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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예요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고종석 옮김 / 문학동네 / 1996년 3월
평점 :
어제 도서관에 갔다가 키란 데사이의 책을 빌리려고 검색해 보니 없더라. 그리고 <바야돌리드 논쟁>도 있으면 빌리려고 했지만 도대체 제목이 생각나지 않더라. 바돌리야르라고 검색하니 나올 리가 있나 그래. 뭐라도 빌릴까 해서 서가 구석구석을 뒤지다가 마침내 만난 책이 바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이게 다예요>였다. 뭐 시집 같기도 하고, 다음달에 문학동네에서 그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 나온다고 하니 준비운동하는 셈 치고 빌려왔다.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던 해 태어나서 우리 나이로 82세까지 사셨으니 그 정도면 장수하셨다고 해야겠지. 그녀의 작품 연보를 보니 정말 많은 작품들을 썼는데 정작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은 얼마 없더라. 죽기 전해인 1995년에 마지막 작품으로 발표된 <이게 다예요>는 마치 그녀의 문학적 유서 같다는 표현이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그녀의 연인이었던 얀 앙드레아 (슈타이너)와의 대화를 비롯해서 작품 집필을 위한 노트 같은 글들이 백지 위에 이어진다. 사실 저자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 보지 않아 그녀의 문학 세계나 스타일에 대해 정말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노년의 작가가 남긴 노트 만으로 그녀의 작품 세계를 유추해 본다는 게 정말 가능할까 싶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다는 것처럼 다가오는 죽음의 두려움에 대해 그리고 죽기 전까지 사랑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대한 감정의 변전(變轉)처럼 두서없이 나열되고 있다. 작가에게 기록의 잉여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 아무 것도 아닌 문장처럼 보이지만, 그 하나의 문장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대작이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엉뚱한 상상에 젖어 보기도 한다. 작가 말고 그 누가 창대한 시작을 상상할 수 있을까 과연.
자신이 문학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 그리고 무엇을 쓸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의 기록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아니 이렇게 작가가 남긴 노트 마저도 책의 모습으로 둔갑해서 미지의 독자와 만나 교감을 이루고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현실이 그저 놀랍지 않은가.
헛되고 헛되도다라는 두 문장이 지상의 문학의 어머니라고 자신감 넘치게 쓸 수 있다니. 그것은 마치 성경 잠언에 나오는 말처럼 독자의 가슴을 후려친다. 아니 문학은 어쩌면 헛된 게 아닐 지도 모른다는 강렬한 부정이 하고 싶은 걸까. 모든 것이 헛되다는 無(무)에서 정(正)과 反(반)의 결합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지도 모른다는 문학적 변증법을 지칭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거의 죽음에 도달한 작가의 끊이지 않는 텍스트에 대한 갈망이 느껴지는 묘한 순간이었다. 이게 자신이 가진 것의 모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