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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17년 5월
평점 :

연말이다. 곳곳에서 올해의 책 소개가 이어지고 있다. 아마 이기호 작가의 책도 그런 곳에서 본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알게 된 책 중의 하나가 조지프 히스의 <계몽주의 2.0>인데 조만간 그 책도 한 번 사서 읽어야지 싶다. 그나저나 마침 인근 도서관에 이기호 작가의 책이 있다고 해서 냉큼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감기에 걸려서 고생하고 있는데 병원에 가는 길에 읽기 시작했는데 진료 대기하고 약 받는 동안에 50쪽이나 읽어 버렸다. 어, 이 책 재밌는데.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단박에 다 읽어 버렸다. 좀 쉽지 않은 책들을 소화하느라 소화불량의 느낌이 오던 차에 청량음료 같은 책을 만나 즐겁게 읽을 수가 있었다. 이렇게 재밌는 책 읽는 맛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래.
원래 월간지에 30년을 보고 연재를 시작했다고 하는 이기호 작가의 가족 에세이는 세월호 사건으로 아쉽게도 3년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고 한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지난 3년 동안 공감능력을 상실한 정부 밑에서 살다 보니.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 버리는 통에 종종 멘탈이 붕괴되는 일들을 수도 없이 겪지 않았던가. 뒤늦게나마 모든 것이 자리를 잡아 가는 것 같아 다행이다.
이기호 작가는 전업작가가 아닌지 직장 때문에 광주로 가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아내의 친정은 경기도 부천,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강원도 원주에 사신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명절시즌이 되면 수백킬로미터 삼각꼭지점을 찍는 아버지 그리고 아들의 절절한 심정이 바로 내리 꽂혔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작가 삶의 결정타는 8살 연하의 아내가 천둥벌거숭이 같은 아들 형제에 막내 딸아이를 가지게 되면서 전투육아 모드로 돌입하게 된다. 부인님이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말에 어찌나 그렇게 공감이 가던지, 네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마 지금 아이를 키우는 중이라면 이기호 작가의 가족 에세이에 나처럼 격렬하게 호응할 것이다. 일단 심리적 마지노선이라고 하던 신생아 40만명 시대가 붕괴된 2017년 당당하게 아이 셋을 거느린 아버지 이기호 작가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라고 생각한다. 작가처럼 소신을 가지고 아이들을 낳고 길르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선택을 한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내가 아는 형도 늦장가를 가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지금 인구를 유지하려면 최소한 한 가정당 2명은 낳아야 하는데, 1명 혹은 아예 아이를 가지지 않는 가정이 늘어난다고 하니 걱정은 걱정이다. 얼마 전, 유치원 추첨행사에 갔었는데 작년보다 지원한 아이들의 수가 절반이나 줄었다고 한다. 그렇게 인구 감소는 바로 현장에서 절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지난 십년 동안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었다고 하는데 출산율을 하루가 다르게 줄어가고 있으니 더 문제다. 모름지기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하는데, 쥐꼬리 만한 월급인상으로는 도저히 치솟는 전세값조차 감당할 수가 없으니 어찌 아이 키우는데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으랴. 절로 한숨이 나오는구나. 게다가 민폐라며 아이들의 입장을 막는 노키즈존이 늘어나는 시절을 보고 있으려니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사설이 길었다. 이기호 작가의 가족 에세이로 돌아가 보자. 우선 작가와 부인의 아이들 키우는 방식에 깊이 공감할 수가 있었다. 겨울이 되니 꼬맹이를 데리고 더 갈 곳이 없어졌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근처 마트를 순회하던 시절이 났다.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지출이 너무 많아졌다. 꼬맹이는 마트의 장난감 코너를 귀신 같이 알아내서 구경만 한다며 가서는 결국 무언가 손에 쥐지 않고는 절대 떠나지 않는 그런 신공을 선보이지 않았던가. 그래서 아마 작가의 부인님은 마트가 아예 없는 조금은 살기에 불편한 곳으로 아예 보금자리를 옮기는 결정을 내렸던 게 아닐까.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마땅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작가 역시 마트 출입을 하다가 바닷가재 세일 줄에 무의식적으로 서기도 했다고 하지 않은가. 우리 꼬맹이가 이마트에서 선전하는 연두해요~ 연두해요~를 따라 부르는 장면도 작가가 에세이집에 쓴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육아 선배 이기호 작가에게 배울 게 많구나 싶었다. 기존의 편견에 사로잡힌 나 같은 부모는 아이의 시선보다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에게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걸 해주고 싶어한다. 마음에 드는 짝꿍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생일파티를 뷔페에서 하겠다고 하는 큰아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아빠. 하지만 아들이 사모하는 짝꿍은 그 허다한 맛난 음식을 놔두고 우동만 들입다 먹어댄다. 가성비가 꽝이었던 투자였다. 아무래도 그 짝꿍이 자기 아들보다 우동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내년에는 우동집에서 생파를 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을 읽으면서 어찌나 웃기던지. 볼리비아 염소떼가 무시로 출몰하는 어금니 치료 사건도 아주 웃겼고, 얼결에 뱉은 말에 첼로를 덜컥 사온 아내의 호기도 멋졌다. 나도 기타가 배우고 싶은데. 내 생에 더 이상의 배움은 없다고 선언한 게 얼마 전이었더라.
가족 사진을 찍으러 가서 영정 사진을 마련하겠다고 말하시는 작가 아버님의 에피소드도 짠했다. 그리고 보니 나도 어려서 한창 사진 찍기에 심취했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을 찍어 드리니 영정사진으로 쓰면 되겠구나 하시던 기억이 났다. 내 나이 먹는 것만 생각했지 부모님들 역시 나이 드시는 걸 잊고 살았구나 싶기도 하다. 아들네 들르셨다가 돌아가시는 길에 지인들에게 영광 굴비를 사다 후하게 인심 쓰고 싶으셔서 슈퍼 한다는 말로 굴비를 사시는 어머님의 모습도 그렇고. 아이 참, 이 양반 정말 글로 사람을 희롱하는데 선수구만 그래.
2017년 마지막 달에 아주 맴이 훈훈해지는 그러면서도 재밌는 글을 읽어서 마음이 참 좋다. 별 다섯 개가 전혀 아깝지 않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