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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탐정 ㅣ 버티고 시리즈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12월
평점 :

9년 만에 다시 로버트 크레이스와 만나게 되었다. 그 때 읽었던 책이 <투 미닛 룰>이었는데 솔직히 너무 오래 전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1953년 미국 루이지애나 인디펜던스 출신 로버트 크레이스는 입양되어 자랐고, 루이지애나 주립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아하 그러니까 공돌이 출신 작가란 말이지. 1976년 할리우드로 근거지를 옮겨 <마이애미 바이스> 등의 방송작가로 활동하면서 에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1985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몽키스 레인코트>를 발표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이번에 출간된 <마지막 탐정>은 세계 최고의 사설탐정이라는 미국 레인저부대 출신 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가 등장하는 9번째 소설로 지난 2003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전작 <LA 레퀴엠>과 데뷔작인 <몽키스 레인코트>(절판)도 읽어 보고 싶어졌다.
사실 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 시리즈는 처음인지라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새로웠다. 소설 초반, 알래스카 불곰과 격돌하는 조 파이크는 부상이 채 낫기도 전에 야생 생태학자들을 습격해서 살해한 미친 불곰과 대결하는 장면에서는 소설이 어떻게 전개될까 궁금했지만 소설은 바로 알래스카에서 캘리포니아 그러니까 엘비스 콜의 근거지로 이동한다. 그리고 애인 루시 셰니에가 출장간 사이 며칠 동안 그녀의 아들 벤 셰니에를 데리고 있는 동안 유괴사건이 발생한다.
세계 최고의 탐정도 전혀 추격의 실마리를 잡지 못할 정도로 벤을 유괴한 놈들의 실력은 대단했다. 18세의 나이에 베트남전에 레인저 부대원으로 참전할 정도로 유능한 실력의 소유자였던 엘비스는 이번 대결에 나서는 적들이 자신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악랄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바로 동료 조 파이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한편, 벤을 납치한 범인들은 베트남전 당시 엘비스가 동료들은 무참하게 살해한 것에 대한 복수라면서 아무도 모르는 특수한 사실들을 공개한다. 아들의 납치 소식을 들은 루시의 전남편 리처드가 루이지애나에서 자신의 경호원들을 데리고 출동하고, 정말 밥맛 떨어지는 캐릭터인 리처드는 <데몰리션 엔젤>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던 캐럴 스타키 형사와 협력해서 실낱같은 단서를 찾던 엘비스를 사건에서 제외시켜 줄 것을 유괴사건을 맡은 지타몬 경사에게 강력하게 요구한다.
자신이 아이를 맡고 있는 동안 벤을 잃어버린 사실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요목조목 자세하게 아는 유괴범들이 자신에 대한 복수를 공공연하게 떠들어대자 엘비스는 잠도 한숨 못자고 사건 해결에 나선다. 엘비스는 결국 자신의 집을 멀리서 관찰하던 실력 좋는 유괴범의 족적과 지문을 획득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들의 리더가 디보이(델타 포스) 출신 마이클 팰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재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유괴사건과 더불어 과연 베트남에서 엘비스와 그의 동료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용병으로 참전했던 시에라리온에서 마이클 팰런과 에릭, 이보가 무슨 만행을 저질렀는지 세 개 축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이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책을 읽으면서 베트남전 당시 상황에 대한 묘사가 하도 뛰어나서 나는 로버트 크레이스가 베트남전에 참전한 줄 알았다. 하지만 크레이스의 바이오그래피를 살펴보니 딱히 그런 내용은 들어있지 않았다. 아마 실제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이들의 조언을 받아 생생한 리포트식의 글을 써낸 것 같다. 시에라리온에서도 마찬가지고. 후자는 몰라도 전자는 전적으로 미국이 부도덕한 전쟁을 치른 것이 명백한데도, 군경력-베트남전이라는 모종의 카르텔로 구성된 사나이들의 세계라는 허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멋진 일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아무런 명분도 없이, 사실을 조작해서 시작한 전쟁에 대한 후유증이 문학에도 영향을 미리고 있다는 점이 놀랄 따름이었다.
물론 로버트 크레이스가 설계한 반전은 따로 준비되어 있다. 그것을 까는 건 바로 스포일러이기에 그 부분은 패스하자. 첨단 수사기법을 동원해서, 범인으로 추정되는 신원불상자들의 족적을 채취하고 육군 인사기록부에 등재된 자신의 기록을 조회한 사람이 누구인지 사건을 맡은 형사들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는 엘비스 콜의 실력에 경의를 표한다. 아무리 그래도 LAPD들을 무능한 멍청이들로 만드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좌충우돌하며 오로지 벤을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뛰는 엘비스의 모습에서 수십년 전 베트남전에서 끝내 구하지 못한 신병 로이 애보트의 처절한 죽음이 바로 연상됐다. 그러니까 엘비스에게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미션이 결국에는 하나로 귀결된 것이었다. <마지막 탐정>은 정말 영화화 되기에 최적의 요건들을 지니고 있었다. 베트남과 시에라리온에서의 사건들, LA 도심에서 벌어지는 자동차 추격전 그리고 마이클 팰런 일당들과의 최후의 대결.
중후반으로 넘어갈수록 호기심이 증폭되서 도저히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일단 그 정도로 재미는 보장한다. 참고로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바로 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가 등장하는 첫 번째 소설 <몽키스 레인코트>를 중고서점에서 데려왔다. 아쉽게도 절판이 돼서 아마 대부분의 온라인서점에서는 취급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책도 다 읽고 나면 <L.A. 레퀴엠>과 캐럴 스타키 형사가 등장하는 <데몰리션 엔젤>도 구해서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