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식인종에 대하여 외 - 수상록 선집 ㅣ 고전의세계 리커버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지음, 고봉만 옮김 / 책세상 / 2020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1533-1592)는 프랑스 서남부 도르도뉴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법률을 공부한 후 37세까지 법관으로 근무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수필가이자 철학자로 활동했다. 특히 그의 <수상록>은 에세이 문학의 시초이자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본래 '몽테뉴의 수상록'은 천 페이지가 넘는 광대한 분량으로 구성돼 있으며 <식인종에 대하여 외>의 역자인 고봉만은 <수상록>에 언급된 많은 주제 가운데 몇 개를 선별해 독자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식인종에 대하여 외>에 소개된 에세이는 총 6개 장으로 '식인종에 대하여', '마차들에 대하여', '소카토에 대하여', '데모크리토스와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하여', '신앙의 자유에 대하여', 그리고 '절름발이에 대하여'를 담고 있다. 각 장을 통해 몽테뉴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데 그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과 함께 바람직한 인간의 가치(모습)를 제시하고 있다.
1권 30장 식인종에 대하여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관습에 없는 것을 야만이라 단정하여 부를 뿐이다. 실제로 우리는 자신이 사는 고장의 사고방식이나 관습, 그리고 직접 관찰한 사례를 제외하면 진리나 이성의 척도를 갖고 있지 않다. (24-25 페이지, 식인종에 대하여 중)
몽테뉴는 자연의 위대함을 찬미하고 인위적인 개입이 낳은 문명은 상대적으로 하등하다 여겼다. 문명의 발달을 척도로, 자신들과 다른 관습을 가졌다는 이유로, 보다 현실적으로는 자신들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야만인으로 표현하는데 이의를 제기한다. 야만인의 식인 습관이 그들을 하등하다 평가할 근거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잔인성에서 앞서는 유럽인들이 보다 야만적일 수 있음을 견지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몽테뉴의 시선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자연(야생)의 매력을 간직한 것이고, 원주민의 삶과 행동은 명예를 숭상하고 탐욕을 멀리하는 수준높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인간의 판단이란 지극히 편협한 형태로 드러날 때가 많은데 현명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자신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관용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3권 6장 마차들에 대하여
남의 것을 빼앗아 다른 이들에게 주는 것을 은혜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공정이란 말은 자신의 것을 베풀 때 성립될 수 있는 말이다. 미덕의 가치는 주는 선물의 양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선물을 마련하는 방식에 의해 결정되고 자신의 것을 이용해 남에게 베풀었다 할지라도 그 정도가 지나치다면 감당할 수 없는 위기를 불러오기에 조심해야 한다.
스페인의 코르테스와 피사로가 각각 아즈텍 문명과 잉카 문명의 멸망을 불러온 사건은 비인간적이고 비겁하고 잔인한 행태에 불과하다. 선의를 품은 것으로 속여 원주민들에 접근한 후 약탈을 위해 죄없는 그들을 학살하고 고문하는 행위는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의연한 태도를 보이며 죽어간 원주민들이 높은 정신을 가졌다 할 수 있다.
3권 11장 절름발이에 대하여
진실과 거짓은 같은 얼굴, 태도, 취향, 걸음걸이를 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같은 눈으로 바라본다. 나는 우리가 속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청해서 속임수에 발을 들어놓으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런 무의미한 일에 빠져드는 이유는 우리가 원래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중략) 이 모든 경이로운 이야기는 이 사람 저 사람을 거치면서 내용이 부풀려지고 표현이 강화되며, 나중에는 가장 멀리 떨어진 이가 가장 가까이서 목격한 이보다 더 잘 알게 되고, 맨 마지막에 들은 자가 맨 처음에 들은 자보다 더 확신을 갖는 것이다. (114-115 페이지, 절름발이에 대하여 중)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어떤 것에 확신을 가진다는 것은 위태로울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신념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시시한 원인으로부터 발생할 수 있으며 여러 사람을 거친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진실이란 아주 작아 쉽게 눈에 띠지 않는데 어떤 사람이 주장하는 바가 진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문과 반박을 적극적으로 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신이 반론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강요하는 환경 때문이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달되어 진실이라 믿어지는 많은 것들은 실은 거짓인 경우가 많으며 지식과 무지의 양 극단에 서지 않고 절제를 통해 진실을 보고자 노력해야 한다.
몽테뉴라는 이름과 <수상록>은 다양한 작가와 학자들에 의해 자주 회자되고 서적에도 종종 언급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수상록>을 접하고자 하면 방대한 분량에서 잠시 멈칫하고 에세이 문학이라는 장르에서 다시 망설이게 된다. 변명이지만 이런 이유로 아직까지 <수상록>을 다른 책에서 아주 단편적으로 접했을 뿐 어느 한 '장(章)'조차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식인종에 대하여 외>는 역자에게 인상적이라 느껴지는 몇 개의 장을 추려 놓아 나와 같은 게으름뱅이도 쉽게 손을 뻗을 수 있도록 도와줬으며 몽테뉴의 <수상록>에 대한 감상을 (부분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도록 안내해줬다. 또한 나중에 <수상록>을 온전히 읽고 싶다는 동기를 부여해줬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