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인, 재욱, 재훈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5
정세랑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새해 처음으로 읽은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읽기로 결정한 순전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나의 절친 이름과 같은 이름이 떡하니 표지에 박혀 있어서라고 한다면 너무 단순한 걸까.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나오고 있는 노벨라 시리즈, 우연한 기회에 초능력을 갖게 된 삼남매의 이야기가 쏠쏠하다.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삼남매는 서해안의 모처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 여행길에서 먹은 형광색 나는 바지락칼국수 때문에 초능력을 얻게 된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 초능력을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다. 어려서 슈퍼맨 같은 슈퍼히어로 영화를 보면서 저런 초능력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는 그런 초능력이 허황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한 번도 초능력 타령을 한 적이 없다. 지금도 아마 그런 나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재인, 재욱, 재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초능력은 딱히 대단한 것도 아니다. 표지에 보면 손톱깎이 하나, 열쇠 한 개 그리고 레이저 포인터 이렇게 그들의 초능력을 상징하는 요상해 보이는 물건들이 나열되어 있다. 사실 레이저 포인터의 경우에는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화학과 출신으로 대전의 연구실에서 생활하는 큰누나 재인은 깎이지 않는 강력한 손톱을 자랑한다. 애걔, 이게 무슨 초능력이야 싶지만 자신의 특기인 사물에 대한 관찰과 연구를 바탕으로 같이 사는 친구 경아를 스토커 남친으로부터 구하게 된다.

 

재인의 초능력에 비하면 재욱의 그것은 좀 더 특별하다. 시야가 붉어지면서 문제가 생기는 지점을 파악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재인과 재욱에 비해 좀 더 다른 모양새의 막내 동생 재훈은 가장 먼저 자신의 초능력을 감지해 내지만 그 능력 역시 소박하기 짝이 없다. 엘리베이터와의 교감이라니. 세 남매에게 각기 다른 세 가지 물건들이 소포로 배달되면서 그들은 각각 save 1, save 2 그리고 save 3 라는 미션을 부여 받는다. 그 미션이 무엇인지는 소설을 읽어 보시라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니.

 

정세랑 작가의 노벨라 <재인, 재욱, 재훈>은 최근 유행하는 경장편 소설이다. 사실 도끼 선생의 <죄와 벌> 같은 대작 장편소설을 끈기 있게 읽어낼 참을성도 생각보다 부족하니 경장편이 대세인 요즘 세태를 나무라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사람들은 갈수록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는데, 독서 말고도 관심을 사로잡는 온갖 것들에 포위되어 있는 마당에 대작소설을 읽기에는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끈기도 너무 부족하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 새해 첫 독서로 <재인, 재욱, 재훈>은 나에게 안성맞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미녀선발대회에 참가한 미녀들에게 희망이 무어냐고 물을 때마다 월드 피스(world peace)"라는 대답이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것처럼 슈퍼내추럴 파워를 가진 슈퍼히어로들 역시 세계를 구하는 것이 자신의 미션이라는 말도 새삼스럽지 않을 것 같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슈퍼내추럴 파워를 가진 재인, 재욱 그리고 재훈 역시 거창하게 세상을 구하는데 동원됐다면 비현실적이었을 것이다.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자기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구하게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작가는 독자의 이성과 감성을 예리하게 타격한다. 그들이 구한 것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고 말이다. 물론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짚으면서 설명해 보라고 한다면 또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내 생각은 그렇단 말이다.

 

세 사람이 처한 상황 중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케이스가 바로 막내동생 재훈의 조지아 염소농장 이야기였는데, 작가의 친동생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엮은 이야기라고 하니 좀 얼떨떨하기도 했다. 작가의 말대로 정말 타인의 이야기를 참고만 잘하면 직접 사막에 가보지 않고서도 사막에서 벌어지는 일을 눈앞에서 본 것처럼 서술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이 부분은 정말 참고할 만하다. 물론 체화의 문제는 또 다른 것이겠지만 말이다.

 

<재인, 재욱, 재훈>은 은행나무의 노벨라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인데, 시리즈의 전작과 앞으로 나올 작품들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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