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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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읽었다. 아주 오래 전이었다. 그런데 왜 내가 레이먼드 카버의 책을 읽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오래 전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표제작인 <대성당>이 맹인 이야기였다는 점 정도 밖에는.

 

이번에 팟캐스트에서 누군가 낭독한 버전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영어 원서를 비교해 가면서 듣고, 읽었다. 처음에는 원서 없이 두 번을 들었다. 아무래도 직접 책 읽는 것과 타인이 읽는 것을 듣는 것은 천양지차였다. 오래 전에는 낭독이 독서의 대세였다고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책은 혼자 읽는 묵독으로 바뀌었다고 했던가. 묵독만 하다 보니, 낭독으로 서사를 쫓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대신 귀에 착착 감기는 어느 특정한 에피소드들은 머릿속에 각인되는 느낌이었다.

 

소설 <대성당>에는 모두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어느 부부에게 아내의 오랜 친구 맹인(the blind man)의 이름은 로버트다. 소설의 화자 나는 로버트 대신, 맹인이라는 호칭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아내 친구의 방문이 못마땅하다. 자기 스스로 맹인에 대한 편견을 영화를 통해 얻게 되었노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맹인 로버트의 방문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편견들과 직접 마주하는 체험을 겪는다.

 

화자의 아내는 이미 다른 사람(공군 장교)과 한 번의 결혼 경력이 있다. 아내는 십년 전, 시애틀에서 로버트에게 고용되어 일하게 된 후 지속적으로 “테이프”를 통한 연락을 가져 오고 있다. 테이프라, 상당히 고전적인 방법이고 맹인에게 보다 확실한 음성을 통한 전달이라는 방식에서 소통에 제격이다. 공군 장교의 아내로 어쩔 수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아내는 다량의 수면제와 진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것조차 실패하고 어찌어찌하여 지금의 나와 잘 살고 있다.

 

이어지는 대화와 서사를 통해 아내와 맹인 로버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사항을 알게 되었지만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알게 된 것이 별로 없다. 그저 지금 3년째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별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술이나 마약 혹은 마리화나를 즐기며 늦게까지 안잔다는 것 정도 밖에는. 이렇게 아주 평범한 사람의 일상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인 맹인 로버트가 나타나, 나는 생뚱맞게도 그에게 ‘대성당’을 설명해 주려다 아예 로버트의 제안으로 그림까지 그려 주게 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그게 마치 목숨이 걸린 중요한 일인 것처럼 말이다.

 

뉴욕에 갈 때는 기차의 오른편에서, 되돌아 올 때는 기차의 왼편에 앉아야 한다는 것 따위가 무슨 중요한 일일까 싶다. 식전주로 스카치를 마시고, 식탁에서의 어색한 분위기 때문에 마치 식탁을 뜯어 먹기라도 할 기세로 큐브 스테이크와 스캘럽 포테이토 그리고 녹색 콩 등을 무섭게 먹어 치운 세 사람의 균열은 먼저 아내에게 수마(睡魔)가 다가오면서 찾아온다. 균열은 위기인 동시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대화에서 자신의 소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화에 끼어 보려고 노력하지만 그조차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다. 대화 도중에 텔레비전을 켜다니. 하지만 또 역설적으로 그렇게 텔레비전에 등장한 대성당(cathedral)이 아내가 자리에서 빠진 가운데, 나와 맹인 로버트를 이어주는 묘한 매개체로 작동한다.

 

꽁한 스타일의 “나”와는 달리 담배도 씩씩하게 잘 피고 스스로를 스카치파(派)라고 부르며, 화자를 젊은 양반(bub)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맹인 로버트는 암웨이 판매업에도 종사했고, 아마추어 무선사로 활동하면서 세상의 누구와도 친구 먹을 수 있는 그런 캐릭터로 등장한다. 초대 받은 집의 낯선 호스트에게서 마리화나를 권유받고서도, 모든 걸 배울 수 있다는 그런 자세로 임하는 로버트야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장애물을 뛰어넘은 그런 사나이가 아닐까. 주변에서, 특히 영화에서, 보고 들은 (왜곡된) 정보를 가지고 상대방을 재단하는 속좁은 편견을 가진 나야말로 대부분의 소시민의 자아를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보이지도 않는 로버트 앞에서 졸음에 겨워하는 아내의 탐스런 허벅지를 가리려는 나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캐치해낸 레이먼드 카버의 찰나의 미학 또한 일품이다.

 

시기 혹은 질투라는 감정에 휩싸인 화자가 맹인 로버트와 함께 직접 대성당을 그리며 화해해 가는 과정은 <대성당>의 하이라이트다. 소통을 거부하는 화자에 비해, 열린 마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구하며 대성당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고, 더 나아가 아예 한 번 그려봐 달라는 진심 어린 부탁으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맹인의 자세는 고의적으로 자신을 무시하는 젊은 양반보다 우월한 인격체의 발현으로 다가온다.

 

김연수 작가의 번역과 팟캐스트 방송의 낭독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후자의 경우, 감정이 실리지 않은 조금은 메마른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물론 서사와 컨텐츠에 집중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좋았지만 감정이입 차원에서는 아쉬웠다. 작가인 김연수 씨가 직접 번역을 맡았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무래도 본인 작가이다 보니, 원작자의 충실하기 보다는 매끄러운 번역에 치중한 느낌이다. 가령 예를 들어 본문 중에 나오는 “strange”를 ‘이상하다’라고 번역하기보다 ‘신비하다’는 표현을 사용한 예를 보자. 그냥 딱 보기에도 이상하다와 신비하다는 너무 거리가 멀지 않나? 성당 곳곳에 장식하는 괴물 석상인 가고일(gargoyle)이 이무기란다. 맹인 로버트가 화자를 호칭할 때 사용하는 “bub”를 젊은 양반이라는 표현도 상당히 우리 식 아닌가. 그냥 젊은 친구라고 했다면 너무 건방져 보여서 굳이 ‘양반’을 고른 걸까.

 

예전에 읽을 적에는 <대성당>의 서사에 방점을 찍었다면, 이번에 오디오와 원서로 대조하면서 접했을 땐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와 소통, 내면의 심리 등에 중점을 두면서 읽었다. 역시 좋은 글은 사골 국물 우리듯 몇 번이고 읽어도 그 맛이 줄어들지 않는다. 문득 존 치버의 단편과 레이먼드 카버의 다른 단편들을 이번 기회에 만나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참맛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삶의 진실과 마주하는 순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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