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르칸트의 황금궁전 - 코르토 말테제
휴고 프라트 지음, 홍은주 옮김 / 북하우스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우연한 기회에 이 책과 만나게 됐다. 오래 전에 한 번 들어본 적도 있는 것 같은데 코르토 말테제 시리즈라고. 유럽 작가가 그린 만화인데, 역시나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래도 인기가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판형 또한 커서 어지간한 책장에 수납되지도 않을 것 같다. 22 X 29 cm 정도 되나. 인터넷으로 코르토 말테제를 검색해 보니 대뜸 캐릭터의 이름을 딴 의류 브랜드가 맞이한다. 어쨌든 스타일이 멋지긴 하군.

 

인터넷 웹사이트를 검색해 코르토 말테제의 정보를 알아봤다. 1887년 몰타의 발레타 출생으로, 아버지는 영국 콘월 출신의 뱃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세비야 출신의 집시였다. 말테제의 부모는 글로벌 시대의 연인답게 지브롤터에서 만났고, 어린 말테제 역시 지브롤터에서 자랐다. 발레타에 있는 유대인 학교에 다녔으며, 의화단 사건(1900)이 발생했을 때는 중국에 거주했다고 한다. 1904년 비로소 선원이 되어 전 세계를 누비기 시작한 말테제는 고향 발레타를 떠나,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 구경도 하고 이스마일리아, 아덴, 무스카트, 카라치, 봄베이, 콜롬보, 마드라스, 랭군, 싱가폴, 퀄룽(홍콩), 상하리를 거쳐 텐진에까지 도달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그의 약력이 존재하지만 너무 방대하여 이 정도로 정리하자.

 

이런저런 시대적 유추를 통해(극중에 나오는 앙베르 베이의 사망연도를 근거로 삼아) 1920년대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휴고 프라트 공식사이트에서는 1921-22년이라고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리스 로도스섬에서 바이런 경의 육필 원고를 찾는 가벼운 몸풀기로 시작한 우리의 주인공 코르토 말테제는 중앙아시아 모처에 숨겨져 있다는 알렉산더 대왕의 황금보물을 찾는 여정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뭐 언제나 소년만화 스타일이 그렇듯, 멋진 여인들과의 로맨스가 줄기차게 등장하며 숱한 위기 또한 특유의 임기응변으로 넘기는 코르토 말테제 특유의 기지가 돋보인다고나 할까.

 

 

 

코르토 말테제의 절친으로 모처에 감금되어 있는 러시아 상남자 라스푸틴도 계속해서 등장하게 되는데, 역시 성인만화답게 총격전이 많이 보이고 가차 없이 배신을 거듭하고, 배신자에 대한 응징으로 죽음이 등장하는 장면이 좀 낯설긴 하다. 당시 복잡하기 짝이 없는 중동지역의 정세를 판단할 수가 없다. 1차 세계대전에 독일편에 섰다가 처절하게 연합군에게 응징당하고 국토의 상당 부분을 유실한 터키 내에 앙베르 베이라는 영웅이 중국에서부터 러시아를 거쳐 터키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에 통일된 투르크 국가를 세우겠다고 나선 돈키호테식 발상부터가 어째 영 시덥지 않다.

 

게다가 티무르 슈브케라는 자와 똑같은 외모 때문에 연달아 위기에 빠지곤 하는 주인공에 관련된 이야기 전개가 조금은 구닥다리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코르토 말테제가 사마르칸트에 있다는 황금궁전을 찾는지 못 찾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저 정말 운이 없어 보이는 이 캐릭터에게 어떤 환난이 찾아올지, 그리고 이번에는 또 어떤 식으로 위기를 넘기게 될지가 관건일 따름이다. 아니나 다를까, 국경지대의 볼셰비키들의 포로가 되어서도 위대한 수령 스탈린 동지와의 연줄을 타고 유유히 빠져 나가는 모습이란. 역사의 빈틈을 파고드는 작가 휴고 프라트의 기술이 남다르게 보이지 시작한다.

 

지난 세기 첫 번째 학살로 기록된 아르메니아 학살사건에도 코르토 말테제는 깊숙하게 관계된다. 물론,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이슬람 세력인 터키인들이 기독교 아르메니아인들을 학살한 사건에 대해 이번에는 아르메니아 민족주의자들이 볼셰비키 적군 편에 서서 터키인들에 대항하는 장면도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이런 역사적 대결 국면에서 상당히 이기적으로 보이는 주인공 코르토 말테제는 자신의 유일한 관심인 황금궁전 찾기에 여념이 없을 따름이다. 그러니 나중에 그가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다.

 

만화라고 해서 쉽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어디까지나 나의 판단착오였던 것 같다. 유럽 작가들의 그림체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자라면서 보고 자란 영향 때문이지 싶다. 데생 수준의 그림체를 바탕으로 선과 모양을 이용해서 튀어나오는 다양한 그림들이 신기할 따름이다. 휴고 프라트는 개인의 모험기에 역사적 사건들을 슬쩍슬쩍 배치하는 기법으로 코르토 말테제 시리즈의 흥미를 배가시키는 전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살라딘 시대부터 활동한 산노인이 지휘하는 신출귀몰한 아사신 집단에 대한 기술도 흥미진진하다. 사실 만화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지만, 서구인의 고질병 중의 하나인 오리엔탈리즘의 다른 한 면을 엿볼 수 있었다. 지금 읽고 있는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에서 불편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정말 어쩔 도리가 없는 모양이군.

 

우리나라에 코르토 말테제 시리즈는 북하우스를 통해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 모두 5편이 소개가 되었는데 <베네치아의 전설> 말고는 모두 절판 혹은 품절의 운명에 처해졌다. 순서가 어떻게 되는 진 모르겠지만, 구할 수 있는 버전의 코르토 말테제를 하나씩 찾아 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절판본이니 더 흥미가 당기겠지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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