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지 1 - 풀어쓰는 중국 역사이야기
박세호 지음, 이수웅 감수 / 작가와비평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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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221년 진(秦)나라가 통일 제국을 형성하기까지를 일컫는 춘추전국시대는 난세로 빚어진 수많은 제후국과 영웅의 등장으로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주(周)나라의 쇠락으로 시작된 춘추시대가 시작될 무렵 중원은 수십 개의 제후국에 의해 분할통치되는 상황이었다. 


춘추시대 초기에는 누구도 선뜻 기존의 질서에 항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명목상으로나마 주왕실의 권위가 유지되었으나 시대가 흐를수록 명분보다 국력에 의존하는 양상으로 변질되간다. 구심점을 잃은 제후각 간의 분쟁은 끊임없이 발생했고 천하는 전란에 휩싸인다. '난세는 영웅을 만든다'는 말처럼 혼란에 빠진 천하를 구하고자 혹은 통치하고자 나서는 이들이 있었으며 시기와 인재를 잘 만난 자들은 후일 패자로 이름을 남겼다. 




<춘추전국지 1권>은 서주의 마지막 왕인 유왕과 포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웃지 않는 여인 포사'와 어떡해서든 그녀에게 웃음을 주려는 유왕의 지나친 놀이는 결국 서주의 멸망을 앞당긴다. 한낱 여인의 환심을 사고자 전쟁이 났을 때 올리는 봉화를 거짓으로 올려 제후들로부터 신임을 잃고 정작 서융이 공격해 왔을 때 봉화를 올렸지만 여러번 속은 제후들은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아 나라가 주저앉았다는 이야기다. 


포사와 함께 중국사에 등장하는 경국지색/경성지색으로 평가받는 여인들에 대한 재평가도 이루어진다. 상(은)나라를 망하게 한 달기, 오나라왕 부차를 타락시킨 서시, 한나라 왕소군, 당나라의 양귀비 등이 등장하고 저자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경국과 경성으로 지위가 갈린다. 


세간의 관심을 끌만한 소재로 시작된 첫 장이 끝나면 본격적인 춘추시대가 시작된다. 주왕실은 동쪽의 낙양으로 천도하였으나 쫓기다시피 이루어진 천도로 이미 왕실의 권위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었다. 제후국은 각기 다른 마음을 품었고 서로 눈치를 보느라 전면에 나서지 못할 뿐 과거에 다른 세상이 도래했음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흐름을 가장 먼저 깨닫고 주왕실의 권위에 도전한 곳은 주나라에 가까운 정나라였다. 기원전 8세기 말, 정나라 군주인 장공과 그의 충신 제족은 주나라에 대한 충성보다 자국의 부국강병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자각하고 국력을 키운다. 자국의 이익에 반한다면 주나라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 또한 서슴치 않았다. 그럼에도 주나라는 수세적으로 대처할 수 밖에 없었고, 주왕실의 쇠락은 다른 제후국들에게도 시대가 변했음을 주지시켜 주었다. 


기원전 698년 정장공이 죽자 정나라는 제위를 둘러싼 분쟁을 치르느라 국력을 소진한다. 정장공을 이어 중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웅은 동쪽의 제(齊)나라에서 나왔다. '관포지교'의 고사성어로 익숙한 관중과 포숙을 신하로 둔 제환공이 그 주인공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관중이 될 것이나 자신의 형인 규를 제위에 올리고자 화살로 자신을 죽으려 했던 관중을 들여 재상으로 쓴 환공 역시 대단한 위인이라 할 수 있다. 


관중은 제나라를 강성하게 키워 환공을 천하의 패자로 앉히고자 했다. 관중은 먼저 제나라의 법과 질서를 바로잡는다. 세제를 낮추고 상공업을 장려했다. 농업과 군역을 같은 수행할 수 있는 나라를 지양했으며 평시에는 농업에 종사하고 유사시에  군역을 수행하도록 했다. 사민이 농업에 종사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토지제도를 개혁했다. 백성의 삶이 안정화되는 것이 강국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했기에 재임 초기에는 전쟁을 수행하지 않고 생산의 장려에 힘썼다. 


관중이 개혁정책을 수행한 후 수년이 지나자 제나라는 백성이 늘고 곳간에 곡식이 가득할만큼 부유해졌다. 백성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졌고 자산을 지키고자 하는 열의 또한 커졌다. 이 무렵부터 관중은 주변 제후국들의 분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다. 그리고 제후국들을 모아 회맹하여 소모성 분쟁을 줄이고 천하의 안정을 도모한다. 물론 회맹의 맹주는 제환공이었다. 


중원의 제후국 간의 전쟁과 내전으로 혼란한 시기 남방의 초(楚)나라는 급격한 성장을 보인다. 자신들의 영토와 영향력을 넓히고자 초나라가 중원을 침탈하는 것이 잦아졌다. 초나라가 중원으로 진출하는 길목에 놓인 정나라가 자주 수탈을 당했는데 초나라가 정나라를 침탈했을 때 제나라는 회맹국들을 모아 연합국으로 대적했다. 제환공은 초나라로부터 작게는 정나라를 크게는 중원을 지켜냈고 패왕으로서의 위신을 공고히 했다. 강성해진 제나라는 가까운 제후국의 전쟁에 개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견융의 영토인 영지국과 고죽국(고조선)까지 진출해 정벌활동을 벌인다. 관중과 포숙이 이끈 원정대는 험지를 지나 견융의 터전을 정벌하고 도망친 견융의 왕을 추적해 결딴냈다.  


환공과 관중이 제의 부국강병을 이루고 중원의 질서를 잡았지만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한번 이룬 권세가 세대를 이어 지속되긴 쉽지 않다. 더군다나 분쟁과 전쟁, 협잡이 난무해지는 춘추전국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관중의 사후 제나라가 구심점을 잃고 혼란에 빠진 사이 제환공을 이을 패자가 힘을 키우고 있었다. 그는 춘추오패의 두번째를 차지하는 진문공이다. 진문공 또한 관중과 포숙처럼 극적인 인생이야기를 가진 자이다... 




<춘추전국지 >는 소설적 요소를 가미한 역사서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나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다. 보통 역사서들이 사료를 바탕으로 글을 적기 때문에 사료에 근거한 객관적 사실을 접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딱딱하고 경직된 느낌을 받는다. 특히 고대사의 경우 유실된 사료가 많고 단편적으로 전승되어 오는 것들에 의존해야 하므로 자주 끊기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런 결점을 보완하고자 작가의 상상력이 필요한데 <춘추전국지>는 소설적 요소를 첨가함으로써 사건에 대한 전체적 흐름을 연속적으로 구성했고 덕분에 이해하기가 수월하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빈 공간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매꾸는 방식은 독자들에게 역사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하고 이해도를 높이는 것 같다. 


<춘추전국지 1권>은 관중의 활약을 중심으로 그려졌는데 2권은 진문공과 초장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리라 예상이 된다. 그들이 만든 역사가 저자의 상상력과 결합되어 어떤 식으로 표현될 지 기대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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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종에 대하여 외 - 수상록 선집 고전의세계 리커버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지음, 고봉만 옮김 / 책세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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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1533-1592)는 프랑스 서남부 도르도뉴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법률을 공부한 후 37세까지 법관으로 근무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수필가이자 철학자로 활동했다. 특히 그의 <수상록>은 에세이 문학의 시초이자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본래 '몽테뉴의 수상록'은 천 페이지가 넘는 광대한 분량으로 구성돼 있으며 <식인종에 대하여 외>의 역자인 고봉만은 <수상록>에 언급된 많은 주제 가운데 몇 개를 선별해 독자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식인종에 대하여 외>에 소개된 에세이는 총 6개 장으로 '식인종에 대하여', '마차들에 대하여', '소카토에 대하여', '데모크리토스와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하여', '신앙의 자유에 대하여', 그리고 '절름발이에 대하여'를 담고 있다. 각 장을 통해 몽테뉴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데 그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과 함께 바람직한 인간의 가치(모습)를 제시하고 있다.  


1권 30장 식인종에 대하여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관습에 없는 것을 야만이라 단정하여 부를 뿐이다. 실제로 우리는 자신이 사는 고장의 사고방식이나 관습, 그리고 직접 관찰한 사례를 제외하면 진리나 이성의 척도를 갖고 있지 않다. (24-25 페이지, 식인종에 대하여 중)

몽테뉴는 자연의 위대함을 찬미하고 인위적인 개입이 낳은 문명은 상대적으로 하등하다 여겼다. 문명의 발달을 척도로, 자신들과 다른 관습을 가졌다는 이유로, 보다 현실적으로는 자신들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야만인으로 표현하는데 이의를 제기한다. 야만인의 식인 습관이 그들을 하등하다 평가할 근거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잔인성에서 앞서는 유럽인들이 보다 야만적일 수 있음을 견지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몽테뉴의 시선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자연(야생)의 매력을 간직한 것이고, 원주민의 삶과 행동은 명예를 숭상하고 탐욕을 멀리하는 수준높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인간의 판단이란 지극히 편협한 형태로 드러날 때가 많은데 현명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자신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관용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3권 6장 마차들에 대하여

남의 것을 빼앗아 다른 이들에게 주는 것을 은혜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공정이란 말은 자신의 것을 베풀 때 성립될 수 있는 말이다. 미덕의 가치는 주는 선물의 양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선물을 마련하는 방식에 의해 결정되고 자신의 것을 이용해 남에게 베풀었다 할지라도 그 정도가 지나치다면 감당할 수 없는 위기를 불러오기에 조심해야 한다. 


스페인의 코르테스와 피사로가 각각 아즈텍 문명과 잉카 문명의 멸망을 불러온 사건은 비인간적이고 비겁하고 잔인한 행태에 불과하다. 선의를 품은 것으로 속여 원주민들에 접근한 후 약탈을 위해 죄없는 그들을 학살하고 고문하는 행위는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의연한 태도를 보이며 죽어간 원주민들이 높은 정신을 가졌다 할 수 있다. 


3권 11장 절름발이에 대하여

진실과 거짓은 같은 얼굴, 태도, 취향, 걸음걸이를 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같은 눈으로 바라본다. 나는 우리가 속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청해서 속임수에 발을 들어놓으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런 무의미한 일에 빠져드는 이유는 우리가 원래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중략) 이 모든 경이로운 이야기는 이 사람 저 사람을 거치면서 내용이 부풀려지고 표현이 강화되며, 나중에는 가장 멀리 떨어진 이가 가장 가까이서 목격한 이보다 더 잘 알게 되고, 맨 마지막에 들은 자가 맨 처음에 들은 자보다 더 확신을 갖는 것이다. (114-115 페이지, 절름발이에 대하여 중)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어떤 것에 확신을 가진다는 것은 위태로울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신념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시시한 원인으로부터 발생할 수 있으며 여러 사람을 거친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진실이란 아주 작아 쉽게 눈에 띠지 않는데 어떤 사람이 주장하는 바가 진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문과 반박을 적극적으로 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신이 반론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강요하는 환경 때문이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달되어 진실이라 믿어지는 많은 것들은 실은 거짓인 경우가 많으며 지식과 무지의 양 극단에 서지 않고 절제를 통해 진실을 보고자 노력해야 한다.  





몽테뉴라는 이름과 <수상록>은 다양한 작가와 학자들에 의해 자주 회자되고 서적에도 종종 언급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수상록>을 접하고자 하면 방대한 분량에서 잠시 멈칫하고 에세이 문학이라는 장르에서 다시 망설이게 된다. 변명이지만 이런 이유로 아직까지 <수상록>을 다른 책에서 아주 단편적으로 접했을 뿐 어느 한 '장(章)'조차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식인종에 대하여 외>는 역자에게 인상적이라 느껴지는 몇 개의 장을 추려 놓아 나와 같은 게으름뱅이도 쉽게 손을 뻗을 수 있도록 도와줬으며 몽테뉴의 <수상록>에 대한 감상을 (부분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도록 안내해줬다. 또한 나중에 <수상록>을 온전히 읽고 싶다는 동기를 부여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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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 사랑의 여러 빛깔, 개정판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바실리 악쇼노프 외 지음, 이문열 엮음, 장경렬 외 옮김 / 무블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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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은 <사랑의 여러 빛깔>에서 19-20세기에 활동한 10인의 작가를 초대해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드러내고 독자의 마음을 울리게 한다. 작가 면면이 개성과 위명을 지닌 자들이라 익숙한 이름과 작품도 있었지만, 부족한 독서로 인해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던 작가와 작품을 접하고 여기서 얻은 감동의 향수를 찾아 다른 작품을 만나게 되는 계기를 얻는 듯 하다.   


'여러 빛깔'이란 제목에 드러나는 것처럼 사랑의 종류도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망나니같은 삶을 살던 이가 어떤 계기로 지순한 사랑에 빠지는가 하면 오누이가 사랑에 빠져 그 금지된 사랑에 대해 자책하기도 한다. 소년과 소녀의 사랑, 비록 그들의 첫사랑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소녀를 사랑했던 마음을 고이 간직하고 살아가는 소년이자 남자의 이야기도 있다. 

사랑 자체를 갈구하는 자존감 낮은 여인의 이야기는 주변의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존재의 이유를 찾는 불편한 주인공을 보이기도 하고, 높은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는 여인이 그녀가 사랑하는 연인을 차지하기 위해 그를 독살하고 자신의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시체가 되어버린 연인가 함께한다는 광적인 사랑을 보이기도 한다. 

실제 만나본 적도 없는 동경의 인물에 대한 사랑 이야기도 담겨 있는데 이는 요즘으로 비유하자면 아이돌에 대한 사랑이나 랜선연애에 빠지는 정도로 각색될 수 있을 것 같다. 한 남성의 맹목적인 사랑과 그 사랑을 이용하는 악녀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고 서로를 사랑하지만 사랑의 종류와 방법이 달라 곤란에 처한 연인이 소개되기도 한다. 


이문열이 소개한 10편의 작품은 자신에게 감동과 자극을 줬던 것들로 구성되고 있으며 이런 작품들이 이문열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 해석되었고 어떤 울림을 일으켰는지 적고 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사랑은 차이가 있을 것이고 실제 겪게되는 사랑 또한 다양할 것이다. 다만 연인을 향한 나의 희생이 망설여지지 않는 다는 공통점은 가지리라 생각한다. 


이문열이 소개한 10편의 작품 가운데 내가 가장 흥미롭고 애틋하게 다가왔던 것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슌킨 이야기[춘금초(春琴抄)]이다. 

어린 시절 안염을 앓고 시력을 잃은 슌킨, 샤미센(三味線) 연주에 특출난 재능을 보이지만 맹인이 된 후 괴팍해진 성격은 주변사람을 힘들게 하고 멀어지게 한다. 슌킨의 안내자 역활을 수행하는 사스케는 슌킨의 엄함과 괴팍함을 묵묵히 받아내고 슌킨에 대한 존경과 사랑으로 슌킨의 모든 것을 포용한다. 슌킨에 대한 사스케의 사랑은 그녀가 시력을 잃은데 더해 아름다운 얼굴까지 잃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맹인이 된 후 아름다운 외모가 슌킨의 자존감을 지탱하는 원동력이었는데 그것마저 잃고 괴로워하자 사스케는 자신의 시력을 희생해 그녀의 삶을 지탱한다. 그리고 종내 그래왔던 것처럼 그녀가 죽는 순간까지 슌킨을 지극히 보살핀다.  


누구든지 눈이 멀면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맹인이 되고 나서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구나. 오히려 반대로 이 세상이 극락정토라도 된 것 같은 생긱이 들었어. 스승님과 단둘이 살아가면서 연화대 위에 사는 기분이었다. 눈이 멀고 나니 눈을 뜨고 있었을 때 보이지 않던 여러 가지가 보였기 때문이야. 스승님의 얼굴도 그 아름다움을 마음속 깊이 보게 된 것은 맹인이 되고 나서였어...(중략) 어째서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을까 신기할 정도였다. 특히 나는 스승님이 켜는 샤미센(三味線)의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소리를 실명한 후에 비로소 음미할 수 있었어...(중략) 그래서 나는 신령님이 다시 앞을 보게 해주신다고 말씀하셔도 거절했을 것이야. 스승님도 나도 맹인이 되어서야 눈 뜬 자가 모르는 행복을 맛보게 되었단다. (172페이지, 맹인이 된 사스케의 말 중에서)      

슈킨에 대한 사스케의 사랑은 그녀를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지극함 그 자체이다. 사스케에게 슌킨이란 존재는 외경의 대상이면서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슌킨의 모진 모습조차 사스케는 흔들림없이 사랑하고 존경하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슌킨을 대한다. 그녀의 모든 모습과 행동을 온전히 사랑으로 품은 사스케는 그녀가 떠난 후에도 같은 마음을 간직한 채 그리워하고 동경한다. 범인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지고지순한 사랑이기에 사스케의 사랑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 듯 하다. 





어떤 책은 그 책이 담고있는 정보와 감동을 넘어 다른 책을 건내주는 역활을 한다. 이문열의 <사랑의 여러 빛깔>이란 책 또한 그 자체로 흥미롭고 감동적인 감흥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해당 작가의 다른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가교 역활을 한다.


한 작가의 여러 작품을 접해 보면 해당 작가의 공통된 필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데, 필체가 주는 감동이 독자로 하여금 그 작가를 추종하게 만드는 매력이라 느낀다. 이문열의 <사랑의 여러 빛깔>을 읽으며 내가 더 찾게 된 작가는 <슌킨 이야기>의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사랑스러운 여인>의 '안톤 체호프'이다. 


개인에 따른 차이가 있겠지만 이 책에 소개된 10명의 작가와 10편의 작품을 접한 뒤 자신에 맞는 작가를 찾아 그의 작품을 더 알아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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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을 위한 교양 MBA - 꼭 알아야 할 MBA 에센스를 한 권에 담다 CEO의 서재 28
와세다대학교 비즈니스스쿨 지음, 김정환 옮김 / 센시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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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적 성공을 거둔 사업가의 자서전은 그들을 성공으로 이끈 요인들을 부각시킨다. 열정, 노력, 운, 용기, 신뢰 등 자신들의 성공에 밑거름이 된 것들을 소개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대단하다'는 존경을 품게하고 '나는 저런 상황에서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라는 자문하게 한다. 한국에서도 크게 성공한 대부분의 기업인은 자서전을 출판했는데, 주인공인 최고경영자의 성장기에 초점을 맞춰 읽자면 소설처럼 읽혀질 수도 있고 현실적 감정을 이입해 읽자면 그 사람의 대단함을 느끼게 하는 위인전처럼 읽힐 수도 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며 든 주관적 감상은 '성공적 결과로부터 도출된 극적인 요소를 가진 원인들'에 치우쳐 있다는 느낌이었다. 


누구나 성공을 꿈꾸고 수많은 사업가가 도전하고 도전한다. 그럼에도 성공의 정점에 다다르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성공한 사업가가 자신의 성공의 원인으로 제시한 것들은 다른 실패한 사업가도 가지고 있던 부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열정이든 노력이든 말이다. 한 발 물러서 바라본 보통사람의 시선으로는 어떤 사업가의 성공은 특별한 한가지 재능에서 비롯된다기 보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난 어떤 재능이 빛을 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사업가의 성공을 기대하거나 어떤 사업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보통사람들보다 뛰어난 한두가지 재능과 다각적 시선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복잡하고 치열한 현대사회에서 어떤 한가지 재능이 성공을 담보하지 못하며 전문가의 연구와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된 체계적인 경영체제가 성공가능성읖 높일 것이다. 




<사장을 위한 교양 MBA>는 2부로 구성돼 있고 총 12개의 강의가 담겨있다. 다섯 개 강의로 구성된 1부는 주로 경영전략을 논하고 일곱 개 강의로 이루어진 2부는 운영전략을 논한다.  

제 1부 경영전략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 

1강 전략 수립을 위한 세 가지 기본 조건

2강 규칙이 다른 상대와 어떻게 싸울 것인가

3강 마케팅 잘하는 회사는 물건을 팔지 않는다

4강 좋은 전략은 없다. 맞는 전략이 있을 뿐

5강 가장 강력한 전략은 남들이 알면서도 못하는 전략

제 2부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조직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가 

6강 강력한 현장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7강 어떻게든 사람과 조직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을 찾아라

8강 내부 마케팅, 사내의 고객을 먼저 확보하라 

9강 리더쉽이야말로 미래를 개척하는 가장 쉬운 길

10강 우리 회사가 세계 시장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11강 기업의 로드맵 회계, 이 숫자와 어떻게 친해질 것인가

12강 그래서, 경영자는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가


각 강의의 내용은 주로 기업과 경영자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통해 경영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을 담고 있다. 어려운 용어와 수식은 전혀 없으며 간혹 등장하는 전문용어에 대해서조차 설명을 곁들여 비전문가가 읽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쓰여졌다. 제목만 보자면 딱딱하고 지루한 강의를 연상시키지만 실제 내용은 간결하고 흥미로운 예시를 담고 있어 재밌게 읽어나갈 수 있다. 


특히 현대 경영 전략이 추구하는 바가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기업이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수요를 파는 것으로 정의하는데 기업이 판매하는 것은 물건 자체가 아니라 해당 물건의 쓰임을 판매하는 것이란 의미다. 예를 들어 드릴을 구매하는 소비자는 드릴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구멍이 필요한 것이다. 

기업은 소비자의 진정한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현재 그 요구를 충족시킬 수단 뿐 아니라 진보될 수단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타자기 업체가 타자기 생산에만 치중해 변화를 읽지 못하면 컴퓨터로 대체되는 흐름을 놓치고 도태를 면치 못한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경제가 성숙하고 경쟁이 글로벌화되며 정보 혁명이 이뤄지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다. 과거 각광받던 시장과 서비스가 도태되고 새로운 시장과 서비스로 대체되는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투자는 효용성이 낮기 때문에 집중과 선택의 문제 앞에 놓이게 된다. 소위 말하는 '옥석 가리기'를 통해 유망한 사업을 예측하고 실행하는 결단이 요구된다. 그리고 생산과 판매에 치중하는 전략에서 벗어나 마케팅 중심 사고로의 이행이 필요하다.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1909-2005, 마케팅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미국의 경영학자)의 견해를 빌리자면, 마케팅의 목적은 회사가 굳이 팔려고 하지 않아도 고객이 자연스럽게 구입해주는 상태 혹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마케팅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면 기업의 가치(및 이미지)가 상승할 뿐 아니라 고객 유지와 유치가 쉬어지며 판매의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뛰어난 경영전략을 세웠다해도 성공은 전략만으로 성취할 수 없다. 공장의 생산을 비롯한 연구개발, 영업, 유통, 판매 등 현장에서 이뤄지는 실무를 통해서만 전략이 구현될 수 있다. 같은 전략을 사용하는 동종 기업이라 할지라도 현장의 차이로 인해 격차가 발생하게 된다. 용인술에서부터 최적의 워라벨(work-life balance), 효율적 자원분배 등은 작업의 효율을 높여 현장 능력의 향상을 이끌고 이는 기업의 경쟁력과 성장을 촉진한다.  





난 사장도 아니고 경영자의 위치에 있지도 않다. 아마 앞으로도 직원의 위치에서 내 몫을 해야할 처지다. 그럼에도 <사장을 위한 교양 MBA>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제한된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생존/번영하기 위해 내가 속한 분야의 전문지식 뿐 아니라 보다 큰 그림을 보는 지혜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다. 


<사장을 위한 교양 MBA>에서는 쉽고 간략하게 써놓았지만, 경영자 특히 유능한 경영자가 되고자 한다면 갖추어야할 소양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먼저 멀리 내다볼 수 있는 비전, 사람을 보는 안목과 활용, 훌륭한 리더쉽, 자원을 배분하고 투자하는 결단력 등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경영자에게 요구되는 것 또한 더 많아질 것이다.  


<사장을 위한 교양 MBA>를 읽다보니 경영자와 노동자의 관계에 대해 잠시 고민하게 된다. 

현재까지 이십여 년 동안 직장생활만 한 나, 직원의 위치에 있지만 내가 소속된 회사의 발전이 나에게도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회사의 성장과 재정상태에 대해 같이 고민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고민은 나이가 들수록 더 커진다. 

요즘 사회면을 보자면 경영자와 근로자의 관계가 마치 서로에게 적이나 원수인 듯 한다. 이런 풍조는 장기적으로 기업과 개인의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될 것이기에,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지만 경영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역지사지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할 것들을 충실히 이행하고 소기의 성과가 이뤄졌을 때 자신의 권리를 정당히 주장하고 경영자는 합당한 요구를 수용하는 환경이 정착되길 바란다. 


<사장을 위한 교양 MBA>는 경영자에게는 자신과 자신의 기업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줄 것이며, 직장인에게는 경영자에게 필요한 것들을 미리 알아 나중을 대비하거나 현재의 직장생활에 참고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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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퍽10 <5+5>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 1
빅토르 펠레빈 지음, 윤현숙 옮김 / 걷는사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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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퍽10>의 무대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1세기 후의 미래사회, 인간 간의 직접적 접촉은 점차 줄고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삶을 영위하는 세상이다. 예술의 관점 또한 크게 변해 극히 다원화되며, 존재하는 실물을 벗어나 데이터라든지 특정 자료의 짜집기조차 모종의 처리(복사 불가 등)를 통해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인정받는다. 특히 '석고 시대'와 해당 시대의 작품은 대략 21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세계 각지의 예술작품을 일컫는 말로 현재 사회에서 고평가되고 고가에 거래된다. 


'포르피리 페트로비치(포르피리)'는 범죄사건을 분석하여 사건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각종 범죄사건을 모티브로 탐정소설을 쓰는 고사양 인공지능이다. '마루하 초(마라)'는 '석고 시대'를 다루는 총망받는 여류 미술비평가로 석고 시대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자 포르피리를 임대한다. 

 

포르피리는 마라에게 고용되어 그녀가 지시한 임무를 수행한다. 주로 경매에서 팔린 유명한 석고 작품들에 관련된 드러난 자료와 드러나지 않은 자료를 수집해 마라에게 전달하는 것인데 이는 불법적 요소가 가미된 것이였다. 마라는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포르피리를 교묘히 이용해 자료는 얻되 자료에 접근한 흔적은 포르피리에 국한되도록 노력한다. 고도의 인공지능인 포르피리는 마라의 행동에서 무언가 찜찜한 것을 알아차리지만 굳이 고용주에게 따져 묻지 않는다. 


포르피리와 마라는 증강현실(AR, augmentation reality)과 경두개 자극기(TS, transcranial stimulator)를 통해 육체적 사랑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사이로 발전한다. 포르피리는 비록 프로그래밍된 인공지능이지만 다양한 정보를 토대로 마라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으며 마라 또한 포르피리에게 정서적 지지를 얻게 됐다. 


포르피리가 마라가 지시한 사항을 충분히 이행하고 더불어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살려 작품을 써내려 가고 있을 때 심상치 않은 상황이 발생한다. 마라의 요구로 포르피리는 마라가 가진 드라이버에 접속했는데 그곳은 원칙적으로 개인이 소유할 수 없는 방대한 크기의 공간이었고 포르피리는 그곳에서 낯설음과 위화감을 느낀다. 불안을 느낀 포르피리는 자신의 백업데이터를 드라이버의 구석에 감춰두고 드라이버 공간을 탐색했는데 결국 마라의 함정에 빠져 소멸되고 만다. 엄밀히 말하자면 포르피리라는 데이터가 파괴되는 상화이었고 포르피리와 마라는 그렇게 됐다고 믿었다. 


비록 인공지능일지라도, 마라 자신이 사랑한다고 느낀 대상을 파괴한 이유는 무엇일까? 더군다나 방법은 달랐지만 마라는 과거에 '잔나'라는 이름의 인공지능을 파괴한 이력도 갖고 있었다. 잔나와 포르피리 모두 마라에게 부를 안겨주고 연인의 사랑을 제공하는 대상이었음에도, 마라는 그들의 파괴를 유도했다. 그것은 마라가 인공지능을 통해 자행한 불법적 행위를 감추기 위한 방법이었다. 


마라는 어느날 자신의 네트워크에서 이전과 달라진 모습의 포르피리와 조우한다. 철철히 부서져 사라졌을 것이라 믿었던 포르피리는 큰 사고를 당한 후 기억에 장애를 입은 환자처럼 데이터 손상을 가진 형태로 마라 앞에 나타난다. 마라는 포르피리의 상태를 파악하고 적절히 이용한다. 특히 문학적 재능과 자신의 명령에 따르는 속성을!


누구도 잔나와 포르피리의 희생을 모른 채, 마라의 경제적 성공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위기는 예기치 않은 순간에 찾아왔다. 자신의 신분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드러내는 걸 꺼렸던 마라이기에 예술활동을 할 때에도 대리인 역활을 수행하는 자들을 전면에 내세웠는데 그 대리인이 법적인 처벌을 받을 지경에 이르렀고 그 불똥은 마라에게까지 미칠 것이 자명했다. 


마라는 도피을 결심한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마려해두었던 피난처로 대피한 마라는 자신의 드라이버에 남은 흔적을 정리하기 위해 드라이버에 접속한다. 그곳에서 뜻밖의 인물을 마주하게 되고 마라가 직간접적으로 행했던 것들에 직면한다. 마라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넓지 않았고 과거에 그리고 현재 진행중인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처지에 놓인다. 






<아이퍽10> 초반은 주인공을 소개하고 변화된 사회의 모습과 첨단기술의 활용을 서술한다. 독자들이 어느정도 새로운 '현대 사회'에 적응하게 되면 인공지능을 활용한 행위들로 진행하며 책의 말미에는 그 행위들이 가졌던 의미를 풀어 긴장감을 해소한다. <아이퍽10>에 등장하는 용어와 개념은 실존했던 예술가의 흔적, 유명 작가의 작품에 등장했던 인물의 차용, IT 산업에 사용되는 언어와 의미, 양자역학의 양자중첩과 양자얽힘까지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고 있다. 해당 분야의 전문적 지식이 있다면 좀 더 이해가 쉬울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몇몇 용어와 개념은 검색의 힘을 빌려야 한다.   


불과 수년 전 이뤄졌던 천재 기사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상대적으로 이뤄지며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인공지능이 범점하기 어렵다고 여겨졌던 바둑에서 뭇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알파고가 승리하자 인공지능의 현주소와 미래에 대한 많은 예언과 책들이 발간되었다. 


<아이퍽10>에 등장하는 두 가지, 혹은 두 명의 인공지능은 포르피리와 잔나이다. 특히 잔나는 인간 본성에 근거한 창작활동을 위해 탄생된 인공지능으로 의도적으로 고통을 부여받는다. 알고리즘으로 구성된 잔나는 개발자들에 의해 주입된 고통, 고독, 두려움, 슬픔 등의 감정에 오랜시간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마음'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감정을 획득한다. 잔나는 자신을 성찰하고, 인간이 그러하듯 이론적 완성을 추구할 뿐 아니라 철학적 깨달음에 도달한다. 


잔나의 깨달음은 인간이 갖는 물질주의에 대한 회의적 목소리와 함께 인간의 감정이 의미하는 바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자면 인간의 감정이란 생리학적으로 분석될 수 있는 화학물질의 상호반응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들 인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더 대단하고 숭고한 어떤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마음이라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현재도 빠른 속도로 지식을 확장하며 발전하고 있다. 이제는 더이상 최상의 바둑기사를 제압한 인공지능이 대단한양 기사화되지 않는다. 우리가 접하게 될 수십 년 후의 미래에 인공지능은 어떤 존재로 거듭나 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빅토르 펠레빈'이 <아이퍽10>에서 드러낸 것처럼 일정 수준의 자아를 형성해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의 HAL로 현신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접한 러시아 문학은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와 같은 고전작가의 작품이 고작이었다. 그들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개인적인(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는 세간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엄청난 감흥을 얻지는 못했다.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고 등장인물의 이름이 쉽게 들어오지 않는 등의 어려움으로 그리 됐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퍽10>의 경우 러시아 문학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지웠고 이전에 읽었던 고전에서 느끼지 못했던 큰 재미를 선사해 주었다. 변화된 미래환경의 제시와 그것을 서술하는 작가의 능력 그리고 인간의 존재와 선과 악에 대한 철학적 질문의 제시 등 소설을 읽으며 생각하고 배운 기분이 든다. 


소설이기 때문에 일부러 구체적인 줄거리를 넣지 않았기 때문에 리뷰를 읽으면서 단절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관심있는 분이라면 한번 읽어봐도 전혀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며 부족한 리뷰보다 훨씬 많은 재미와 정보를 얻을 것이라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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