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정동호 지음 / 책세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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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서적 뿐 아니라 인문/교양 서적을 읽다 보면 자주 접하게 되는 몇몇 인물들이 있는데 어떤 인물은 그 이름 자체가 깊은 의미를 전달하고 영감을 주기도 한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면 '니체'라는 이름은 근대철학의 선구자로서, 어려운 철학의 상징으로서, 니체 철학 그 자체로써 다가온다. 특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대표적 저작으로 니체의 사상을 집대성한 작품으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아포리즘 형식으로 전개된 내용을 읽고 있자면 난독증에 걸린 것 마냥 글귀에 홀려 여기저기 끌려다니다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채 책을 덮게 되곤 한다. 나도 이십여 년 전부터 여러 차례 도전했던 <차라투스트라>를 비교적 최근에야 완독하게 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니체를 처음 접하는, <차라투스트라>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해하며, 우리같은 일반 독자들이 니체의 저작을 이해하고자 무턱대고 덤비는 것은 정말 무모한 행위이며(극소수의 천재들은 예외로 하더라도) 니체를 연구한 사람들의 머리를 빌려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차라투스트라>를 세 번째 완독한 지금도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항상 남기 때문에 이번에 소개하는 것과 같은 해설서를 다시 읽어봄으로써 내가 느꼈던 바와 비교/대조해 보고 니체를 만나는 방법의 다양성을 추구하는게 좋을 듯 하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처음 60여 페이지는 니체의 삶 전반에 그가 추구했던 철학에 관한 개괄이다. 또한 신을 부정하고 도덕을 부정했던 니체의 사상과 상반된 길을 걸었다고 생각될 수 있는 차라투스트라가 니체의 철학에 들어오게 된 이유를 추론하고 있으며 차라투스트라가 종교적 선지자로서 혹은 선각자로서 고행의 길을 걸었다는 점과 뭇 대중의 몰이해로부터 겪었을 어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처지에서 니체 자신과의 유사성을 발견했다고도 할 수 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라는 동양의 인물(선지자, 종교인, 철학자, 어떻게 부르든지)이 가진 명성을 이용해 자신의 사상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사상을 집대성한 걸작으로 평가받는 만큼 무턱대고 읽어 내기엔 매우 어려운 책이다. <차라투스트라>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니체의 모든 저작을 다 읽고 이해한 후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련이 될 수 있으므로, 연구자가 아닌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차라투스트라>에 담긴 니체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니체의 사상에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누군가의 안내를 받는 것이 좋다. 저자 정동호는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가 그런 역활을 수행하길 바라며 이 해설서를 통해 일반 독자들이 '차라투스트라'에 담긴 '니체의 의도'를 알고 나아가 '니체의 사상'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후반부는 이 책의 본론이라 할 수 있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순서에 따라 니체가 설파하고자 했던 내용을 해설하고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전체적 줄거리인 "차라투스트라가 10년의 고행 끝에 얻은 깨달음을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산을 내려가지만 미몽에 빠져 있는 대중은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따르지도 않는다. 차라투스트라는 대중의 미개함에 수치심과 환멸을 느끼며 다시 산을 오르지만 다시금 대중을 깨우치고자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에 담긴 많은 글들의 속 뜻을 천천히 설명한다. <차라투스트라>에 소개되는 초인(위버멘쉬), 마지막 인간, 힘에의 의지, 영원회귀 등의 사상과 뱀, 독수리, 낙타, 사자, 아이 등 스쳐 지나는 듯한 단어에 담긴 깊은 의미를 끄집어 내 독자가 <차라투스트라>를 접근하는 기본적 틀을 잡도록 돕고 있다. 


니체가 주인공 '차라투스트라'의 언행을 빌려 전달하고자 했던 바는 현재의 삶을 지속시켜 준다고 믿어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철저한 회의, 그리고 현재에 안주해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구축하는 사회질서, 거기에 담긴 선악, 법, 도덕, 신앙, 종교, 학문, 예술 모든 것들에 대한 근본적인 재평가를 시도하는 것이다. 니체는 반사회적 사상이나 허무주의 사상을 주장한 것이 아니다. 니체가 전달하고자 했던 바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과연 진정으로 우리에게 옳고 정당하기 때문에 자리를 잡은 것인지, 권력을 지닌 자들에 의해 수동적으로 길들여진 것 인지에 대한 깊은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과정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고 이어져 전 날에 얻은 깨달음을 새로이 하고 다시금 보다 깊은 깨달음을 얻어가는 사람, 궁극적으로는 위버멘쉬가 되길 권한다.




<차라투스트라>의 부제인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면서도 그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니체는 자신의 저작이 쉽게 사람들에게 녹아들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차라투스트라>를 읽을 많은 독자들이 겪게 될 어려움을 니체 또한 짐작했을 테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전달하고자 했던 바를 상징과 비유, 아포리즘 형식으로 엮어내면서 깊은 사고와 인내를 지니지 못한 자들은 <차라투스트라>를 이해할 수 없도록 장치했다. 니체는 끈기와 노력에 더해 높은 지성을 지닌 소수의 사람들만이 자신의 사상을 이해하고 따라오길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나와 같은 일반 독자가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에 접근하기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니체에 대한 전문가나 연구자들이 안내를 받음으로써 조금이나마 니체의 의도와 사상에 다가설 수 있을 따름이다. 


이점에서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는 니체의 저작을 읽기 전에 적어도 한 번은 정독해 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차라투스트라>에서 주인공이 차라투스트라가 된 이유부터 <차라투스트라> 전반에 걸친 내용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까지 어느 부분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나는 이전에도 니체 해설서 몇 권을 읽은 바 있고 그것을 디딤돌 삼아 <차라투스트라>를 완독할 수 있었는데 그 이후로 다시 <차라투스트라>를 읽을 때 그 전 독서에서 내가 이해했었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새롭게 다가오는 경험을 자주하게 됐는데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를 읽은 지금 다시 <차라투스트라>를 읽는다면 마찬가지 경험을 더 많은 곳에서 하게 될 것이라 짐작된다. 


니체의 저작을 처음 접하는 분들과 니체를 조금 더 알고자 하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있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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