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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배드 폭스
벵자맹 레네 글.그림, 강희진 옮김 / 북레시피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간만에 유쾌한 동화 만화 한 편을 봤다. 프랑스 출신 작가 벵자맹(벤저민의 프랑스식 발음이다) 레네의 <빅 배드 폭스>다. 한가로운 농장의 암탉을 노리는 못난이 여우의 독박 병아리 육아기라고 해야 할까.
전통적으로 교활한 여우 이미지 대신 선량한 여우의 이미지를 쓰고 등장한 여우는 배가 고파 암탉의 엉덩이를 물어 뜯었다가 된통 혼이 난다. 농장의 경비견과 토끼 돼지가 아무리 정교하게 울타리를 세워도 얼뜨기 여우는 침투에 성공한다. 열 도둑을 못 막는다는 옛 속담이 생각났다. 신세한탄하던 여우는 숲의 진짜 강자 늑대를 만나 컨설팅을 받기에 이른다. 좀 더 협박에 능해야 하고, 으르렁거려 상대방을 위협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런데 어찌 보면 다 허세다. 그리고 진짜 무력한 상대를 골라 공격하라는 조언까지 해준다. 농장에서 가장 무력한 존재는 무엇일까? 바로 암탉이 낳은 알들이었다.
못난이 여우는 늑대의 조언대로 농장에 침투해서 암탉이 품고 있던 세 개의 알을 탈취하는데 성공한다. 물론 자력으로 성공하지는 못하고 그것도 늑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성공한다. 문제는 요놈의 알들이 부화해서 병아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갓 태어난 녀석들은 여우를 자신의 엄마라고 생각하고 뒤따른다. 그 다음 이야기는 안 봐도 빤하겠지? 그 녀석들과 지내면서 정이 들대로 든 여우는 얼른 키워서 잡아먹자는 늑대의 제안에 실존적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까 아무리 미물들이라고 하더라도, 소통을 통해 이루어지는 관계야말로 이 만화 같은 동화에서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한편, 자신의 알을 탈취당한 암탉도 가만 있지는 않는다. 이른바 연대의 힘을 보여 주기에 이른다. 무능하고 무사태평한 경비견을 닦달질해서 자신들의 안녕을 위협하는 여우 더 나아가서는 훗날 무시무시한 늑대마저도 쫓아낼 수 있는 자력갱생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드만 스튜디오의 <치킨 런>이 연상되기도 했다.
귀엽고 발랄한 세 마리 병아리를 꿀꺽 하려는 늑대로부터 도망치는데 성공한 여우는 자신들이 여우라고 굳게 믿는 세 병아리들과 다시 농장에 안착하는데 성공한다. 물론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면 안되기에 농장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닭으로 위장해서. 병아리 삼총사들은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고, 학부모 회의에 참석한 여우는 결국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게 된다. 이 와중에 철도 없이 늑대 아저씨를 찾아나선 병아리 일병들 구하기에 성공한 여우와 농장의 암탉들은 못난이 여우를 농장의 일원으로 받아준다.
병아리 삼남매를 귀찮아 하면서도 고 녀석들이 커가는 동안 정이 흠뻑 든 여우의 모습에서는 오늘도 독박육아에 지친 부모들의 그림자가 엿보였다.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통째로 필요하다고 했던가. 사촌 형제들이 수두룩하던 시절에는 아무도 놀거리 걱정을 하지 않았었는데, 요즘엔 외동 투성이라 아이들이 홀로 커가는 걸 보노라면 마음이 쨍하다. 그리고 개별적 존재로 보면 암탉들도 병아리들처럼 무력하기만 하지 않은가. 하지만 암탉들이 연대의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생존과 안녕을 위협하는 늑대에 충분히 대항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주는 장면은 정말 통쾌했다. 고거 정말 상쾌한 걸. 벵자맹 레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