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맨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13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추지나 옮김 / 레드박스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시즈쿠이 슈스케 작가의 <범인에게 고한다> 시리즈 두 번째에 해당하는 <립맨>을 읽었다. RIP이라고 해서 무슨 엽기적인 방식의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범죄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RIP은 rest in peace 의 약어로 편히 잠들라는 말쯤으로 생각하면 될 듯 싶다. 소설 <립맨>은 처음에는 평범하게 보이스피싱 범죄에서 시작해서 대일본유괴단이라는 이름으로 유괴 사업에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숨가쁘게 그리고 있다.

 

<범인에게 고한다> 시리즈의 전편에 해당하는 배드맨 스토리를 읽어 보지 않아 장발의 마키시마 후미히코 수사관(53세)이 전작에서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지만, 경찰과 범인이라는 고양이와 쥐 게임에서 상당한 실력을 발휘했다는 점과 7년 전 요코하마에서 벌어진 유괴사건의 실패를 트라우마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나가와 현 소속의 형사특별수사대 소속으로 최근 급증하는 보이스피싱 범죄를 멋지게 해결해내는 장면을 통해 작가는 구사일생으로 경찰의 습격에서 벗어난 스나야마 도모키와 다케하루 형제 그리고 아와노 사토시라는 정체불명의 사나이에게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올해 26세의 도모키는 7년 전인 대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을 불의 교통사고로 여의고, 동생 다테하루와 지내고 있는 중이다. 어찌어찌하여 학교는 졸업했지만 미나토당이라는 제과업체에 취업했다가 해당업체가 유통기한 이슈로 문제가 생기면서 취업이 취소되는 바람에 범죄 세계에 빠지게 되었다. 평일에는 보이스피싱 사기단으로 고수 아와노가 전달해 준 피해자들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면서 주말에는 바에서 알바를 뛰며, 목돈을 모아 자기도 새출발하려는 꿈을 꾸고 있다. 문제는 4~5억원에 해당하는 목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도모키의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한 아와노는 새로운 범죄 사업(crime business)을 하나 제안한다. 그것이 바로 유괴 사업이다. 영리 유괴가 중죄라는 걸 알면서도 단기간에 최고의 범죄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삼인조는 비교적 간단한 유괴 사건으로 ‘실적’을 쌓은 뒤 진짜 목적인 미나토당 사장에 대한 범죄에 돌입한다. 구원을 해소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자금 마련이라는 두 마리 토끼사냥에 도모키도 별 수 없이 승낙하게 된다.

 

대일본유괴단의 영수 아와노는 치밀한 작전을 세워, 단순하게 미나토당의 사장 미즈오카의 어린 아들 유카 군을 유괴하는 게 아니라 그의 아버지 미즈오카 사장까지 더블 유괴 방식으로 이중범죄를 모의한다. 아이가 유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반드시 경찰이 개입하리라는 점을 정확하게 파악한 아와노 일당은 미즈오카 사장에게 다른 방식으로 몸값을 마련하라는 계획을 알려준다. 거의 성공할 뻔한 자금 전달은 마지막 순간에 뒤틀어지면서 아와노 일당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가 싶었지만 두목 아와노는 그것도 모두 염두에 두었다며 개의치 않는다. 보이스피싱으로 단련된 이 치밀한 사내의 한계는 도대체 어디일까 싶을 정도다.

 

소설의 한편에서 한편에서 아와노 삼인조가 그렇게 다수의 시간과 비용을 들인 신종 범죄사업을 구상하는 동안, 마키시마로 대변되는 경찰 특수수사대 역시 속수무책으로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다. 오히려 관료 조직 특유의 견제의식과 외부에 자신들의 전공을 과시하기 위해 범죄해결보다 언론 노출을 신경쓰는 장면 등은 우직한 모습으로 사건해결에 나서는 마키시마 수사관의 활약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장치들이다. 조직의 실제적인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수사1과장 소네 요스케 씨의 무조건 범인을 잡아 대령하라는 닦달부터 시작해서 이웃 도쿄도 경찰의 비협조, 특수수사대 인적 지원에 인색한 동료들, 배드맨 사건에서 우연히 일약 스타가 된 어리바리 오가와 가쓰오 형사 등 날고 기는 범죄자들을 상대하기에 역부족처럼 보이는 조직에 대한 작가의 신랄한 비판으로 읽힌다.

 

얼마 전에 읽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의 주인공 버크 데보레 아저씨처럼, 청년 도모키 역시 어쩌면 사회구조의 모순 때문에 발생한 피해자일 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미나토당 경영진이 가담한 조직적인 유통기한 스캔들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정상적으로 취업해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을 게 아닌가.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사회 복귀를 꿈꾸던 청년은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아와노의 작전이 실패할 경우, 유타 군을 안전하게 풀어주겠다는 결심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동생인 다케하루를 보호하기 위해 형제의 우애를 보여주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악당이지만 단순하게 악당으로 볼 수 없었던 설정도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사건의 배경이 되는 요코하마에 대한 공간적 지식이 있었다면 좀 더 이해가 쉬웠을 테지만 아무래도 물설고 낯선 지명들이 많이 등장하다 보니 소설의 진행을 팔로우업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책을 다 읽고 나서 구글맵으로 요코하마 야마테, 모토마치 등지를 검색해 보았지만 잘 알 수가 없었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두 번째 에피소드인 <립맨>을 읽고 나니 배드맨이 등장한다는 <범인에게 고한다>가 읽고 싶어졌다. 증오를 먹고 산다는 마키시마 수사관의 통렬한 복수극이라는 북트레일러의 표현 대로 <립맨>에 버금가는 놀라운 전개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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