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
정용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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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책 모임을 앞두고 정용준 작가의 <바벨>을 읽었다. 유사 이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했던가. 고래로 신화의 재창조는 작가들의 단골 메뉴가 아니었나 싶다. 문제는 새로울 것 없는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다시 맛깔나게 창조하는가라는 간단해 보이면서도 결코 녹록치 않은 과제를 다루냐는 것이다. 진부하지만 일종의 독이 든 성배라고나 할까. 익숙한 소재이기 때문에 독자의 이목을 비교적 쉽게 끌 수는 있지만, 무언가 특별한 한 방을 보여주지 않으면 나락으로 추락해 버릴 수 있다.

 

내가 처음 만난 정용준 작가의 글은 <얼음의 나라 아이라>라는 프롤로그로 시작된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얼음 나라의 아이라 여왕을 만나 편지를 가지고 오지만, 전언이 녹자 괴상한 소리만이 남았다고 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래서 리뷰는 책을 읽는 대로 써야 하건만. 어쨌든, 말이 화근이 된 시대를 소설은 배경으로 한다. 닥터 노아라는 미치광이 박사에 의해 “펠릿”이라는 사람들이 말을 할 때마다 생성되는 유기물은 사람들로부터 ‘말’을 빼앗아 버렸다. 말을 하면서 만들어진 푸른 가스는 발목 주변에 칙칙하고 냄새 나는 덩어리가 되어 달라붙는다. 각종 설화로 이러저러한 스캔들에 시달린 연예인들의 얼굴이 얼핏 떠오른다. 기록의 시대에 시간이 지나도 그런 설화는 당사자의 발목을 잡는다. 소설 <바벨>에서 펠릿은 공평하게 모든 인류에게 적용된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도, 그 반대에 서 있는 가난뱅이도 모두 펠릿을 달고 살아야 할 운명이다.

 

그렇게 한 십년을 살게 되자 사람들은 말하기를 포기하고 팜패드라는 것을 발명해서 필기로 의사소통을 대신하게 된다. 아마 아날로그 감성을 가진 사람은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글을 쓰겠지. 이 모든 게 그 닥터 노아 때문이 아닌가. 물론 이런 와중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있을 테고, 말을 하지 못해 쌓인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를 향해 분출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느 신문사에 근무하는 요나가 소설 <바벨>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다.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연구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단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펠릿이 바이러스 같은 형태로 전 인류에게 전염되어 아무도 펠릿 없이 말을 할 수 없다는 전개와 설정은 일품이다. 다만 니느웨로 가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거부하고, 반대 방향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거대한 고기 뱃속에 갇혀 죽을 뻔한 불손한 선지자 요나의 지향점이 어떠하리라는 것 정도는 상식일 게다.

 

어린 시절 유달리 말을 더듬었던 닥터 노아의 끈질긴 말에 대한 연구가 전 인류에 이런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을 불러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시작을 맡은 이가 끝까지 책임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설의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모든 서사의 초점은 과연 유일한 희망인 닥터 노아가 펠릿을 처리할 수 있는 해법을 개발할 수 있는가에 맞춰진다. 구약 성서에서 여호와가 타락한 인류를 심판하기 위해 물의 심판에 앞서 노아가 방주를 만들어 인류를 구원했듯이, 닥터 노아 역시 그런 비슷한 임무를 맡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다. 성서에 나오는 서사와 주요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작가의 의도가 자못 궁금해졌다.

 

펠릿이 지배하는 세상에 순응해서 살자는 방식을 고집하는 마리 그룹과 그에 반대해서 몸으로 저항을 마다하지 않는 전투적인 아벳 그룹 사이에서 주인공 요나는 방황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요나의 타자화된 시선을 통한 객관성의 담보는 그렇기 때문에 더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여기까지 밖에 올 수 없었나 하는 그윽한 아쉬움에 절로 입맛이 다셔졌다. 신에게 도전하겠다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오리지널 바벨탑 스토리의 거창함 대신 그저 살기 위해 커터로 펠릿을 잘라내는 연약한 존재에 대한 묘사가 잔상처럼 그렇게 드리워져 있다.

 

독서 모임 시간에 나온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문득 소설 <바벨>은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서사와 영화의 그것은 또 다르겠지만, 말이 족쇄가 되는 세상에 아주 적합한 영화 소재가 아닐까 하는 그런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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