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이의 생애 - 베르톨르 브레히트 카툰 클래식 10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기획집단 MOIM 글, 정성호 그림 / 서해문집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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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느 신문에선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갈릴레이의 생애>를 가지고 독서모임을 했다는 칼럼니스트의 글을 읽고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사실 이것도 확실하지 않다, 하도 많은 글과 정보들을 접하다 보니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마침 서해문집에서 나온 카툰클래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도서관에 가서 냉큼 빌려다 읽었다. 내가 읽은 브레히트의 희곡은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이 유일했는데(오래 돼서 무슨 내용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제 두 번째 책으로 이탈리아 출신 위대한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삶을 다룬 책을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

 

카툰클래식의 제목은 <갈릴레오의 생애>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그가 46세가 되던 해부터의 일대기를 브레히트가 희곡으로 만들었다. 카툰을 보면 두 사람의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는 부분이 많아 역시 희곡으로 무대에 올려 상연하는 것으로 전제로 글을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갈릴레오는 베네치아에서 천체에 대한 연구로 이름을 날렸는데, 베네치아 공화국에서는 학문연구의 자유가 있었지만 학문연구를 위한 경제적 지원에는 공화국의 실질적인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가난한 연구자가 연구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 상황이 곤궁했던 모양이다.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브레히트는 그 점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네덜란드에서 이미 발명되어 판매되고 있던 망원경 아이디어를 가로채 연구자금을 공화국으로부터 뜯어내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다.

 

어쨌든 베네치아에서 계속해서 연구활동을 할 수 없었던 갈릴레오는 피렌체로 이주해서 든든한 궁정후원을 받으며 연구에 전념한다. 문제는 갈릴레오가 살던 17세기가 여전히 교황청이 주도하는 종교의 강력한 영향과 규제 아래 있었다는 점이다. 15세기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을 주장한 이래, 기존의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가 주장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천동설에 반하는 모든 주장은 이단이자 신민들을 현혹하는 사악한 학설로 공격받았다. 이성으로 무장한 수많은 학자들의 가설을 통한 규명이 이루어졌지만, 가톨릭 도그마를 중시하는 신학자들은 그런 주장들을 일절 무시했다. 뛰어난 천문학자였던 망원경을 천체관측에 이용해서, 지구가 하늘에 붙박혀 있지 않고 태양을 중심으로 해서 자전한다는 사실을 규명하기에 이른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지만, 당시에는 성경에 기록된 진리에 어긋나고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위험한 주장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종교 지도자들은 설사 이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으리라. 과학(이성)이 권력에 도전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자신과 친분이 있었던 바르베리니 추기경이 교황이 되어 자신의 연구가 인정받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연구가 금지된 태양의 흑점연구를 지속하지만 결국 로마로 소환되어 종교 재판관에 서게 됐다. 같은 베네치아 출신으로 천문학자이자 회개할 줄 모르는 고집 센 이단자로 규정되어 화형당한 지오다노 브루노의 길을 따라 과학의 순교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학자로서의 굴욕을 견디고 살아남아 연구를 계속하고 기록을 남기느냐 하는 갈래길에서 빈손보다는 더럽혀진 손을 택했다. 어쩌면 갈릴레오는 이성을 대변하는 자신의 제자 안드레아의 말처럼 세속의 권력과 타협하는 대신, 진리의 순교자의 길을 택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의 선택은 달랐다. 그 결과 외동딸 비르기니아의 약혼자 루도비코가 파혼을 선언했고 자신 역시 재판 결과 종신 가택연금과 저술활동에 대한 엄격한 제약을 받게 됐다.

 

브레히트가 쓴 이 희곡의 하일라이트는 갈릴레오의 제가 안드레아가 연금 중인 갈릴레오를 찾아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과학이 새로운 시대를 인도하리라고 생각한 청년 안드레아에게 생존을 위해 지동설을 철회한 스승의 변명이 어쩌면 구차하게 들렸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피렌체에 퍼진 죽음의 흑사병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시에 남아 연구를 하는 기개도, 이미 알려진 망원경에 대한 정보를 입수해 자신의 발명인 것처럼 꾸며 천체연구에 몰입하는 교활함도 가장 고통스러운 사형 방법이라는 화형과 종교 재판의 고문 앞에는 유한한 인간의 초라한 모습일 뿐이었다. 재판이 끝난 뒤, 그가 남몰래 했다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공식기록이 아닌 도시전설 같은 이야기라고 하는데 궁극적으로 종교적 도그마에 대한 과학정신의 승리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갈릴레오를 로마 교황청에서 신원하는데 걸린 시간이 자그마치 350년이라고 하니 놀랍다.

 

마르크스주의자답게 희곡의 작가인 브레히트는 과학의 발전에 따른 이성과 사유의 진보를 억압하는 주체로 당대 기득권을 대표하는 사제와 종교지도자들을 배치한다. 기존질서를 해치는 어떠한 사실도, 그것이 설사 규명된 진리라 할지라도 그들은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도 동시대인들에게 통용되는 이탈리아말이 아니라 학문 용어인 라틴어를 지껄여 대는 지식인들의 허위와 위선을 갈릴레오는 통렬하게 공격하기도 한다. 과학적 지식이 과학자 개인의 사리사욕이 아닌 모든 인류의 복리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갈릴레오의 대사는 정말 대단하다. 브레히트는 세계대전 종식을 위해 가동된 맨해튼 프로젝트라 불린 핵무기 과학기술 프로그램이 결국 인류를 파멸로 인도할 수도 있다는 인문학적 통찰에 도달했을 지도 모르겠다. 카툰을 읽을 적에는 많은 생각들이 머리에 떠올랐었는데 정리가 잘 되지 않은 모양이다. 원전 희곡을 읽어야 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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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4-27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곡을 어린이 위인전으로 편집한 듯한 느낌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