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철도 분실물센터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나토리 사와코 지음, 이윤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토리 사와코, 처음 들어보는 작가다. 제목을 보는 순간 안드레이 쿠르코프의 <펭귄의 우울>이 떠올랐고, 책을 읽으면서는 최근에 읽은 루스 호건의 <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가 떠올랐다. 물론 배경도 내용도 달랐지만, 제목에서 주는 이미지와 분실물을 소재로 잡았다는 점에서 어떤 연관성이 떠오르게 됐다.

 

소설 <펭귄철도 분실물센터>는 네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에피소드에는 투톤 컬러의 귀엽기 짝이 없는 이름 없는 펭귄 한 마리와 야마토기타 여객철도 나미하마선의 종점 우미하자마 역 분실물센터에 근무하는 빨강 머리 훈남 모리야스 소헤이가 등장한다. 매력남 소헤이는 여객들의 잃어버린 물건보다 그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주는 일을 해주고 있다고 해야 할까. 소헤이 역시 사연을 품고 있는 청년이다. 자, 이제 이야기 속으로 여행을 떠나 보자.

 

첫 번째 에피소드인 <고양이와 운명>에서는 자신이 잘못 돌보고 방치해서 죽은 애묘 후쿠의 유골을 가지고 다니면 렌터카 직원 사소 쿄코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자신이 짝사랑하던 다치나바 선배와 결혼한 미치네 집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자신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 버린 교코는 기차에서 우연히 펭귄을 만나게 된다. 뒤뚱거리며 역사를 돌아다니는 펭귄을 만나게 된다면 누구나 처음에는 놀라지 않을까? 정말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우연의 연발로 고양이 유골을 담은 가방이 이와미라는 남자의 것과 바뀌게 되고, 우미하자마 역 부근에 있는 임해공원에서 이와미에게 느닷없는 애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알고 보니, 이와미의 꿍꿍이가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하게 되는 교코. 어쨌거나 빨강 머리 청년 소헤이의 도움으로 훈훈하게 마무리.

 

개인적으로 다음 이야기가 더 재밌었다. <팡파르가 울린다>의 주인공은 현실세계에는 보잘 것 없는 남자지만, 온라인 게임 세계에서는 의리 넘치는 남자 후쿠모리 겐이다. 문득 잘나가는 게임의 군주님이지만 현실에서는 말단직원이라는 현실을 비꼰 광고가 바로 연상됐다. 겐(터스)은 자신과 팀메이트로 게임세계에서 맹활약했던 동료 히사메님의 공식 은퇴를 앞두고 마검을 획득해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다며, 마검을 파는 게임 노점상이 의뢰한 희한한 부탁을 수락한다. 임무수행을 위해 야마토기타 여객철도를 이용하던 중,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로 아리따운 소녀 이토 마히로와 만나게 된다. 꿈은 이렇게 이루어지는 건가. 우리의 주인공 겐터스가 잃어버린 건 그가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던 오래전 반장이었던 마히로가 건네준 러브레터. 자연스레 젠투 펭귄 녀석과 빨강 머리 소헤이가 등장한다.

 

결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우연들이 겹치면서 겐터스와 마히로는 작은 모험에 나선다. 그 와중에 어여뿐 소녀 마히로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겐터스.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어 보이던 멋진 소녀 마히로 역시 부모님의 불화로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그동안 노력해 왔다는 애처로운 고백을 듣는다. 세상에 문제가 없는 가정은 없다더니만 그 말이 맞구나, 왜 우리는 선현의 말을 무시하는 걸까. 암튼 그래서 독립을 준비하고 있었다며, ‘인디 아이돌’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는 사실을 겐터스에게 알려준다. 마히로에게 고백한 싸나이 순정은 무참하게 박살났지만, 인디 아이돌 마히로의 첫 번째 팬으로 멋진 손글씨로 쓴 팬레터를 날리는 겐터스. 뭐 그렇게 가는 거겠지.

 

위태위태한 결혼생활을 영위해 가던 지에와 미치로가 등장하는 다음 이야기는 더 흥미진진하다. 예의 야마토기타 기차에서 임신부 뱃지를 습득한 지에가 임신했다고 생각한 미치로의 착각을 타고난 거짓말을 이용해서 사실로 만들어 버리는 지에. 왜 처음부터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던 걸까? 지에 역시 자신들의 결혼이 백척간두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걸 독자들은 그녀의 고백을 통해 알게 된다. 취업과 결혼 그리고 출산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수동적이었던 지에는 야단법석 같은 헛소동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게 된다. 그리고 처음으로 미치로를 사랑하고 있고 그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솔직한 감정의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다.

 

 

 

자, 이제 대망의 마지막 에피소드 <스위트 메모리스>다. 나토리 사와코 작가는 멋진 결말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두었다. 어떻게 해서 젠투 펭귄 녀석이 야마토기타 여객철도를 펭귄철도로 만들었는지, 그 알파와 오메가를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속 시원하게 설명해 준다. 사적 감동 뿐만 아니라, 경제 고도성장기에 오로지 최대한의 경제적 이윤과 성장을 추구해온 전후세대가 노년을 맞은 시기에 겪게 되는 젊은 세대와의 갈등에 대해서도 작가 나름의 화해를 보여준다. 그리하려 등장하게 된 인물이 바로 양성 뇌종양으로 차츰 기억을 잃고 있는 꼰대 후지사키 준페이다. 거의 액션 활극에 가까운 서사를 통해 준페이 어르신은 잊고 싶은 과거와 그보다 더 어려운 현재와의 화해라는 두 마리 토끼사냥에 나선다. 그런 점에서 인디 아이돌 루루탄이 시전하는 마법사 놀이를 등장시킨 작가의 설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케케묵은 시간의 더께 속에 쌓인 반목과 갈등이 다이치가 준비해온 군침도는 빵들로 당장에 해결될 순 없겠지만, 역시 시간이 해결책이라는 걸까. 아들 세대를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 세대와의 해묵은 갈등해소 또한 미지의 세계이자, 새로운 모험이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설 <펭귄철도 분실물센터>를 읽으면서 초반에는 좀 시큰둥했지만 역시 결말에 가서 그동안 나왔던 캐릭터들이 모두 등장해서, 한바탕 난장으로 시원하게 마무리하는 장면은 정말 감동이었다. 그렇군 글을 쓰려면 이 정도의 컨셉과 스토리라인 그리고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이 시원한 결말은 필수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토리 사와코 작가님 한 수 배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