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 - 최민석 초단편 소설집
최민석 지음 / 보랏빛소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그가 돌아왔다. 희대의 걸작이라고 전설처럼 전해지는 <풍의 역사>에서 영화 <국제시장>에 버금갈 만한 스케일로 독자를 현혹하던 최민석 혹은 개민석이라고 자칭하는 작가가 이번에는 이기호의 작가의 뒤를 이어(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려나) 초단편 소설집에 실린 42개의 이야기를 자크 라캉, 레비스트로스, 사르트르, 하이데거 등등의 철학적 사고와 구조주의 어쩌구와는 전혀 상관 없이 글발 내키는 대로 창조해냈다. 그러니 이 어찌 읽지 않고 배길 수가 있으리오. 냉큼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읽어냈다.

 

묘하게도 최민석 작가의 <시티투어 버스를 탈취하라> 이래로 그의 팬이 되어버린 듯 싶다. 그가 그렇게 절절하게 하소연해대는 저주받은 걸작 <풍의 역사>도 읽었고 <쿨한 여자> <능력자>까지 모두 섭렵했으니 말이다. 그 정도 읽었으면 이 작가의 뻔뻔한 스타일이 어떤지 그리고 어떤 재미를 전달해 줄지 대충 어림짐작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다니엘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작가가 난데없이 스페인어 학원에 다니다 만난 맥주 1,000cc 원샷녀 이리네와 썸을 타는 이야기를 보면서 문득 우리 독서모임에 출몰하는 어느 남정네가 바로 연상됐다. 그 친구도 다니엘하고 참 비슷한데,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그 친구가 글을 쓰면 다니엘 수준 정도의 글을 뽑아 낼 수 있으려나 하는 엉뚱한 상상에까지 도달했다. 어쨌든 제목만큼이나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은 뻔뻔하고, 군데군데 야하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재밌다.

 

몇몇 이야기들이 서로 교차하는데 가운데 소설집은 앞으로 내달린다. 아주 뻔뻔하게 동경에서 하이볼을 탐하는 김평관이 쫓는 진범으로 말더듬이를 등장시켜 ㄱㄱㄱ를 늘어뜨리며 원고분량을 뽑아내는 태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작가 내공이 대단하군. 생뚱맞게 미시시피에서 달려온 모기떼가 전국을 엄습해서 도시가 죽어가고 좀비들을 양산해 낸다는 설정은 또 어떤가. 약쟁이 그레고리가 알고 보니 고아원에서 천사로 위장한 이사장에게 돌아가신 어머니가 유물로 남겨주신 소중한 목걸이를 뺏긴 지질한 영철이었다니. 우리에게는 영화 <라 밤바>로 널리 알려진 리치 발렌스가 남긴 몇 안되는 곡 중의 하나인 <다나>로 숱한 염문을 만들어내고, 교도소에서 철사장으로 익힌 기타 주법으로 그야말로 세상을 평정한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들이 왜 이렇게 난 재밌는지 모르겠다.

 

전 여친 소피아가 마치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천의 얼굴을 가진 이선 호크처럼 마스크를 벗어대며 다양한 인물로 등장해서 노벨문학상을 받을 작가를 괴롭히는 장면은 또 왜 이렇게 유쾌하던지. 물론 이번 봄에 동료작가 한강 씨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다시 한 번 말하지만 본상이 아니란다, 아카데미로 치면 외국어영화상 정도 되겠다. 작년 아카데미 외국어상 수상작이 어떤 영화인지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과연)을 받았다는 사실에 매우 자극을 받은 모양이다. 자신의 소설집에 계속해서 노벨문학상 타령을 해대는 걸 보면 말이다. 어쩌면 스스로 “난 그래 속물이다, 어쩔래!”라고 악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 소설에 등장하는 중요한 사이드킥 한 명을 빼놓았구나. 그 사람의 이름은 바로 이재만. 작가가 서식하는 서울 M동에서 자동차 수리센터를 운영하는 양반이라고 하던가. 작가에게 고통을 안겨준 죄 때문에 수리센터 사장님 이재만 씨는 계속해서 그의 소설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또다른 마장동에 사는 수리센터 사장님의 귀여운 항의문도 게시하는 친절함도 잊지 않는 귀요미 같은 작가의 소심한 복수극을 응원할 수밖에. 작가가 맡긴 차의 수리를 불친절하게 해주었다는 이유로, 고양이로 변신해서 거세를 당하는 수난극에 시달리는 장면은 정말 최고였다. 술만 마시면 개로 변신한다고 해서 스스로 개민석이라고 부르는 서술 앞에서는 자학적 쾌감의 일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런데 소설 제목에 문득 미국의 그 수많은 주 이름 중에서 하필이면 미시시피 주를 골랐을까라는 궁금증이 유발됐다. 아니 주 이름 미시시피가 아니라 강 이름 미시시피였던가. 뭐 아무래도 상관 없을 것 같다. 거짓말을 전문으로 하는 업자의 흥겨운 일상사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으니 말이다. 그리고 막판에 기록하기 위해 글을 썼노라는 선언 앞에서는 정말 숙연해 지기도 했다. 그렇다, 모름지기 업자라면 그렇게 흥겨운 이야기 속에서도 감동의 쓰나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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