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술에,
책과 함께하는 술에 끌리시는 분에게 추천


하늘은 어둑해진 밤이지만,
바로 집에 들어가기에 망설여지는 그런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약속마저 없는 날이면 어디로 향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죠.

그럴 때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책과 커피, 책과 차뿐만 아니라
책과 술도 함께 떠오르기를,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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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봄은 기적같다


봄꽃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기껏 손가락 한두마디 크기밖에 되지 않은 연약한 꽃들이 어두운 북사면에서, 아직 채 녹지도 않은 땅을 비집고 나오니 오죽 기특하고 안쓰러운가.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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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길이든 산책로든 지나다보면, 그 색이나 자태에 반해 이름이 궁금해지는 풀들이 있다. 그럴 때 참고할 만한 책이 있다. 여기서는 어려운 단어 없이 꽃과 풀들을 설명해 준다. 꽃의 식생 뿐 아니라 여러 얽힌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게다가 사진은 오로지 핸드폰으로만 찍었다니...(내 핸드폰을 다시 열어본다...문제는 찍는 사람인건가?)

야생화 성지라는 천마산에 지천으로피어 있는 꽃들을 직접보니, 책에서 읽은 꽃들의 이야기가 새록새록했다.

열매가 고양이 눈 닮았다는 금괭이꽃
씨앗이 땅에 떨어져 잎과 꽃대 올리기까지 7년이 걸린다는 얼레지
꽃 진 후 돋는 새순이 노루 귀 닮았다는 노루귀
이름이 멋진 꿩의바람꽃
(사진은 남기지 못했지만) 독특하게 생긴 앉은부채와 개감수
정말 다양하던 제비꽃들

따뜻한 햇살, 청명한 계곡물 소리, 시원한 바람 어우러진 아름다운 봄날
무엇보다도 작가님 두 분이 책을 위해 산을 다니던 1년이 가장 행복했다고 입 모아 말씀하실 때, 입가의 미소가 진정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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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는 서로를 통해 삶의 여러 이면들을 배웠다.˝

이를테면 재희는 나를 통해서 게이로 사는 건 때론 참으로 좆같다는 것을 배웠고, 나는 재희를 통해 여자로 사는 것도 만만치않게 거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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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밥벌이에 대한 책이다. 이런 책을 만날 때마다 나는 김훈작가가 떠오르곤 한다. <라면을 끓이며>에서 몇몇 장을 들여가며 밥벌이의 슬픔을 그렸던 그 글. 한동안 푹 빠져서 어딜가나 김훈작가님 운운하며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었다. (물론 작가님은 당신 글이 그렇게 여기저기 저렴하게 팔릴 줄은 추호도 모르셨을 것이다.)


"아, 밥벌이의 지겨움!!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다." <라면을 끓이며> 중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고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라면을 끓이며> 중


"이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든 먹이 속에는 낚시바늘이 들어있다. ... 낚싯바늘을 물면 어떻게 되는가. 입천장이 꿰어서 끌려가게 된다. 이 끌려감의 비극성을 또한 알고, 그 비극과 더불어 근면해야 하는 것이 사내의 길이다."<라면을 끓이며> 중


 사실 나는 한 직업에 들어서면 새로 열리는 세계가 좋다. 서비스 이용자로서는 모르던 세계. 일이 돌아가는 방식과 순차를 새로 익히는 과정은 재미있다. 그 앎만 좋았다. 각각의 일마다 저나름의 불의와 모순과 억압이 있었으니 새로움이 다하고 나면 곧바로 지치는 것이다. 지금도 한없이 소진된 상황인데, 글쓴이의 담담한 절망과 한줄기 희망을 보면서 조금쯤 회복한다. (역시 책만한 도피처가 없다.)


"우리는 어느새 인구가 한 명 줄어버린 관내를 전과 다름없이 순찰했고 세상 그 무엇도 바뀐 것 하나 없이, 멈춰버린 곳 없이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더라." 100p


"학생의 시신은 병원으로 옮겨졌고 현장에 남아 있던 핏자국은 말끔히 지워졌으며, 목숨 하나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파트 주민들은 방금 전까지 학생의 시신이 자리하던 곳을 지나다녔어. 누군가 쓰러져 죽어간 곳을 누군가 밟고 일어서며 오늘을 살아가는 곳이 바로 여기,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 107p


"경찰관이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가 대부분이었고,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절규가 지천에 널브러졌다." 196p


이를테면 이런 부분. 혹은 경찰을 준비하며 본 노량진의 고시생들, 업무하며 만나는 주취자, 가정폭력, 자살시도, 모든 현장에 존재하는 불의, 책임회피에 급급한 고위직, 보호받지 못하는 현장근무자, 다종다양한 진상 기타등등 기타등등. 밥비린내라는 단어가 절묘하다. 오늘 벌어 온 밥은 비릿할 것이다. 상사에게 욕먹고 고객에게 사과하고 나 스스로에게 화내고 잔뜩 지쳐서 온 오늘, 비릿한 밥을 두 공기나 퍼먹으며 생각한다. 아! 밥벌이 정말 지겹다.


그렇지만 그저 이렇게 욕만 하는 글은 아니다. 작가는 피해자들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는다. 희망도 놓지 않는다. 아니, 눈을 돌리지 않아야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선 자리에서 보이는 것들. 그것들을 직시하면서 계속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일터에서 진이 빠지고도 이렇게 마음을 다잡을 수 있나 돌아본다.


"어쩌다 피해자가 더욱 힘을 내야만 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들의 손 한 번 제대로 잡아주지 못하면서 응원의 말을 내뱉는 내가 부끄럽지만, 바라건대 뜻하지 않은 피해를 입은 사람 모두 잠시 앉았다가 숨을 고르고 운동화 끈을 단단히 여민 채 다시 일어나 세상을 마음껏 뛰어다녔으면 좋겠어." 72p


"나는 내가 본 현실을 과장하지도, 그렇다고 행복으로 포장하고 싶지도 않았다. 너무 우울하게 느껴진다고, 그 때문에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해서 시선을 거두어서는 안 된다. 모든 현장에 높인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경찰관까지,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순간 끝나기 때문에. 어떻게든 목소리는 이어져야 하고 연대는 계속되어야 한다." 196p


서간체로 이어가는 다정한 이 책이 좋다. 실은, 고백하자면 책날개의 마지막 문장이 참 좋다. 

"걸으면서 보도블럭에 낀 때와 그 틈을 비집고 피어난 잡초를 보며 이 글을 썼다."

이 문장이 없었으면 내 책장에 올려놓지 못했을테다. 지쳐가는 와중에 작가의 여러 문장 위에서 잠시 쉴 수 있었다. 내가 선 자리에서, 자세를 가다듬어 본다.

오늘은 출근하는 길이 유난히 피곤했어.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줍고 정의롭지 않은 일을 고발하기 위해 많은 걸 잃으면서까지 투쟁하는 한 명의 정의를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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