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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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저의 작가 책은 그전부터 컬렉션해 왔지만, 정작 읽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다 올해 초 작가가 작고했다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 읽기 시작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사후 그의 책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출간하고 있는 열화당에서 두 권이 책이 또 나왔다. 한 권은 사진집인데 가격이 비싸서 사지 못하고 대신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에세이 모음집인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를 사서 어젯밤에 읽었다. 모두 11편의 에세이들이 담겨 있는데, 어떤 내용은 잘 몰라서 와 닿지 않는 내용도 있었고(특히 그림 부분에 대해), 또 시장을 장악한 독점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에서는 격하게 공감할 수가 있었다. 본인은 부인했을 지 몰라도 내 눈에 그는 명백한 마르크스주의자다.

 

첫 번째 에세이가 모국어로 시작했던가. 해외에서 살아 보면 아마 모국어 말하기의 편리성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존 버저 역시 프랑스로 자발적 망명해서 살아온 이방인이니 이방인의 설움을 잘 알지 않을까하는 그런 엉뚱한 상상이 들었다. 외국인 이민자와 노동자에 대한 그의 일관된 시선과 주장을 고려해 볼 때, 아마 나의 상상이 틀리지 않았을 것 같다. 모국어에 대한 그의 단상은 에세이집의 후반부에 나오는 아랍 여성의 노래와도 일맥상통한다. 점점 더 실황연주를 듣기 어려운 자가복제의 시대에, 굳이 언어를 몰라도 눈 앞에 선 인간이 선율에 따라 부르는 노래에 대한 이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서 좀 더 확장해 본다면 휴머니스트로서 인간에 대한 사랑에까지 도달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에세이집에서 좌충우돌하게 되는 나의 사유는 미디어 시스템에 대한 작가의 신랄한 비판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글로벌리즘이라는 미명 아래, 전 세계를 석권한 투기 금융 자본의 폐해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무자비한 자본의 폭력 아래, 세계적으로 3억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일자리와 안정적인 거주지를 찾아 헤매고 있다는 지적 앞에 놀랄 따름이다. 지금도 중동 지방에서 창궐하는 IS의 핍박을 이기지 못해 위험천만한 지중해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는 수많은 난민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왜 미디어는 그런 문제들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고, 쓰레기 정보들만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다시 한 번 자본에 종속된 미디어 현실에 대해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중세 시절에는 엄격하고 무자비한 검열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중이 정보를 얻는 과정을 차단했다면, 현대에는 정보의 양으로 질을 통제하고 있다. 최근에 벌어진 탄핵정국에서 검증되지 않은 가짜뉴스들이 범람하고 재인용되는 현상을 목격하지 않았던가.

 

미술평론가로서 존 버저 저자는 수십년 전 대규모 푸생전에서 만난 무명의 스웨덴 미술가 스벤 블롬베리를 회고하는 글도 에세이집에 담았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이긴 하지만 피카소처럼 생전에 명성과 그에 따른 후광으로 힘입은 금권까지 누린 미술가가 몇이나 될까. 작고한 스벤 블롬베리를 추억하며,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즐거웠던 시간들을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우리가 과연 삶에서 추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 보게 해주는 그런 시간이 갖게 만들어 주었다.

 

폴란드 자모시치 출신으로(저자가 유럽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나라가 폴란드라고 했던가)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에 독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하다가 우파 백색 테러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된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한 추모의 글을 한 번 살펴 보자. 인간다움 삶을 주장하던 혁명가의 삶이야말로 존 버저가 평생 동안 이룩하려고 노력했던 것이 아닐까. 그런 한 축에 자본가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무시무시한 혁명가가 존재했다면, 다른 한 편에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영화계에서 추방당한 광대 찰리 채플린이 있었다. 전자가 대중의 각성을 요구하며 변화를 강조했다면, 후자는 삶이라는 잔인한 질곡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던 대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자본 축적과 이윤 추구가 삶의 절대명제가 된 시절에, 서로 역설적이지만 우리네 삶의 페이소스(pathos)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소재들을 정밀타격한 작가의 글들은 정말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배어 나오는 곱창 같다고나 할까.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건대 전문적으로 미술 공부를 하지 않은 미술문외한으로 저자가 에세이집의 곳곳에 새겨 넣은 회화에 대한 글들에는 공감을 하지 못했다. 그저 한 권의 책을 다 읽어 내는데 급급했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존 버저의 에세이들이 주는 힘은 기대 이상이었다. 작가라면 모름지기 이런 글을 써야 하는 게 아닐까. 다 읽고 나서도 계속해서 우리로 하여금 사유할 수 있게 하는 그런 글 말이다. 80년 필력의 힘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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