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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학교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5
박현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5월
평점 :
간만에 청소년문학을 읽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담배 피우는 사람들의 심리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흡연에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그런데 흡연자가 미성년자라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가 아닐까.
<금연학교>의 주인공 감성돈(감성돔이 아니다)은 올해 열여섯 살 먹은 방년의 청춘이다. 준영이라는 좋은 친구를 둔 덕분에 녀석은 흡연의 세계에 입문하게 됐다. 무언가 자신에게 금지된 일을 할 때, 멋져 보이는 허상에 대한 신기루라고 해야 할까. 우리의 주인공 성돈이는 그 나이 또래의 청소년들처럼 담배 맛도 모르면서 담배 피는 스타일과 폼에 현혹되어 주식투자하다가 그 좋은 직장도 그만 두고, 집까지 날려 먹어 월세방에 살며 택시운전과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잇게 된 아빠의 담배를 몰래 훔쳐 피운다. 이 시대 무능력한 가정의 표상처럼 보이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손찌검도 마다하지 않는 폭력적인 독재자의 모습으로 군림한다. 그 또한 오래 가지 못하겠지만.
뭐 이 정도까지는 순탄한 진행이다. 문제는 성돈이가 어느 비오는 날, 암만동 놀이터에 쓰러져 있던 아저씨의 품에서 담배를 슬쩍하는 장면에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살인사건에 연루된 것이다. 이거 놀라운데, 도대체 타이틀인 금연학교 이슈와 느닷없는 살인사건을 어떻게 반죽하겠다는 거지?
박현숙 작가는 흔히 청소년소설에 등장하는 빤한 교훈을 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사실 그거야말로 꼰대들의 전매특허가 아닌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척하다가 뒤통수치는. 대신 작가는 요즘 십대 아이들이 느끼는 욕망의 저변을 가감 없이 훑는 방식으로 접근을 시도한다. 욕이 빠지면 문장구성이 되지 않는 듯 육두문자를 남발하는 그네들의 언어생활로부터 시작해서, 이미 구름과자(담배)맛을 알아 버린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우리 어른들도 문제가 풀리지 않거나, 속 답답할 때 그리고 스트레스가 쌓일 때 맛있는 담배를 찾지 않는가. 물론 습관적으로 필 때도 많지만. 바로 그 지점에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어른이나 아이나 고민의 차이와 정도가 있을 뿐, 다를 게 없노라고.
잘 나가던 성돈이의 아버지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원래부터 담배를 즐기는 골초였지만, 남부러운 대기업에 다니다 일확천금의 유혹에 빠져 직업을 잃고 가산마저 탕진한 뒤에 택시 및 대리운전으로 생업을 유지하지만 모양 빠진다고 절대 택시 유니폼을 입지 않는다고 했던가. 자신의 주변 돌아가는 꼴을 보면 절로 담배 생각이 날 것 같다. 물론 원인제공자는 본인이어서 더 답답하겠지만. 성돈이의 담임선생님도 마찬가지다. 그라도 어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성돈이와 준영이 같이 매일 같이 문제를 하나씩 펑펑 터뜨리는 아이들을 상대하다 보면 가장 쉬운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는 게 바로 담배가 아닐까. 성돈이와 준영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암만동 놀이터 사건에 본의 아니게(?) 연루된 주인공 성돈이와 서라 그리고 애연가 담임선생님까지 싸잡아서 금연학교로 전학 보낸다. 그 와중에 성돈이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준영이(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연초 경력이 자그마치 5년이나 된다)가 급성폐렴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현실을 보고, 아버지마저 컬럭컬럭하는 해소 기침을 달고 사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슬슬 자신의 폐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이 설정 정말 쎄다. 하긴 이 정도로 상황을 몰고 가지 않으면, 당장 미래가 보이지 않는 친구들에게 씨가 먹힐 리도 없겠지만. 그 와중에 잠재워둔 미래에 대한 꿈을 슬쩍 비치는 건 역시 청소년소설다운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친구 준영이와 눈물겨운 우정을 쌓아 가고 주인공 성돈이가 어떻게 해서 담배를 피우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그리는 분량에 비해 후반부 설정이 좀 아쉬웠다. 제목이 금연학교라면 무언가 금연학교에서 벌어지는 다량의 에피소드를 기대했는데 신나게 막 롤러코스터를 즐기려고 하는 차에 그만 ‘하차’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왜 금연을 해야 하느냐는 소설적 당위성을 위한 다양하면서도 재밌는 여러 장치에 비해 뒷심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도 21세기 한국 청소년들이 느끼는 생각을 조금 엿볼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모두가 행복한 해피엔딩이니 더 즐겁지 아니한가. 그래도 백해무익한 담배는 피지 말자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