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와 천황 - 일본의 이중구조를 이해하는 두 가지 방법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이마타니 아키라 지음, 이근우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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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를 접하다 보면 천황이란 존재에 대한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전제군주라기 보다 상징적 존재로 비춰지기도 하고 실존하는 통치자가 아닌 종교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질 때도 있다. 일본의 무사가 권력을 쥐고 흔들었던 막부 시절, 우리가 익히 아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의 무장이 활개를 치던 시절에도 천황의 존재는 항상 그들과 함께 논의되었다. 실권은 빈약할지라도 천황이란 존재가 갖는 상징성(신의 후손이며 일본의 최고 지위에 있다는 믿음)에 의해 막부의 수장들조차 천황을 버리지는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무가와 천황>은 12세기 말엽부터 메이지유신 직전까지의 시기동안 무가(막부)와 천황 사이에 일어났던 패권 다툼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이 둘 사이의 균형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통해 일본의 중세를 들여다보고 있다. 


일본은 천황이 다스리는 단일왕조 국가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기도 한다. 천황이 일본 역사에서 왕조라 칭해질만큼 권력을 떨치는 자리였는지가 의문으로 남는데 <무가와 천황>에 실린 내용을 보자면 가마쿠라 막부(1185년부터 1333년까지)와 무로마치 막부(1336년부터 1573년까지)를 거치며 천황의 세는 크게 위축되었다. 당시 천황가에는 권력자의 가장 큰 무기라 할 수 있는 군수통제권은 물론이고 과세권이나 경찰권까지 막무에 모두 빼앗겼으며 연호의 제정이나 제사의 주최권 정도만 유지되었을 뿐이다. 이 의례적이고 종교적인 부분마저도 점차 잃어 16세기에는 천황이란 말 그대로 빈 껍데기처럼 남겨졌다. 드물긴 했지만 천황가의 제위를 찬탈하려는 시도까지 행해지기도 했다. 즉, 당시의 천황이란 허수아비 군주에 불과했을 따름이다. 


의례적이고 종교적인 권위는 16세기 말엽 오다 노부나가 시대에 어느정도 회복하였으나 실질적으로 군사를 부릴 수 있는 권력은 여전히 갖추지 못하였다. 무가의 지배자(쇼균, 정이대장군)의 의중에 따라 꼭두각시 노릇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았고 쇼군의 눈 밖에 나는 경우 유배되거나 강제로 천황의 위를 내줘야 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런 자신들의 처지에 분노하여 변혁을 도모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오다 노부나가가 암살당한 후 권력을 잡은 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그는 농부에서 대장의 위치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써 노부나가 사후 그의 빈 자리를 재빨리 차지했다. 노부나가를 따르던 중신들을 차례로 제거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견고히 해나간 히데요시는 숙적이랄 수 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강화(실질적으로는 항복)을 맺고 나머지 다이묘(대명)들을 굴복시키며 열도의 통일을 이뤄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열도를 병합했지만 그의 출신의 한계로 쇼군(천출인 히데요시가 쇼군의 지위에 오를 명분이 없었다)의 위치에서 전국을 통치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그는 결국 임진왜란을 일으켜 대의명분을 획득하고 쇼군의 지위를 얻고자 했으며 아직 전력이 온전한 다이묘들을 약화시키려 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런 히데요시의 의견에 반대했고 여러 핑계를 대며 임진왜란에 참전하지 않았다. 


1598년 히데요시가 생을 마감하자 그의 권력은 도요토미 히데요리에게 이어졌으나 아버지와 달리 굳건한 군사력을 가지지 못했단 히데요리는 결국 야심을 드러낸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자결로 내몰렸다. 결국 열도의 권력은 도쿠가와 가문으로 이어졌다. 


막부의 성장과 견고함은 천황가의 위축으로 이어졌지만 천황의 위치와 그가 내리는 윤지는 (비록 막부의 지시를 이행하는 것일지라도) 대의명분을 상징했기에 천황이란 존재를 내치지 않고 막부는 천황의 지위를 이용하곤 했다. 자신의 경쟁자를 토벌하거나 자신의 사람을 요직에 앉히거나 자신이 하는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할 때 천황의 윤지를 오용하였다. 이에야스의 시대에는 아예 천황가에 자신의 후손(딸)을 시집보내 자신은 국구가 되고 천황가 자체를 손아귀에 쥐고 흔들 수 있는 척신정치를 꿈꿨다.

막부의 권력(군사력, 지배권)이 강해짐에 따라 천황가의 위상은 더욱 형이상학적 위치로 강제되었으며 상징성을 제외하고는 천황가가 통치 전반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18세기 말엽부터 서양열강의 압력이 거세졌고 막부의 군사력이 이를 저지할 수 없음이 자명해지자 막부는 천황의 권위에 의존하게 된다.

외압에 의한 위기는 일본은 신국이다 고 말한 히데요시나 일본은 신국이자 불국이다라고 한 이에야스의 말처럼 일본을 천황이 최상위에 위치한 신국으로의 회귀와 존왕사상의 대두를 불러왔다. 더불어 외세에 무력한 막부를 타도하고자 하는 운동이 활발해졌고 결국 메이지유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무가와 천황>이란 책에 담긴 일본의 역사는 아마 일본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리라 생각되는 중세 막부시대를 담고 있으며 막부와 천황의 관계를 배타적이라기 보다 공생관계로써 풀어내고 있다. 이 시대의 천황은 '을'의 입장에서 막부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럼에도 천황이 상징하는 위상은 신의 자손이자 최고지위를 상징했으며 이것은 후일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의 성장과 제국주의에 물든 일본을 설명해주는 주요한 열쇠가 된다고 생각한다. 


등장인물이 많고 역사가 간략히 설명되고 있어 쉽게 읽히진 않지만 일본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읽어 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며 특히 일본사를 파편적으로 알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매우 유용한 책이라 여겨진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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