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민음사 모던 클래식 4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분더킨트 조너선 사프란 포어와는 <모든 것이 밝혀졌다>로 처음 만났다. 그의 데뷔작이었다. 우리나라에는 9-11 사건과 드레스덴 대폭격의 트라우마 속에서 사는 두 명을 주인공으로 한, 두 번째 작품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하 <엄청>으로 표기)이 먼저 소개됐다. 두 소설 모두 영화화되었고, 자신의 뿌리를 찾아 우크라이나로 떠난 어느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 <모든 것이 밝혀졌다>는 소설과 영화 봤다. <엄청>은 아직 영화로 만나 보지 못했다.

 

소설의 주인공 오스카 셸은 9 살배기 꼬마다. 그는 아버지 토머스를 9-11 사건(2001)으로 잃었다. 책의 나오는 빌딩에서 떨어지는 어느 사람의 이미지는 그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간 소년의 트라우마를 직접적으로 대변한다. 곤충과 우주 그리고 발명하기를 좋아하는 오스카는 아버지의 유품 중에 꽃병에 담긴 열쇠를 발견한다. 오스카가 사는 뉴욕에만 16천만개가 넘는 자물쇠가 있을 거라고 추정하고, 또 다른 단서인 블랙이란 사람의 이름을 바탕으로 자물쇠 수색전을 시작한다. 아무리 미국의 뉴욕이라지만, 일개 꼬마가 전화번호부에 나오는 낯선 사람을 찾아간다는 게 가능할까라는 현실적인 질문이 뒤따른다.

 

오스카가 <엄청> 소설을 이끌어가는 메인 캐릭터라고 한다면, 또다른 서사의 한 축은 오스카의 할아버지 토머스다. 독일 드레스덴 출신의 토머스는 유서 깊은 독일의 도시 드레스덴을 쑥대밭으로 만든 대폭격(19452)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잃는다. 자신의 가족, 사랑하는 연인 애나 그리고 애나가 임신한 아이까지. 히로시마 원폭보다 더 파괴력이 강했다는 드레스덴 대폭격에 대한 작가의 기술은 현현된 지옥도를 떠올리게 한다. 홍학을 잡아먹는 사자, 피부가 녹아내린 피해자들, 아수라장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장면들은 9-11 사건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빌딩이 무너져 내리기 전, 뜨거운 불길 속에서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같이 뛰어내렸다고 했던가. 분더킨트 작가는 무엇 때문에 그런 가공할 만한 폭력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고찰보다는 단순한 전개를 서술한다. 모든 것의 시발인 정치적 요소는 배제하고, 그저 현상만을 독자에게 들려주는 작가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생전에 자상했던 오스카의 아버지 토머스가 가업을 물려받아 보석상인으로 일하면서, 뉴욕타임즈나 타임의 오자 찾기 놀이(진정한 교열자)를 책에 구현한 빨간 똥글뱅이를 보면서 처음에 나는 도서관에서 먼저 이 책을 빌린 독자의 만행이라고 생각하고 규탄해 마지않았다. 하지만, 책에 곳곳에 등장하는 타이포그래피와 더불어 작가가 고안한 하나의 장치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그만 무안해지기도 했다. 이 작가, 만만하게 볼 위인이 아닌걸.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명으로 커트 보네거트를 꼽는다. 미국 출신의 반골 작가는 전쟁 중에 드레스덴 폭격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다. 할아버지 토머스와는 달리, 그는 이 참상을 목격하고 적극적으로 문학(<5도살장>)을 통해 반전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할아버지 토머스는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말하기를 그만 둔다. 말을 할 수가 없게 된 그는 빈공책을 들고 다니면서 필담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불편한 일인가. 그 뿐인가, 삶이 죽음보다 무시무시하다고 생각하고 새로 꾸린 가정에서 임신한 아내를 두고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한 세대를 건너 뛴 할아버지 토머스는 아들 토머스가 죽은 다음에 다시 뉴욕에 나타나 손자 오스카와 조우한다. 아들에게 부치지 못한 수많은 편지와 함께. 소설 초반에 할아버지 토머스와 오스카의 이야기 그리고 오스카 할머니이 이야기가 교차 편집되면서 조금 헷갈린 것도 사실이다. 동시에 나는 왜 오스카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작가가 복잡하게 만드는지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떤 단서라도 되듯, 자물쇠와 열쇠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열쇠 구멍 사진을 보며 난감했다. 무언가 비밀이 담겨 있을 것 같은 자물쇠를 여는 순간의 희열을 기대하도록 풋내기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잔뜩 분위기를 조장한다. 그 다음은 말하지 않으련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통해 작가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보다, 주변의 것들이 더 신경쓰이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아이들도 모두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지만, 10년에 이미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던 미국 소년 오스카의 물질 조건에 더 관심이 갔다. 잘 나가는 변호사 엄마를 둔 덕분에 프랑스어를 배우고, 비용에 대한 걱정 없이 택시를 타고 자물쇠 수색에 나서고, 낯선 꼬마가 찾아와도 놀라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나중에 오스카는 엄마가 모든 걸 셋업해 두었다고 추정한다)이 신기하기만 했다. 영국출신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에게 끊임없이 편지 쓰고 마침내 답장을 받아내고야 마는 장면에서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 또한 불가능한 일에 대한 또다른 형태의 희망고문이 아닐까.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소년이 고인의 발자취를 찾는 여정이라는 점에서 충분한 감정몰입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너무 무리하게 어린 소년에게 이십대 청년의 생각과 조변석개하는 감정을 우겨 넣은 건 아닌지 궁금하다. 지나치게 조숙한 아이의 사고와 태도는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요즘 아이들이 다 그렇지 뭐라고 한다면 또 할 말이 없겠지만. 그래도 그저 아버지를 상실한 아이의 시선만으로 치부하기엔 부담스럽다. 그래서인지 허핑턴 포스트의 아니스 쉬바니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를 줌파 라히리, 주노 디아스 등과 함께 당당하게 15명의 가장 과대평가된 현대 미국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9-11 사건에 얄팍하게 편승한 독창성(originality)이 결여된 작품이라고 혹평했다.

 

미국에도 문학권력이 존재한다면 프린스턴 출신에 미국 문학계를 주름 잡는 조이스 캐롤 오츠의 애제자인 분더킨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모든 것이 밝혀졌다>,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그리고 <엄청>을 읽었지만 여전히 특별한 감흥 대신 기교감만 느껴지는 건 나만의 착각이려나. 남편이 그렇다면 그 부인인 니콜 크라우스의 작품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참고로 <엄청>은 그의 엄청나게아름다운 여신인 부인에게 헌정된 작품이다.

 

[뱀다리] 그런데 뭐가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깝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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