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의 습관
김희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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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럴 때가 있는가? 어느 책과 만나게 될 때, 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리고 그 책을 쓴 작가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없이 무턱대고 책을 읽게 되는 것 말이다. 어제 그리고 오늘에 걸쳐 바지런히 읽은 김희진 작가의 <양파의 습관>이 그랬다.

 

작가분이 들으시면 기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양파의 습관>은 어쩔 수 없이 <길버트 그레이프>를 연상시킨다. 고래 같이 살이 쪄서 외출이라곤 도통 하지 않은 엄마, 하지만 정신박약아인 둘째 아들 어니를 위해서라면 못하는 일이 없었던 슈퍼맘 말이다. 오래 전에 본 영화 그리고 뒤이어 읽은 책은 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겨줬었지 아마. <양파의 습관>의 주인공 보조 요리사 서장호의 엄마 강수자 아니 강수지 씨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데자뷰였다.

 

이 책은 뭐랄까,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같은 이름의 친구로 패션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이십대 초반에 이탈리아로 떠나며 맡아 달라고 부탁한 원숭이 마짱과 지내는 서장호는 고등학교 때, 자신의 꿈이 요리사라는 걸 깨닫고 아빠와의 전쟁을 통해 자신의 꿈에 도전했다. 어쩜 이 소설은 꿈에 대한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글을 적다 보니 문득 들었다. 대대로 법조인 집안의 마장호는 집안의 너도 법조인이 되라는 족쇄에서 벗어나고파 이탈리아로 날아가 사랑도 만나고 자신의 꿈을 일궈나간다. 멋지다!!! 서장호는 말할 것도 없고, 드라마 장보리를 떠올리게 하는 이웃집 연극배우 지망생 김보리 양도 역시 말도 못하게 수줍음을 타면서도 연극배우의 꿈을 놓지 않는다. 어디 그 뿐인가? 주황주택단지의 무수한 캐릭터 중의 하나인 공부를 무척 잘하지만 그 놈의 수학 때문에 만날 전교1등을 놓친다는 추가을 양 역시 영화배우의 꿈을 야무지게 꾸고 있다.

 

이렇게 <양파의 습관>은 꿈에 대한 소설인 동시에 한 편으로는 상실에 대한 소설이다. 소설을 이끌어 가는 나 서장호를 제외하고, 하나둘씩 이러저러한 이유로 해서 장호의 곁을 떠난다. 뭐지 이 소설은? 후반으로 갈수록 상실에 대처하는 갖가지 방식을 은근하게 들려준다. 역시 장호는 요리사답게 자신의 전공인 요리에 집중하면서 이별과 상실을 극복해 나간다. 우리에게 이별이란 어떤 의미이며, 그 이별을 대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들이 희붐하게 그려진다.

 

범상치 않게 지붕 위에 냉장고를 얹은 김보리 양이 55호로 이사 오면서, 교통사고로 깁스한 장호가 무언가 이루어지지 않나 하는 기대감을 부풀린다. 서사의 공식대로 작가는 충실하게 더디지만 의미 있는 만남, 관계의 발전 등등을 전개한다. 베냇손톱부터 시작해서 스물일곱 해 동안 손톱을 모아왔다는 김보리 양에게, 장호는 자기 역시 특이한 수집품이 있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바로 가름끈이다. 특이한 인연답게, 이 정도는 되야겠지. 우표 수집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이렇게 지붕 너머로 시작된 인연은 서먹한 관계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단계에까지 발전한다. 굳이 어떤 의미가 되지 않더라도, 그 존재만으로도 충만하게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원래 발레리나였다가 고래엄마가 되어 버린 하지만 언제까지나 자신의 전폭적인 지지자였던 강수지 씨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부터 시작해서,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친형, 그런 고래엄마를 비틀즈보다 더 사랑한 광팬 아빠 같은 가족사 이야기는 평범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소재로 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그 순간, 과연 장호와 7살 연상의 보리의 관계가 어떻게 될까 싶기도 하지만 김희진 작가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별과 상실의 패턴을 대입한다. ‘세상살이가 다 그런거지 뭐’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느낌이다.

 

그냥 문득 작가가 이 소설에 제목을 <양파의 습관>이라고 지었는지 궁금해졌다. 소설에 양파가 등장했던가? 이웃집 김보리 양이 까면 깔수록 알 수 없는 양파 같은 매력의 소유자일지도 모른다는 나의 섣부른 상상은 단박에 부정당했다. 아, 양파는 깔수록 맵지, 뭐 그것도 어느 정도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자신의 힘으로 마련한 지붕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별빛을 즐기며, 사물을 관찰하는 장호 삶의 습관처럼 내 삶의 습관인 독서는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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