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박종대 옮김 / 시공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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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출신의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귀향>을 읽었다. 법을 전공한 작가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인간사에서 빠질 수 없는 법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중요한 소재로 삼고 있다. 주인공 페터 데바우어의 아버지를 찾는 문학적 <오디세이아>가 악에 대한 인간의 본성과 어우러져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귀향의 전범이라는 <오디세이아> 이야기, 선과 악에 대한 심각한 논쟁 그리고 아버지 부재의 극복이라는 진지한 주제들로 쉽지 않은 독서였다.

 

아버지가 전쟁 중에 죽었다고 믿는 페터 데바우어의 유년 시절의 이야기가 정겹다. 독일에서 홀어머니 밑에서 살지만, 방학이 되면 스위스에 사는 조부모님의 집에 가곤 하던 시절의 이야기. 특히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갖가지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자못 흥미진진하다. 역시, 아버지라는 존재의 부재가 드리우는 유년시절의 그림자랄까? 그런 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현업에서 은퇴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여가에 공을 들여 <기쁨과 재미를 주는 소설>이라는 총서를 편집한다. 그리고 화자이자 주인공인 페터 데바우어는 성장해서, 어려서 자신에게 금지되었던 총서의 이면의 글을 읽게 된다. 신화 속의 이야기가 그렇듯, 모든 금기는 깨지게 되어 있고 주인공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비밀에 도전하기 마련이지 않은가.

 

그가 접하게 된 금단의 소설은 카를이라는 독일군 포로가 러시아에서 귀향하지만, 집에 돌아온 그를 기다리는 아내는 낯선 남자와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의 결말에 집착하게 된 주인공은, 이 이야기가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 연원을 쫓기 시작한다. 그는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쫓으면서, 동시에 자신도 오디세우스의 그 위험천만한 여정을 따르게 된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카를이 그의 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법을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한 페터는 출판사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모든 것을 아는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의 그림자를 쫓지만, 완고한 어머니는 항상 모호한 대답으로 얼버무린다. 그는 카를 이야기의 원형을 이루는 방랑, 모험, 위기의 극복, 좌절 그리고 귀향이라는 패턴이 <오디세이아>의 그것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후 독일에서 붐을 일으킬 정도로 유행했던 수많은 귀향 이야기 중에서, 카를의 이야기야말로 진수일 거라고 예감한다.

 

페터는 소설에 등장하는 실제 주소를 찾아갔다가 바바라라는 이름의 낯선 여인과 만나게 되고, 필연적(?)으로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페터는 바바라 남편의 ‘귀향’이라는 당혹스러운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여인으로부터 ‘버림’ 받았다고 생각한 페터는 회의주의에 빠져 자신을 분주함 속으로 내몬다. 그리고 다시 잠시 중단했던 카를을 찾기 위한 <오디세이아> 프로젝트의 수레바퀴를 돌리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바라의 친언니인 마가레트를 통해 카를의 모델이라고 믿어지는 폴커 폰란덴이라는 미지의 인물을 존재를 알게 된다. 모든 비밀의 열쇠를 쥔 자신의 어머니를 닦달해 보지만, 그녀는 완강하게 거부한다. 페터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에 비례해서, 그의 어머니는 과거를 밝히고 싶지 않은 욕망을 드러낸다. 마치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욕망의 평행선을 달리는 기관차 같다고나 할까.

 

통일 독일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날아간 페터는 우연한 기회에 대학에서 강의를 맡게 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바바라를 만난다.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페터는 그녀에게 청혼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예전의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결혼을 서두르는 페터. 관청에서 결혼신청을 하다가 자신의 본명이 데바우어가 아니라 그라프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지지부진하던 페터의 아버지 찾기 <오디세이아>는 다시 한 번 급물살을 탄다. 게다가 우연히 입수하게 된 <법의 오디세이>라는 책의 저자 존 드 바우어라는 이름과 그의 저술을 통해 알게 된 모든 지표가 존 드 바우어가 자신의 아버지라고 가르킨다. 자, 과연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귀향>은 확실히 쉽지 않은 소설이다. 작가 슐링크는 페터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 눈물의 부자상봉 혹은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게 분노의 일격을 가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천편일률적인 구성 대신 훨씬 더 복잡한 시놉시스를 구사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귀소본능의 지향점인 ‘귀향’이라는 간단한 주제를 가지고, 귀향의 고전 <오디세이아>와 악이 선을 위해 사용될 수도 있다는 지극히 파시즘적인 소재를 양념으로 곁들인다. 마지막 장에 나오는 존 드 바우어 교수의 세미나를 가장한 인간본능 테스트는 구세대에 대한 슐링크식 조롱이라고나 할까. 동시에 뛰어넘을 수 없는 기성세대 권위에 대한 좌절도 동시에 표출된다.

 

페터의 <오디세우스> 과정에서 작가는 곳곳에서 ‘카를’을 쫓는 실마리들을 차례로 배치한다. 조금 개연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그 정도야 애교로 봐주자. 그렇게 준비된 절묘한 조력들을 따라가다 보면 대서양 너머에서 새로운 정체성으로 가정을 꾸리고, 성공한 법학자의 삶을 사는 존 드 바우어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과 대면하게 된다. 어느 순간, 그가 정말 페터의 아버지냐 그렇지 않느냐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전쟁 세대와 통일 세대라는 뚜렷한 구분에서 더 나아가, 과거에 빚을 졌다고 생각하지 않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야말로 작가가 말하고 싶은 21세기 독일의 현재가 아닐까.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귀향>을 읽고 났더니, 호메로스의 원전 <오디세이아>와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읽어 보고 싶어졌다. ‘귀향’이라는 주제는 그야말로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인류의 영원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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