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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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요크 지방의 손애플이라는 자그마한 마을에 아서 페퍼라는 은퇴한 열쇠 수리공이 살았다. 50년도 넘게 열쇠 수리공으로 일한 아서는 1년 전에 자그마치 40년 동안 결혼생활을 함께 한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다. 그러던 아서가 어느날, 앞으로 나가기 위해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에 여덟 가지 요색영롱한 참(charm) 팔찌를 부츠 속에서 발견하면서 진정한 자아 찾기에 나서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된다.

 

소설은 물론 재미었다. 평생 빠듯한 가계를 운영하기 위해 돈만 버느라 자녀들인 댄과 루시의 양육은 모두 아내 미리엄이 책임졌었다. 그러니 부모와 자식 간의 사이가 좋을 리가 있나 그래. 심지어 댄과 루시는 미리엄의 장례식에 참가하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이니 외부와 고립된 삶을 지속하던 아서 할아버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듯 싶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특히 이웃의 버나뎃은 각종 빵과 케익을 구워 줄기차게 아서와 같은 실패자들을 찾는다. 매사가 귀찮았던 아서는 처음에는 매몰차게 버나뎃의 성의를 거절하지만 외아들 네이단과 대학 진학을 위한 스쿨 투어를 하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거의 평생을 규칙적으로 살아온 아서에게 그가 참 팔찌와 여행하면서 만나게 되는 상황들은 하나 같이 이해불가다. 그러니 나중에 그나다 자신을 잘 이해해 주던 루시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을 때, 사랑하는 딸조차 아빠가 맛이 갔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어쨌든 아서가 미리엄의 참 팔찌를 들고 추적에 나선 미스터리물은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어느 순간,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대히트를 기록했던 <오베>가 생각나기도 했다. 빡빡한 세상에 자기계발서도 더 이상 독자들에게 먹히지 않는 마당에 독자들의 심금과 돈주머리를 열 수 있는 비결을 발견이라도 한 걸까. <오베>도 그랬지만, 비교적 빤한 스토리가 진행된다는 건 잘 알면서도 책장은 수월하게 쉭쉭 넘어간다.

 

물론 팔찌 추적의 실마리들이 군데군데 끊겨 보일 때도 있었지만, 작가가 잘 개입해서 부드럽게 연결해준다. 그게 바로 작가의 실력 아니겠는가. 그리고 바로 영화판권(당연한 수순이려나)도 팔려서 영화로도 만들어진 전망이라고 한다. 요런 슈가 크림을 담뿍 바른 소설이 영화가 되지 않는다면 좋은 시나리오에 눈이 먼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정망 장님일런지도.

 

어쨌든 아서 페퍼 씨의 팔찌 추적은 저 멀리 인도 고아에서 한 때 아야(유모)로 활동했던 미리엄의 과거로부터 시작해서, 저명한 휴양지 배스에서 암호랑이들을 키우는 몰락한 그레이스톡 경(아서는 이 에피소드로 퉁명한 청년 네이단에게 호랑이 아저씨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의 하렘에서 미리엄이 몸담은 적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한 때 잘 나가던 저자 드 쇼펑의 뮤즈였다는 비밀까지도 알게 된다. 가장 재밌는 사연 중의 하나는 바로 미리엄이 친구였지만 비극적 사연을 알고 있던 소니 야들리 씨를 찾아 갔다가 회화과 대학생들의 누드 모델이 된다는 설정이었다. 이 장면에서는 문득 엉뚱하게도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떠오르르기도 했다.

 

복잡한 런던 지하철을 타기 위해 친절해 보이는 청년에게 말을 걸었다가 순식간에 소매치기를 당하기도 한다. 물론 한때 마약 중독자였지만 갱생해서 거리의 플루티스트로 활동하는 마이크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참 팔찌의 비밀이 풀리는 순간까지 우리의 소영웅 아서 페퍼 씨는 추리와 추적을 그만 두지 않을 기세다. 그 뒤에 기다리는 비밀이 아무리 자신이 받아 들일 수 없는 그런 가혹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결말은 역시 책의 표지에 잘 나와 있다. 영국 런던을 상징하는 빅벤과 파리의 상징물 에펠탑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도의 타지마할이 등장하지 않는가. 단 한 장의 이미지만으로도 소설이 지향하는 바를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는 점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을 감싸 주는 것은 바로 가족일 수밖에 없더라는 간단한 삶의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

 

수많은 클리셰이들이 넘실대는 아서 페퍼 씨의 모험이었지만 정말 재밌었다. 패드라 패트릭 작가가 다음에는 또 어떤 이야기로 독자들을 찾아오게 될지 자못 궁금할 수밖에 없다. 반복 혹은 정체 아니면 기대 이상의 진격일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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