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뜸 했었지.

 

책 읽기도 귀찮고 뭐 그렇다. 지난 주말 독서모임이었는데 못 나갔다. 가고 싶었는데 사실 책도 다 읽지 못하고 모임 시간이 늦어져서 나갈 자신이 없었다. 앤 타일러의 <파란 실타래> 거진 다 읽었는데 후반 추진력이 부족했다.

 

지난주엔가 알라딘 적립금으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세트 그리고 샤워루 궈의 <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를 샀다. 전자는 아직 풀어 보지도 않고 사무실에 방치되어 있다. 사실 이 책을 산 건 약간의 허세였다고 해야 할까. 그동안 모은 적립금으로 산 책이라 뿌듯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소장용으로 그만이겠는 걸 뭐 그런 생각을 해봤다. 장식용이라면 로베르토 볼라뇨의 <2666>도 만만치 않은데. 그리고 보니 볼라뇨의 대작도 5개 중에서 2권까지 읽고 접어둔 상태다. 이거 리뷰 쓰려면 다시 잡아야 하나. 메타픽션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볼라뇨에 도전했다가 보기 좋게 날아 떨어진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야만스러운 탐정들>도 읽다가 어느 순간 접어 버렸다. 제발트의 책들도 그렇고 어째 하나 같이 이렇게 중도탈락하는 책들이 많은가. 이번에 다시 <아우스터리츠>에 도전했건만 역시나 지지부진하다. 존 반빌의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도 지난 늦은 여름휴가 때 98쪽까지 읽었는데 뭐 내용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맥스였던가 아마 주인공이. 죽은 아내를 뒤로 하고 예전에 여름을 지내던 휴양지에서 옛 시절을 추억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던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위키피디아의 플롯 서머리를 좀 읽어 보고 다시 도전해봐야겠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어제 샤오루 궈의 <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을 슬쩍 펼쳐 봤다. 그전에 읽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심연> 그리고 어제 산 로저 크롤리의 바다나라 베네치아 공화국 이야기를 읽기 전에 워밍업 정도였는데, 읽다 보니 절반 가량이나 훌쩍 읽어 버렸다. 일단 재밌고,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이미 절판의 운명에 처해진 책이라 시중에서는 구할 수도 없다. 나도 중고로 샀다. 책 컨디션이 아주 좋진 않지만 뭐 읽기에는 부족함이 없으니까.

 

우리의 주인공 미스 좌우앙은 사회주의 공화국인 중국 출신으로 농민계층에서 쁘띠 부르주아 계급으로 신분상승을 이룬 부모의 도움으로 영어를 배우기 위해 1년짜리 비자를 받아 영국 런던으로 향한다. 물설고 낯선 런던에서 영어 배우기는 쉽지 않다. 나도 언젠가 비슷한 체험을 해서일까, 사방에서 악전고투하는 좌우앙의 이야기에 순간 몰입해 버렸다. 아마 나의 몰입독서체험기는 보통 이런 수순을 따르리라. 바이섹슈얼 영국 남자를 극장에서 만나 사랑에 빠져 버린 미스 좌우앙. 전혀 다른 세계에서 자란 이들의 화학적 결합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서로의 몸을 탐닉하면서도 여전히 공간을 두려는 남자와 예의 공간을 없애고 온전한 사랑을 구가하려는 여자의 이야기는 조금씩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영국의 문예지 <그랜타>가 선정한 주목받는 영국 신예 작가 중의 하나로 꼽았다고 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 이상이다. 같이 선정된 작가 중에 <우리의 낯선 시간들에 대한 진실>의 작가 애덤 풀스의 책도 지난 주에 도서관에서 빌려 오긴 했는데 아직 첫 장도 넘기지 못했다. 역시 같은 목록에 오른 제니 페이건의 <파놉티콘>도 지난 주에 램프의 요정 중고 도서 목록에 두 권이나 올라와 있어서 사려고 했는데 배송료 때문에 고민하다가 두 권 다 날아가 버렸다. 언젠가 나와 인연이 된다면 중고매장에서 만나게 되겠지. 지금 당장 읽지 못해 큰일날 책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보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심연>도 예의 파국으로 치닫는 미국 중상층 부부의 결혼이야기다. 매력적인 바람둥이 멜린다를 아내로 둔 남자 빅터 반 알렌의 삶은 참으로 고달프다. 웨슬리라는 부촌에 사는 이들의 사교생활을 위해 끊임없이 초대되는 파티에 불려 나가야 하는 것도 고역인데, 그 파티장에서 아내의 새로운 애인들과 만나야 하는 빅터의 심정은 오죽할까. 아내의 전 애인 중에 우연히 살해된 남자를 자신이 죽였노라고 고백해서 현재의 애인을 떼어 놓는데 성공한 빅터. 물론 그의 고백은 사실이 아니다. 이런 위태로운 결혼상태를 어떤 일련의 사건(?)으로 몰아가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실력이 대단하다. 도대체 어떤 결말이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이 책부터 읽어야 하는데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

 

제니 페이건의 책처럼 아르테에서 나온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의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도 도서관에서 빌리긴 했는데 아직 못 읽었다. 밥상머리 도서관에서 언제든 빌릴 수 있는 책이니 일단 반납하고 읽고 있는 책들이 정리되는 대로 다시 읽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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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03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반빌의 <바다>를 구하고 싶은데, 절판본이라서 중고가가 비싸네요. ^^;;

레삭매냐 2016-03-03 17:48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
너무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에 매겨둔 것
같아요.

전 그래서 강남 램프의 요정까지 가서 구
했습니다. 컨디션은 썩 좋지 않지만 말이죠.
없는 것 보다는 낫다 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cyrus 2016-03-03 17:50   좋아요 0 | URL
역시 서울 알라딘 매장이 좋군요. 저에게 대구점 한 곳도 부족합니다. ㅎㅎㅎ

레삭매냐 2016-03-03 17:56   좋아요 0 | URL
제가 주로 애용하는 램프 매장은
제가 사는 산본점, 분당점 그리고 수원점이죠.

가끔 신림점에도 가고, 독서모임이 있을 때면
신촌까지 원정가곤 하지요. 아 그리고 보니
부천점도 갔었네요. 그나마 이쪽은 초이스가
좀 있네요.

cyrus 2016-03-03 17:59   좋아요 0 | URL
제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종로점에도 희귀템이 종종 나오기도 합니다. 저는 종로점에서 파울로 코엘료의 《다섯번째 산》와 앤토니어 수잔 바이어트의 《바벨탑》 세 권짜리를 구입했습니다. 정말 그때 기분이 최고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