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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알레르기
고은규 지음 / 작가정신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힐링의 시대다. 언제는 소통이 시대의 키워드였었는데 이제는 힐링에 자리를 내주었다. 카카오스토리나 인스타그램을 보면, 힐링 여행의 흔적들로 도배가 되어 있다. 삶에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힐링들이 필요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읽은 <오빠 알레르기>의 작가도 누군가에게 위로, 힐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글을 서두에 남겼다. 나도 힐링이 되었을까? 그건 솔직히 잘 모르겠다. 평소처럼 꾸역꾸역 그렇게 글을 읽었을 뿐인데.
모두 7개의 이야기를 품은 <오빠 알레르기>를 살펴 보자. 남녀 구분 없이 학형이라 부르던 시절에 학교를 다닌 내가 복학생이 되었을 때, 오빠라고 불리던 그런 이물감을 고은규 작가가 창조한 <오빠 알레르기>의 주인공도 비슷하게 느꼈던 걸까. 청청패션이 어색하지 않던 시절, 운동과 사회변혁에 대한 열정이 살아 숨쉬던 학창시절에 대한 기억들이 표제작을 통해 되살아나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선배 언니의 장례식장에서 옛 사랑을 만난 감정 그리고 술에 취해 미처 부조를 해지 못해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고 외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작년에 읽은 권여선 작가의 <안녕 주정뱅이>가 연상되기도 했다.
그 다음 두 이야기는 좀 임팩트가 약해서 패스. 비틀즈 노래 제목을 차용한 <맥스웰의 은빛 망치>가 주는 교훈 하나는 그러니까 남의 일에는 참견하지 말 것. 선의로 개입했지만 결과는 보장할 수 없으니 말이다.
<엔진룸>은 소설집 중에 가히 최고로 꼽을 만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퇴직하고 운영하시던 치킨 집을 빈대들의 습격으로 말아 먹고 수술 중에 돌아가셨다. 이혼한 강철 캥거루 언니는 화자와 우연히 갔던 콘서트 무대의 주인공 아이돌 가수에 미쳐 금벌(golden bee)과 화자 은주의 돈을 튀고 대부도로 그리고 대공원으로 튀었다. 그날은 날이 좋아 언니 잡기에 안성맞춤인 그런 날이었다. 어쩔 수 없이 살림을 줄여 이사간 집은 도무지 세간살이를 버릴 줄 모르는 엄마 덕에 아수라장이다. 그런 자신의 집을 보고 동네 사람들은 쓰레기 더미를 기어 다니며 산다고 수군거리고. 우리에게 어쩌면 가족은 바로 그렇게 “발에 맞지 않는 구두” 같은 그런 존재가 아닐까.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고 받는 우리네 삶에 대한 초상을 작가는 직격한다.
다음 작품 <급류 타기> 역시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매일 같이 지나는 현실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지연과 영훈이 사는 집은 새로 지은 빌라지만 부실공사로 금이 가고, 정전이 다반사다. 문제는 지연을 누나를 뉴욕에서 지하철 사고, 아이를 임신한 지연은 오빠를 엘리베이터 사고로 잃었다는 것이다. 아내에게 죽은 오빠의 시신을 보지 못하게 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엄습한다. 이렇게 위험한 세상에 아이를 내놓는 게 두렵다는 지연은 유산을 결심한다. 아내의 우울증을 달랠 길이 없는 가운데, 농약회사에 다니는 영훈은 자살을 결심하고 농약을 들이부은 이들에게 해독제 처방을 그리고 농약사용을 잘못해서 손해를 입게 된 학교 후배의 아버지의 피해보상을 다뤄야 하는 곤란한 업무에 시달린다. 농약복용이 되돌릴 수 없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왜 사람들은 불가역한 상황에 그렇게 자신을 내던지는 걸까. 출구가 없는 미로에 갇혀 맴도는 햄스터 같다는 느낌이 위로보다는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우리네 삶이 마치 거친 물결에 내던져진 보트 같다고나 할까.
시위에 참여했다가 돌아오지 않는 오빠에 대한 기억을 안은 화자가 등장하는 <딸기> 그리고 악성종양으로 다리를 절게 된 이복언니를 가족으로 둔 주인공 <명화>가 등장하는 이야기로 소설집 <오빠 알레르기>는 막을 내린다. 고은규 작가가 쓴 소설집에 등장하는 핵심 주제 중의 하나는 바로 가족이다. 닭 소 보듯이 하고 있어도 가족은 가족이다. 가족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최소 전투단위다. 살기 위한 발판이 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을 가두는 족쇄나 질곡이 되기도 한다. 내가 가족을 고를 수 없듯이, 가족도 나를 고를 수 없다. <엔진룸>에서 이혼한 언니를 강철 캥거루라고 부르면서 독립을 꿈꾸는 와중에 언니가 꼬불쳐둔 상여금을 들고 튀었다. 이 원수를 어쩌란 말인가. 이런 원수 같은 언니에 대한 분노감은 허세를 부리며 부동산을 통해 구경하러 간 집의 주인이 직장동료라는 사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세상은 참 요지경이다.
표제작에서 술에 취해 신참내기들한테 남자 직원들에게 오빠라고 부르지 말라는 꼰대 상사의 진수를 보여주는 장면도 멋지다. 원칙을 내세우다 보면, 자신도 예외가 아니라는 규정에 걸리기 마련이지 않은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이다. 내가 구축한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화를 내보기도 하지만, 상대방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그저 히스테리로 치부될 지도 모르겠다. 나는 또 직장에서 타인에게 어떤 존재로 각인되고 있는지 묻게 되는 그런 이야기였다.
<오빠 알레르기>의 소설들은 재밌는 것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소설도 있었다. 모든 작품을 평등하게 좋아할 수는 없겠지 아마도. 난 재밌고 내 마음에 드는 좋은 작품만 기억하련다. 다가오는 봄에 소품으로 읽기에 아주 부담 없는 그런 소설집이다. 아, 사족으로 고은규 작가도 블랙리스트 명단에 있다고 한다. 자랑스러운 훈장 같은 블랙리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