카 피아셰티 엮음, 이재황 옮김, 이주엽 감수 / 책과함께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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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들>은 군 지휘관(장군), 상인, 지식인을 매개로 유라시아의 광범위한 영역을 지배했던 몽골 제국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실크로드라는 단어는 19세기말에 도입됐지만, 구세계를 동과 서로 연결하는 육상과 해상 교역로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고, 몽골제국이 동서로는 동아시아로부터 유럽과 이슬람 세계에 이르고 남북으로는 동남아시아로부터 시베리아에 이르는 거대 제국을 형성함에 따라 크게 번성하게 됐다. 하나의 거대 제국 또는 연방이 구성됨으로써 해당 지역은 전쟁이 줄고 교역이 활발해졌는데 물자와 인력의 유동성이 증가하고 문화 간 접촉이 활기를 띠었다.

몽골 시기(1206ㅡ1368)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통일 몽골 제국(1206ㅡ1260) 시기와 몽골 연방 시기이다. 통일 몽고 제국 시기는 칭기스 칸과 그의 후손들이 몽골 제국을 건국해 팽창해가는 과정이었고 몽골 연방 시기는 툴루이(칭기스 칸의 막내아들)의 아들, 뭉케가 쿠데타로 집권한 후 4개의 지역 제국(각각 중국, 중앙아시아, 이란, 시베리아를 지배하는 칸국으로 나뉨)으로 나뉜 시기이다. 몽골 제국의 정복활동은 다양한 문화권을 뒤섞어 동서와 남북의 문화가 서로 융합되고 발전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군인은 물론이거니와 유능한 상인, 기술자, 행정가 등의 등용을 중시했으며 교역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제국 내외로 인재와 상품의 교역이 빈번히 이루어졌고 실크로드는 활성화되고 확장되었다. 원나라(중국을 통치한 몽골제국)가 송나라를 정복하면서 해상 운송수단과 해로를 손에 쥐게 되어 해상 교역도 활성화됐다. 아시아, 유럽, 인도, 동남아시아, 이집트에 이르는 광범위한 세계 교역은 1320ㅡ133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다가 몽골 제국이 쇠퇴하면서 크게 위축된다.



<몽골제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들>은 몽골 시기에 활약한 군 지휘관, 상인, 지식인 신분의 15인을 다룬다. 여기에 등장하는 개인의 이야기는 다양한 언어(한문, 몽골어, 러시아어, 페르시아어, 아랍어 등)로 쓰여진 1차 자료를 참조하여 쓰였으며 대부분의 자료는 몽골인 스스로가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 복속민들이나 이웃이 기록한 것이다. 이것은 이 책에 담긴 내용을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입장을 대조하여 객관적으로 작성했음을 의미하지만 당시의 사료가 풍족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몇몇 부분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음을 저자들은 미리 언급하고 있다.


첫 6개 장은 6인의 장수들(곽간, 바이주, 쿠툴룬, 양정벽, 사이프 앗딘 킵착 알만수리, 툭투카)를 다룬다. 몽골 제국은 칭키스 칸이 죽은 후 오랜동안 내분을 치뤘고 결국 4개의 칸국으로 분열되었기 때문에 이들 장수의 활약의 명령권자는 제국의 권력을 누가 잡고 있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한족이지만 몽골 제국을 위해 봉사하며 공성전으로 바그다드 함락에 기여하고 쿠빌라이 칸의 송나라 정벌을 조언한 곽간, 역사서에서 폭력적이고 잔혹한 인물로 묘사되는 인물로서 서방 정벌에 큰 공로를 세웠지만 왕가와의 불화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바이주와 그의 손자 술레미시, 최고의 핏줄을 이어받은 공주로 태어났지만 장수가 되어 전장을 누비고 많은 예술작품의 소재로 되었던 쿠툴룬, 쿠빌라이 칸을 도와 송나라를 멸하고 동남아시아와 인도의 나라들을 복속시키고 해상 무역로를 확보한 양정벽, 몽골의 엘리트였으나 시리아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 맘룩 술탄국으로 망명했고 고속 승진을 거듭해 다마스쿠스의 총독까지 올랐으나 다시 일 칸국으로 넘어가 몽골의 맘룩 정벌을 도왔고 이후 다시 맘룩 술탄국으로 넘어와 사령관으로 복무한 킵착 알만수리, 색목인(킵착인)이었지만 원나라의 원정행보에서 세운 공적과 충성을 인정받아 원나라 최고위층에 이른 툭투카와 그 자손들.    


이어진 4개 장은 몽골 제국의 광활한 영토를 누비던 상인들의 이야기이다. 이는 이슬람 상인 신분이었으나 칭기스 칸을 위기에서 구한 공로와 이어진 금나라 정벌에 기여한 공으로 고위직에 올랐고 118세까지 장수했다고 전해지는 자파르 화자,  조국 로마니아의 사절단으로 지중해와 흑해를 거쳐 크림반도에 상륙해 몽골 제국으로 가는 안전한 길을 개척한 보두앵 드 에노, 이슬람과 원나라의 해상 교역로를 발전시킨 상인이자 지방 장관으로 재직했던 자말 앗딘과 그의 동생 타키 앗딘, 금장 칸국의 황후로서 권력의 핵심에 위치해 있으면서 흑해 무역을 촉진했던 타이둘라


마지막 5개 장은 몽골 시대에 활약한 지식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유대교를 버리고 이슬람으로 개종했으며 불교에 호의적이었던 인물로 일 칸국에 복무하며 세계사, 신학, 농학, 의학 등의 많은 저서를 남긴 라시드 앗딘, 훌레구의 원정을 따라 서방으로 넘어와 훌레구의 의사이면서 중국의 천문학을 이슬람에 전파한 부맹질, 언어, 점성학, 의학에 뛰어난 재능을 지녔고 쿠빌라이 칸의 신임을 받아 일 칸국으로 사행을 갔고 거기서 다시 이탈리아로 사행을 떠났다 원나라로 돌아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몽골 제국이 정복한 지역을 망라한 지리학 저작에 힘쓴 이사 켈레메치, 여성의 신분이었지만 남편의 치세를 도와 막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건축, 종교, 학문을 후원하고 본인도 작가로 활동했던 파드샤흐 카툰, 후잔드에서 출발해 메디나에 이르는 '지식 추구 여행'을 25년에 걸쳐 수행했고 인생의 말년에는 수피 학자로서 삶을 산 알아하위


15인의 인물 가운데 다수는 한 가지 직업에 종사하지 않고 다양한 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전장에서는 장군이었고 평시에는 행정관리가 되었으며 이윤을 추구하는 상인이 되거나 학문을 연구/정리하는 학자가 되기도 했다. 소개된 인물들의 시기는 겹치는 부분이 많아 여러 인물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주인공 격인 인물이 중점적으로 활약한 지역(나라)에 따라 역사적 상황에 대한 관점을 다양화할 수 있다. <몽골 제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들>은 개별적 인물을 내비치는 각각의 장으로 구성됐지만 상대적으로 짧은 몽골 제국의 역사를 감안했을 때 이것은 '몽골 시대' 역사를 연속적으로 다룬다고 할 수도 있다(단, 시대순으로 다루진 않는다).  






세계사에 관심이 있어 역사를 다룬 서적을 종종 읽고 있다. 운좋게도 여지껏 읽은 대부분 책들은 재밌기도 하고 각자 떠도는 단편적 지식을 한데로 연결해줘, 그로부터 세계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얻었다.  마찬가지로 <몽골제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들>를 통해 몽골 제국의 역사와 함께 중앙아시아, 이슬람, 동로마 제국의 역사를 전체적인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났다. 역사에 등장하는 하나의 에피소드는 재미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장구한 역사적 흐름을 가늠하기는 어려운데  <몽골제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들>은 서론에서 전반적 몽골의 역사를 서술해 놓고 본 장에서는 15인에 대해 기전체로 서술함으로써 이런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 각 장을 쓴 학자들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책에 포함된 내용의 서술이 다양한 느낌을 띠는데, 어떤 장은 문헌에 입각한 고증에 치중한 느낌을 주고 어떤 장은 읽기 편하게 스토리를 작성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1차 사료에 의거해 객관성을 추구한 서술이겠지만 전달자에 따라 감흥도 달라짐을 느낀다. 


로마사나 중국사는 역사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애써 찾아 읽을정도로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중앙아시아사나 이슬람의 역사는 일부러 계기를 마련하지 않으면 전체적인 흐름을 잡기 어려운데 <몽골제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들>에 담긴 인물들의 전기를 읽다 보니 내가 미흡한 부분을 가늠할 수 있었고 어떤 책을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게됐다. 


만약 몽골 제국의 전체적 흐름을 간략히 읽고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몽골 제국의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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