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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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시원을 읽는 건 뜻깊은 일일 것이다. 내한에 즈음해서 요 네스뵈 작가의 데뷔작 <박쥐>를 읽기 시작했다. 400쪽이 넘어가는 두툼한 분량만큼이나 북구 출신 신예 작가의 글(이제는 오버그라운드 작가의 글이 되었지만) 예상대로 읽기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달리기 시작하면서 읽는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사실 요 네스뵈 작가의 책은 비교적 근간이 <스노우맨>으로 처음 만났는데, 시발점은 자신의 구역인 노르웨이가 아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출발하다니. 그 기백이 보통이 아니다.

 

<박쥐>는 노르웨이 출신의 준 셀레브리티 잉게르 홀테르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오슬로 경찰서에서 주인공 해리 홀레(오지 사람들은 모두 ‘홀리’라고 부른다)를 파견해서 사건을 맡긴다. 나도 오스트레일리아를 여행하면서 참 많은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 대부분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점이 참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노르웨이 경찰이 오지 경찰들과 협력해서 사건과 영어로 진행되는 각종 회의에 통역 없이 참석하고 다양한 부류의 용의자들을 취조하는 장면에선 정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이번에 방한한 요 네스뵈 작가를 직접 만나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어쨌든 우리의 주인공 해리 홀리 형사는 오지 경찰에서 파트너로 정해준 앤드류 켄싱턴 형사와 짝을 이뤄 살해당한 자국민의 죽음을 밝히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 광활한 대륙에서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가 아닌가. 그리고 어느 순간 독자는 소설 <박쥐>가 범인을 쫓는 하나의 과정과 애버리진(오지 원주민) 출신으로 ‘도둑맞은 세대’를 대표하는 앤드류 켄싱턴의 과거와 정체성, 그리고 왈라-무라-버버로 이루어진 애버리진 전설이 서로 엉킨 그야말로 복잡하기 짝이 없는 실타래 속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 소설 중반에서 헤맨 나의 개인적 경험 탓이지 싶다.

 

짧은 호흡으로 탁탁 치고 나가는 맛은 좋지만, 쉽게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하는 단점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구성이 조금은 아쉽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모름지기 독자도 작가와 함께 성장하기 마련이다. 본궤도에 오르지 않은 미완성의 트랙에서 뛰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해리 홀리 형사는 사건 해결을 위해 시드니에서 잉게르 홀테르와 관련된 주변 인물 탐색에 나서면서 아주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연달아 만난다. 우선 그가 도움을 받고 있는 오지 경찰들은 용의자 선상에서 제외하자. 첫 작품에서부터 경찰을 범인으로 고르는 작가는 없을 테니 패스. 배우이자 복장도착자 오토 레흐트나겔, 잉게르가 일하던 바의 동료인 스웨덴 출신의 비르기타 엔퀴스트, 앤드류의 소개로 알게된 아마추어 권투선수 로빈 투움바(요즘 유행하는 오지 식당의 파스타 이름과 똑같다), 킹스크로스의 여인 샌드러, 시드니의 최고 악질 포주 테디 몬가비, 잉게르의 집주인이자 노출증환자인 로버트슨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전 남친으로 이민자 출신의 드럭킹 에반스 화이트. 뭐 이 정도면 용의자 리스트는 차고 넘칠 정도다.

 

자꾸만 요 네스뵈 작가가 노르웨이가 아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해리 홀레 시리즈를 시작했는지 궁금해진다. 작가는 이제 막 썸타기 시작한 같은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매력녀 비르기타와 대화하는 방식을 통해 독자에게 들려준다. 습관처럼 맥주를 들이키는 오지 사람들은 상대하면서 유난히 바 장면이 많이 등장하지만, 해리 홀레는 알코올 섭취를 기피하고 애꿎은 콜라만 거푸 들이킨다. 두 가지 추정을 해본다. 처음부터 마실 수 없거나, 이제 더 마시면 안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마시길 거부하는. 그렇다, 해리 홀레는 알코올중독자다. 이거 공무원인 형사에게 너무 치명적인 거 아닌가. 단서는 그의 꿈에 자주 등장하는 로니 스티안센이라는 이름이다.

 

책의 표지에 술병 속에 들어 있는 죽음, 애버리진에겐 죽음을 상징하는 박쥐가 들어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이 두 가지가 각각 상징하는 것을 깨달았다. 병이 상징하는 알코올중독에 빠진 채, 차라리 동료 대신 자신이 죽었어야 한다는 자책이 파도처럼 해리 홀레를 엄습한다. 술을 마시고 운전해서 범인을 추격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동료 스티안센은 죽었고 그가 몰던 차에 친 소년은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이제 슬슬 오슬로에서 잘 나가던 형사가 본국도 아닌 멀리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내쫓긴 이유가 설명된다. 앞으로 긴 시리즈의 주인공이 될 해리 홀레인데 이 정도 트라우마는 갖추는 게 독자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뭐 부족한 부분들은 시리즈를 이어가면서 채워 넣으면 될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니 책 읽기가 한결 여유롭다.

 

초짜 작가답지 않게, 능란하게 범인일 거라고 생각한 인물을 쫓다가 브레이크를 걸고 급반전 시키는 실력이 탁월하다. 아직 분량이 많이 남았는데 이렇게 쉽게 범인이 잡히진 않겠지하는 예상이 그대로 들어맞는다. 용의 선상에 오른 범인 리스트가 하나둘씩 지워지고, 설상가상으로 해리 홀레 형사의 주변 인물들이 하나둘씩 죽음을 맞으면서 범인추적은 그야말로 미궁 속에 빠져든다. 도대체 누가 범인이지? 결정적인 단서 대신 아주 희미한 힌트를 발판으로 해리 홀레의 추격은 피날레를 맞이한다.

 

엽기적인 싸이코패스가 등장했던 <스노우맨>의 오싹한 공포에 비하면, <박쥐>는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난 휴가처럼 느껴질 정도다. 지금까지 모두 10편이 출간된 해리 홀레 시리즈 중에서 이제 겨우 2편을 읽었을 뿐이다. 본국 노르웨이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전 세계를 무대로 삼아 종횡무진 활약을 전개하는 해리 홀레는 확실히 한 때 전도유망한 축구선수로 필드를 누비던 요 네스뵈 작가의 분신일 수밖에 없다. 그가 구사할 또 다른 스릴러 드리블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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