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책 읽는 여자
크리스틴 페레플뢰리 지음, 최정수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우리 독서가들은 모두 몽상가들이다.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향해 달려 나가는 몽상가라는 생각이 크리스틴 페레플뢰리의 <지하철에서 책 읽는 여자>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대해 기대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분량도 적고, 무엇보다 책에 관련된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리고 지하철에서 책 읽던 여자가 무슨 재미난 이야기-아무래도 로맨스에 관한 것일 것이다-를 기대했건만 그런 건 없었다. 어쩌면 프랑스 소설 특유의 그런 맥락이 뚝뚝 끊어지는 스타일이 꾸준하게 책 읽기를 방해한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동안에 로버트 크레이스의 책들을 두 권이나 읽느라 상대적으로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로버트 크레이스의 신간이 재밌긴 했다.

 

부동산 사무소에서 그냥저냥 하루를 보내는 쥘리에트, 책 전달자 두목 급에 해당하는 솔리망, 그의 딸 자이드, 지하철에서 이탈리아 어로 된 요리책을 읽던 실비아 할머니 그리고 역시 지하철에서 곤충에 대한 책을 읽던 레오니다스가 엮어내는 책에 대한 이야기는 좀 심심했다. 무언가 좀 더 스펙터클한 스토리를 기대한 게 문제였을까. 평범한 소시민이 책의 세계에 돌입해 들어가는 과정이 낯설게 느껴졌다. 적어도 쥘리에트는 할머니가 물려 주신 유산으로 구입한 아파트 덕분에 주거에 대한 걱정은 없었으니까, 솔리망의 뒤를 이어 ‘무한 도서 협회’ 그리고 그의 딸 자이드까지 보살피게 되었을 때 주저하지 않고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었다. 아, 직장인의 로망이여.

 

저자 크리스틴 페레플뢰리는 정처 없이 부유하는 상념들로 고민하는 주인공 쥘리에트의 내적 갈등을 탁월하게 풀어낸다. 우리는 삶 가운데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면서 살 때 가장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고 살지 않는가. 그냥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산다고 하면 너무 슬프지 않을까. 아마도 그럴 때, 책이야말로 최고의 위안이 될 거라는 상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쥘리에트는 솔리망이 심장 수술 중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좌절하지 않고 번듯하게 무한 도서 협회 두목으로 자신의 일을 꾸준하게 해나갈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솔리망의 딸 자이드를 이란의 시라즈에서 살던 난민이자 그녀의 어머니 피루제에게 데려다 준 후, 만나게 된 노란미니버스를 끌어다가 이동식 전달자의 삶을 살기로 결정한다. 그렇지 삶의 순간들은 모두가 결정의 순간이다. 자신의 집을 세준 다음, 그 비용을 바탕으로 ‘옐로 서브마린(Y.S.)'의 연료를 채우고, 장거리 이동 중에 필요한 비상식량과 잡화들을 산 다음, 보무도 당당하게 잿빛 도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그녀가 길 위에서 책을 한 가득 실은 버스를 달리며 만나게 될 인연 아니 운명들의 이야기가 문득 궁금해졌다. 적어도 책을 사랑하는 이들과의 만남이라면 밤을 세워서라도 할 이야기들이 많을 테니까 말이다.

 

확실히 <지하철에서 책 읽는 여자>의 줄거리는 몽상적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우리네 현실에서도 만날 수 있는 오가와 이토의 <달팽이 식당> 그리고 토니 모리슨의 <술라>(이 책은 바로 어제 주문했다) 같은 책들이 주는 현실성에 퍼뜩 눈이 떠졌다. 아, 그렇지 나는 책 읽는 사람이었지. 곳곳에서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이지 못한 이물감에 다소 생소해지는 그런 느낌이 드는 독서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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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0 15: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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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0 15: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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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0 15: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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