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일기 - 아직은 아무 것도 아닌 나
김그래 글.그림 / 레진코믹스(레진엔터테인먼트)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래는 딴짓 요정 그거 나도 알아, 뭐 그런 부제로 시작하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아는 “그래”는 드라마 <미생>에 나오는 장그래 뿐인데, 이제 <그래일기>를 읽고 나서는 김그래라는 작가도 알게 됐다. 그리고 네이버 웹툰에 연재를 했다는 것도. 작가의 그래일기는 작년 8월 31일 도쿄여행을 마지막으로 연재가 중단된 상태다. 혹시 다른 곳에서 연재 중인가? 그 중에서 이번에 레진코믹스에서 나온 작가의 두 번째 책 <그래일기>에는 실려 있지 않은 굿네이버스 <말라위에 가다>편은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이렇게 멋진 이야기가 왜 책에는 실려 있지 않은지 궁금했다.

 

작가가 애정하는 구글맵으로 돌려 보니 말라위는 아프리카 남부 모잠비크와 잠비아 사이에 있는 나라였다. 수도는 릴롱궤. 나는 중앙아프리카 어느 쯤에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 생각에 아무래도 후진국이다 보니 각종 의료 시설 등이 부족하고 생활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굿네이버스 재능기부팀의 일원으로 말라위에 간 김그래 씨가 보고 들은 건 상상 이상이었다. 아이를 낳을 보건소가 넉넉하지 않다 보니, 산모들이 차로 두 시간 혹은 한나절 걸어서 보건소에 갔다가 산모가 죽기도 하고, 어렵게 낳은 아이를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구 감소 추세에 적극적으로 출산 지원을 하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산부인과가 줄어들다 보니 군단위에서는 인근 대도시로 출산을 하러 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어떤 점에서 보면 말라위나 우리나라나 다를 게 없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바닥도 마감되어 있지 않은 비위생적인 흙바닥 같이 정말 열악한 상황에서 아이를 낳은 말라위 사람들의 현실을 보고 경악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참 불행하고 동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들 나름대로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우리의 시선이 그릇된 게 아닐까하는 그런 시선 말이다. 그런데 <그래일기>에 수록된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모든 이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신드롬의 후유증이라고나 할까. 어떤 이들은 타인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고집해서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지 않던가. 왠지 이 작가는 많이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이다.

 

시작이 좀 심각했다. 사실 <그래일기>는 좀 가벼운 터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쩌면 <말라위에 가다>편은 빼놓았는지 모르겠다. 이제 반오십을 산 젊은 친구가 고민하는 여러 가지 일상이 콕콕 내리 찍힌다. 졸전 준비에 쫓기면서도, 재능 기부를 위해 말라위를 찾기도 하고 5살 차이나는 동생과 티격태격하는 장면도 재밌고, 비슷한 성향을 지닌 오랜 친구들과 옥신각신하는 설정도 재밌다. 하지만 웹툰 작가로서 무엇보다 힘든 건 아마 소재사냥이 아닐까. 아무 생각 없이 뒹굴다가도 소재감이 떠오르면 바로 메모해서 망각으로부터 구해내야 하는 절대임무를 지니고 살아야하는 숙명이라고나 할까.

 

그 왜 시험이나 중요한 일을 해야 할 때 찾아온다는 딴짓 요정이란 표현도 참 재밌다. 평소에 들어도 되는 음악이나 아무 때나 읽어도 무방한 책(대부분은 만화책)이 왜 촌각을 다투는 시간에 그렇게 재밌는지. 전면적인 청소보다는 위치이동으로 공간을 만들고 뭉개는 것도 어쩌면 그렇게 절절하게 표현해냈는지 백퍼공감할 수가 있었다. 뭐 그렇게 가는 거겠지. 간간히 찾아드는 감동의 순간 포착에도 작가는 능숙하다. 언젠가 자신도 엄마가 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엄마에게 물었더니 너 같은 딸을 한 번 낳아 보라는 말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기도 하는 장면은 어찌나 웃기던지. 자신만의 공간을 갖기 위해 마련한 사무실이 주는 현실의 무게(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그러니까 사무실을 유지하기 위해 돈이 든다는 말이다)에 버거워하는 청춘이 어찌나 현실적이던지.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다 보면 무엇이라도 되겠지하는 마음도 절절했다. 아무리 거창한 꿈을 꾼다고 해도 되지 않을 거라는 걸, 계획 세우기 전문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말미에 갈피 친구가 4박 5일 떠났던 일본 여행 고생길도 재밌다. 그렇지 여행이란 그런 거지. 가기 전의 설레임으로 잠을 제대로 못자서 눈이 퉁퉁 붓기도 하고, 아무래도 초행길이다 보니 헤매는 바람에 얼마나 많이 걸어야 했던가. 역에서 5분 거리 숙소를 찾지 못해 한시간이나 고생했다는 말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도쿄타워에서 친구가 써준 카드를 받고 흐뭇해 하는 것 같은 에피소드야말로 고생길 여행을 추억 여행으로 남게 해주는 그런 요소들이 아닌가 말이다. 물론 이제는 그런 고생 여행을 사양하고 싶지만 말이다. 또 닥치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책을 받아서 단박에 읽었다. 아주 즐겁고 신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