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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이야기 11 - 초한쟁패, 엇갈린 영웅의 꿈 ㅣ 춘추전국이야기 11
공원국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2010년부터 시작된 장장 7년에 걸친 공원국 작가의 <춘추전국이야기>가 마침내 종결점에 도달한 모양이다. 보통 춘추전국시대의 끝은 진시황의 전국통일로 보는데, 공원국 작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진나라의 멸망과 초한쟁패에 이은 한나라의 건국까지 내달렸다. 처음에 저자가 알려 주듯이 주된 사료는 태사공 선생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를 참고하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아주 오래 전에 만난 김팔봉 선생의 <초한지> 이래 다시 압축본으로 초한쟁패를 만나보게 되어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다시 만난 세계와의 조우, 정도로 해두자.
진시황이 건설한 거대 제국 진의 균열은 하남 출신 진승과 오광의 작은 반란에서 시작되었다. 변방의 수자리로 동원된 일단 농민들이 큰 비를 만나 정해진 날짜까지 출두하지 못하게 되자, 내친 김에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진나라의 가혹한 형벌이 제국의 번영을 약속하는 대신 붕괴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여전히 계급사회였던 시절에 진승과 오광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는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선전선동으로 일약 반란군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특히 진제국의 통치에 가장 불만을 품고 있었던 초나라를 근거로 삼아 수도 함양으로 진격을 개시한다. 진승과 오광의 반란은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장이와 진여의 조언을 받은 무신은 하북을 정벌한다. 이 때 등장해서 무신에게 진왕 진승을 배신하라는 권고를 한 사람이 바로 훗날 그 유명한 한신에게도 비슷한 권고를 했던 괴철(혹은 괴통)이다. 오합지졸의 진나라 지방군을 상대하던 반란군의 기개도 비록 수인 부대긴 하지만 장함이 이끄는 진나라 정규군과의 대결에서는 별무소용이었다.
통일제국 진나라의 무리한 건설사업, 대외원정 그리고 그런 사업비를 감당하긴 위한 관리들의 가혹한 수탈이 결국 관중을 제외한 피지배 지역이었던 산동지방의 군웅할거를 야기했고 진승과 오광의 반란에 이어 유방과 항우로 대변되는 두 스타 반란군에 의해 결국 진나라는 망국의 길을 걷게 되었다. 자, 그렇다면 과연 중원의 지배자는 누가 될 것인가를 두고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없듯이 두 영웅들은 명운을 건 승부에 나서게 된다. 초한쟁패의 초반만 하더라도 압도적인 무력을 자랑하는 항우의 승리가 결정적으로 보였지만, 끊임없는 패배에도 불구하고 전략가라기 보다 정치가다운 면모를 보인 협객 유방이 관중을 틀어쥔 상국 소하의 지원, 최고의 전략가 한신의 지원에 힘입어 마침내 5년여에 걸친 천하쟁패를 마치고 승리하게 된다.
물론 간략하게 정리된 초한쟁패 와중에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했지만, 저자에 의하면 관중에 설계했다는 춘추전국 시대를 지나 중국의 원형이 되는 400년 한제국을 건설한 협객 유방만한 걸물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협객 유방이야말로 진나라 법치주의자들이 가장 두려워한 존재였다. 젊어서부터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유방은 초나라를 대표하는 명문가 출신의 항우와는 출생부터 달랐다. 압도적인 무력을 자랑하는 항우가 서초패왕으로 거록에서 진나라 항병들을 생매장하고, 진나라의 수도 함양에 들어가 아방궁을 불태우고 약탈하고, 초의 의제를 시해하면서 천하의 인심을 잃는 동안, 파촉으로 쫓겨 들어간 유방은 착실하게 내실을 다지면서 중원공략을 준비했다. 가혹한 악법에 시달리던 관중 사람들에게 유방은 약법삼장이라는 유명한 정치선동으로 호소해서 지루하게 이어질 수년간의 전쟁의 기반을 선취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유방 진영의 선동이 주효한 탓도 있겠지만, 항우가 항상 후방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제후 반란군의 위협(도둑왕 팽월의 유격대 활약상)에 시달려야 했다. 형양과 성고에서 유방을 포위해서 충분히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고 해하에서 단 한 번의 패배로 천하쟁취를 꿈꾸던 역발산기개세를 자랑하던 항우의 꿈을 스러져 버렸다.
중원을 차지한 유방은 제국의 안정을 위해 연이은 제후들과 공신들의 반란 진압에 여념이 없었다. 수년 간에 걸친 전쟁 때문에 지배자는 시급하게 민생고를 해결해야 한다는 뛰어난 정치감각을 발휘했다. 비슷한 처지였던 진시황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민중의 지배에 나섰다면, 민중의 피폐함을 잘 알고 있던 유방은 관용이라는 방식으로 제국의 기초를 다졌다. 그동안 수많은 초한쟁패를 다룬 책들을 읽어 왔지만 저자처럼 법률과 경제적 측면에서 시대상을 분석한 글을 처음으로 접한 것 같다. 신선한 시도였고, 미시적 접근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수많은 민중의 요역이 필요했던 대역사도 그랬지만, 흉노를 정벌한다는 야망에서 시작된 대외원정 역시 엄청난 비용이 필요했다. 특히 전쟁에 반드시 필요한 마필 확보는 거의 불가능했다. 중원에서 말을 길르기에는 거의 불가능했고, 오랑캐 지배권에서 말을 사들이는 것도 요원했다. 보급은 또 어땠을까? 수송에도 말이 필요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대규모 기병전에서 흉노를 이길 수 없는 상황이지 않았을까. 한나라의 영역을 최고로 끌어 올린 정복군주 한무제에 대해서도 저자는 신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수많은 비용이 드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비용 마련을 위해서인지 어쨌는지 매관매직이 횡행했고 가혹한 혹법이 다시 등장해서 민생경제를 가히 파탄지경으로 이끌어 갔다고 한다. 이런 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던 한나라 시조 고제 유방은 어쩔 수 없이 수많은 내전을 치르면서도 불필요한 전쟁은 최대한 억제했다.
한나라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는 유가사상의 도입에 있어서도, 모든 것이 경제가 잘 돌아가야 나라의 기강이 설 수 있다는 점도 황제는 잘 알고 있었다. 후대 사가들은 사료와 유물로 한 대의 법률 역시 진대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는 혹률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진을 계승하면서 법률까지 계승한 한나라의 경우 핵심은 법률을 집행하는 최고권력자의 유연한 태도가 결정적 차이가 아니었을까. 고대 사회에서 현대사회에서와 같은 고도로 발달된 효율적인 행정서비스를 기대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법가 정신으로 무장된 진나라 관리들은 혹형을 선호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연한 법 적용을 자랑했던 고조 유방도 국가반역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최고형으로 다스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만 전시라는 특별 상황 때문에 그리고 천하에 나는 항우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선전을 위해서라도 덕침에 방점을 찍었던 게 아닐까 싶다.
행동이 개돼지 같아도 집만 부유하면 세도를 부렸습니다.
태사공 선생의 <사기> 가운데 법률 적용에 관해 <공우열전>에 나오는 글이 책에 인용되었는데, 자그마치 2천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비슷한 일들이 반복적으로 뉴스에 등장하는 걸 보면 역사 발전의 법칙이 시대가 바뀌어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마지막 권을 다 읽고, 되돌아 관중이 설계한 춘추전국시대를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어졌다.
[뱀다리] 오탈자와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정도로 문법에 어긋난 소유격 부분에 대한 오류들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장이와 진여 중에 장이를 전국시대 장의로 착각했는지 왜 그렇게 장의라고 표기되어 있는 부분이 많은지 모르겠다. 일개 독자도 짚어낼 수 있는 정도의 오류가 너무 많아 실망스럽다. 각각의 이유로 별 한 개씩을 제외했다. 책의 완성도를 해치는 해당 문제를 사전에 왜 조치하지 않았는지, 책이 나오기 전에 꼼꼼한 교정에 다시 한 번 제고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