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감
하니프 쿠레이시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2009년 <한겨레21>에 실린 이주 2세대 문학을 권한다는 글을 보고서, 하니프 쿠레이시란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됐다.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전혀 모르는 작가였다. 그런데 쿠레이시가 작가로 데뷔하기 전에 이미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제목만 들었지 아직 본 적이 없는 영화다)의 각본을 쓰기도 한 글쟁이였다고 한다. 그전에 주목할 만한 커리어로는 1970년대 안토니아 프렌치와 카림이라는 이름으로 포르노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단다. 어쩌면 그의 작품 곳곳에 배어 있는 색정광의 이야기가 그냥 나온 것만은 아닌 것도 같다. 그외에도 18세 때부터 햄스테드 극장과 소호 폴리 등에서 연극 대본을 집필하기도 했다고 한다.

 

1990년 지금 한창 재밌게 읽고 있는 <시골뜨기 부처>로 비로소 작가로 데뷔했는데 그후에도 꾸준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에는 한참 전인 2007년 5월, 6월 그리고 8월에 집중적으로 쿠레이시가 쓴 세 개의 작품이 출간되고 모두 절판이 되었다. 지난 주에 그의 절판된 책 세 권을 모두 구해서 읽기 시작했다. 가장 품질이 좋고, 얇아 보이는 책이 바로 <친밀감>이었다. 너무 재밌어서 바로 데뷔작인 <시골뜨기 부처>도 열독 중이다.

 

원제가 정사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Intimacy>/친밀감은 아내 수전과 두 명의 아이를 떠나려고 준비 중에 있는 남자 제이가 겪는 단 하룻밤의 체험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제이와 수전은 결혼이라는 공식적인 절차를 밟지 않은 부부지만, 아무리 더 이상 아내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파괴해 버리려는 주인공에게 도덕적 비난을 퍼붓고 싶은 마음이 뭉근하게 피어올랐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 글을 발표하던 시기가 때마침 하니프 쿠레이시가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친밀감>은 그런 작가의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아내와 자식들을 내버리고 가정에서 탈출해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있는 친구 빅터에게 잠시 동안 얹혀살 궁리를 하면서 짐을 싸는 중년 남자의 모습이 그렇게 처량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한다고 굳게 믿는 애인 니나에 대한 성적 판타지를 꿈꾸는 동안만 행복한 남자 제이. 떠남이야말로 새로운 내일을 약속하는 새로운 변화의 약속이라는 미사여구로 아무리 치장을 한다 하더라도, 홀로 남아 자신의 아이들의 뒤치다꺼리를 담당하고 육아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수전에 대한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예단하는 제이의 모습에 저절로 냉소가 지어졌다.

 

한 때 자신을 매혹시켰던 수전의 장점이 어느 순간, 삶에서 견딜 수 없는 무게로 다가왔다는 제이의 고백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기도 했다. 이별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방법으로 백가지 이유들을 등장시킨다. 소설을 읽는 내내, 정말 제이는 수전을 떠날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왜냐하면, 소설에서 이 파렴치한 고백을 계속하는 제이는 순간마다 수전이 이랬다면 난 떠나지 않고 주저앉았을 것이라는 설정을 너무 자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보면 순수한 에피쿠로스 신도인 제이가 과연 아내와 자식을 내팽개쳤다는 속세의 도덕적 비난마저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의 강한 멘탈의 소유자인지도 궁금했다. 어쩌면 하니프 쿠레이시는 소설에서 그런 묘한 긴장감을 의도적으로 유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고백하는 대로 순수한 욕망을 추구했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기에는 너무 복잡하면서도 다면적인 주인공이 가진 사고의 전개와 상황의 설정이 독자의 발목을 잡는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주인공 제이는 독자에게 묻는다. 더 이상 삶을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현대사회에 유일하게 존재하고 있는 가족이라는 신성한 신화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희생해야 하느냐고. 언젠가 대학동기에게 비슷한 질문을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가히 충격이었다. 오랜 시간, 종교와 사회에서 배운 도덕이 그런 불경한 설정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생래적으로 거부했다고나 할까. 마지막으로 오랜 고뇌 끝에 자신의 욕망을 실천에 옮긴 제이가 계획한 대로 행복하게 되었는지 그것이 알고 싶어졌다.

 

[뱀다리] <친밀감> 주인공 제이는 하니프 쿠레이시의 데뷔작 <시골뜨기 부처>의 주인공 카림 아미르의 나이든 모습이 아닐까 하는 그런 엉뚱한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아, 그리고 이 소설은 이미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다고 하는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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