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 사랑의 여러 빛깔, 개정판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바실리 악쇼노프 외 지음, 이문열 엮음, 장경렬 외 옮김 / 무블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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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문열은 <사랑의 여러 빛깔>에서 19-20세기에 활동한 10인의 작가를 초대해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드러내고 독자의 마음을 울리게 한다. 작가 면면이 개성과 위명을 지닌 자들이라 익숙한 이름과 작품도 있었지만, 부족한 독서로 인해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던 작가와 작품을 접하고 여기서 얻은 감동의 향수를 찾아 다른 작품을 만나게 되는 계기를 얻는 듯 하다.   


'여러 빛깔'이란 제목에 드러나는 것처럼 사랑의 종류도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망나니같은 삶을 살던 이가 어떤 계기로 지순한 사랑에 빠지는가 하면 오누이가 사랑에 빠져 그 금지된 사랑에 대해 자책하기도 한다. 소년과 소녀의 사랑, 비록 그들의 첫사랑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소녀를 사랑했던 마음을 고이 간직하고 살아가는 소년이자 남자의 이야기도 있다. 

사랑 자체를 갈구하는 자존감 낮은 여인의 이야기는 주변의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존재의 이유를 찾는 불편한 주인공을 보이기도 하고, 높은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는 여인이 그녀가 사랑하는 연인을 차지하기 위해 그를 독살하고 자신의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시체가 되어버린 연인가 함께한다는 광적인 사랑을 보이기도 한다. 

실제 만나본 적도 없는 동경의 인물에 대한 사랑 이야기도 담겨 있는데 이는 요즘으로 비유하자면 아이돌에 대한 사랑이나 랜선연애에 빠지는 정도로 각색될 수 있을 것 같다. 한 남성의 맹목적인 사랑과 그 사랑을 이용하는 악녀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고 서로를 사랑하지만 사랑의 종류와 방법이 달라 곤란에 처한 연인이 소개되기도 한다. 


이문열이 소개한 10편의 작품은 자신에게 감동과 자극을 줬던 것들로 구성되고 있으며 이런 작품들이 이문열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 해석되었고 어떤 울림을 일으켰는지 적고 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사랑은 차이가 있을 것이고 실제 겪게되는 사랑 또한 다양할 것이다. 다만 연인을 향한 나의 희생이 망설여지지 않는 다는 공통점은 가지리라 생각한다. 


이문열이 소개한 10편의 작품 가운데 내가 가장 흥미롭고 애틋하게 다가왔던 것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슌킨 이야기[춘금초(春琴抄)]이다. 

어린 시절 안염을 앓고 시력을 잃은 슌킨, 샤미센(三味線) 연주에 특출난 재능을 보이지만 맹인이 된 후 괴팍해진 성격은 주변사람을 힘들게 하고 멀어지게 한다. 슌킨의 안내자 역활을 수행하는 사스케는 슌킨의 엄함과 괴팍함을 묵묵히 받아내고 슌킨에 대한 존경과 사랑으로 슌킨의 모든 것을 포용한다. 슌킨에 대한 사스케의 사랑은 그녀가 시력을 잃은데 더해 아름다운 얼굴까지 잃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맹인이 된 후 아름다운 외모가 슌킨의 자존감을 지탱하는 원동력이었는데 그것마저 잃고 괴로워하자 사스케는 자신의 시력을 희생해 그녀의 삶을 지탱한다. 그리고 종내 그래왔던 것처럼 그녀가 죽는 순간까지 슌킨을 지극히 보살핀다.  


누구든지 눈이 멀면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맹인이 되고 나서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구나. 오히려 반대로 이 세상이 극락정토라도 된 것 같은 생긱이 들었어. 스승님과 단둘이 살아가면서 연화대 위에 사는 기분이었다. 눈이 멀고 나니 눈을 뜨고 있었을 때 보이지 않던 여러 가지가 보였기 때문이야. 스승님의 얼굴도 그 아름다움을 마음속 깊이 보게 된 것은 맹인이 되고 나서였어...(중략) 어째서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을까 신기할 정도였다. 특히 나는 스승님이 켜는 샤미센(三味線)의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소리를 실명한 후에 비로소 음미할 수 있었어...(중략) 그래서 나는 신령님이 다시 앞을 보게 해주신다고 말씀하셔도 거절했을 것이야. 스승님도 나도 맹인이 되어서야 눈 뜬 자가 모르는 행복을 맛보게 되었단다. (172페이지, 맹인이 된 사스케의 말 중에서)      

슈킨에 대한 사스케의 사랑은 그녀를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지극함 그 자체이다. 사스케에게 슌킨이란 존재는 외경의 대상이면서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슌킨의 모진 모습조차 사스케는 흔들림없이 사랑하고 존경하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슌킨을 대한다. 그녀의 모든 모습과 행동을 온전히 사랑으로 품은 사스케는 그녀가 떠난 후에도 같은 마음을 간직한 채 그리워하고 동경한다. 범인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지고지순한 사랑이기에 사스케의 사랑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 듯 하다. 





어떤 책은 그 책이 담고있는 정보와 감동을 넘어 다른 책을 건내주는 역활을 한다. 이문열의 <사랑의 여러 빛깔>이란 책 또한 그 자체로 흥미롭고 감동적인 감흥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해당 작가의 다른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가교 역활을 한다.


한 작가의 여러 작품을 접해 보면 해당 작가의 공통된 필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데, 필체가 주는 감동이 독자로 하여금 그 작가를 추종하게 만드는 매력이라 느낀다. 이문열의 <사랑의 여러 빛깔>을 읽으며 내가 더 찾게 된 작가는 <슌킨 이야기>의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사랑스러운 여인>의 '안톤 체호프'이다. 


개인에 따른 차이가 있겠지만 이 책에 소개된 10명의 작가와 10편의 작품을 접한 뒤 자신에 맞는 작가를 찾아 그의 작품을 더 알아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라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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