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뮤직 러버스 온리 민음사 모던 클래식 18
야마다 에이미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지난주 독서 모임에서 야마다 에미이(山田詠美)<솔뮤직 러버스 온리>가 다음 독서 토론 책이 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야마다 에이미라는 작가의 존재조차 몰랐다. 의식처럼 자주 들르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야마다 에이미의 책을 검색했다. 물론 이 책이 있다면 더 좋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책이라도 살 요량으로. 아쉽게도 <솔뮤직 러버스 온리>는 없었고, 다른 두 권의 책을 샀다. 그럼에도 <솔뮤직 러버스 온리>부터 읽기 시작했다. 시간이 부족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뇌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요설(요사스러운 수작)이라는 말과 빼어난 은유 그리고 탁월한 묘사를 그 누구보다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일본 출신 작가가 과연 이 모든 이야기를 마냥 상상으로만 만들어냈을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자신의 사적 체험이 개입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점이다. 하지만 곧 그게 무슨 대수랴, 책만 재밌으면 됐지 하는 마음으로 책에 몰입했다.

 

모두 8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솔뮤직 러버스 온리>에는 타이틀 제목의 단편은 없다. 제목부터 왠지 어느 특정 대상(솔뮤직을 사랑하는 흑인들)을 지칭하는 은유가 한껏 배어 있는 그런 느낌이다. 야마다 에이미에게 공간과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이야기 속에 갑자기 등장해서 독자를 적잖이 당혹스럽게 만드는 캐릭터가 서사의 중심에 서 있다. 여느 단편에서 그렇듯, 그들에게 삶의 진실은 너무 다가오고 그 진실의 순간이 지나간 후에야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런데 그 놓쳐 버린 삶의 진실을 대면하는 과정과 순간이 요설적이면서도 동시에 매혹적이다. 단순하게 야하다는 느낌에서 한 층위 더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책의 곳곳에서 빛나는 순간에 대한 흩뿌리는 듯한 묘사는 상상을 초월한다.

 

야마다 에이미의 발칙한 상상력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터부를 넘나든다. 아니 그런 게 언제 존재했냐는 듯이. 젊고 경험은 없지만 사랑에 주린 흑인 청년들은 일반적 도덕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칠게 진격한다. 플로리다의 노을지는 바에서 화자를 만난 바람둥이 윌리 로이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겠다는 핑계를 대고 뉴욕까지 찾아와 남자 뮤즈를 자처한다. 어느새 그의 포로가 된 주인공은 자신의 본업을 그림을 그리다 말고 무시로 그에게 안기고 싶어한다. 결국 애인에게 꼬리가 밟히지만 사랑해서 같이 잤다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라고 되묻는 로이 윌리의 당당함에 애인이 뒷걸음친다. 그 시절은 로비 네빌의 <C'est La Vie>가 한창 히트치던 시절이란다.

 

중년여인과 메이크러브를 통해 십대소년에서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 그린 단편도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 소문난 미세스 존스의 그 남자가 된 주인공 윌리, 자기라면 미스터 존스처럼 일년씩 와이프를 혼자 두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사랑하는 애인에게 어렵게 번 돈과 용돈으로 각종 디저트를 제공하며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미세스 존스는 그에게 몸은 과자, 마음은 빵이라는 알듯말듯한 말로 절교를 선언한다. 뜨거운 차를 마시며 평소보다 맛있다는 말로 관계의 소멸을 암시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미세스 존스는 과자를 너무 많이 먹어본 어른이었노라고 고백한다.

 

아버지 YOBO의 새엄마를 사랑한 남자 브루스에 대한 이야기 <Mama Used To Say>는 또 어떤가. 이 제목을 보며 엉뚱하게도 80년대를 주름 잡았던 흑인 랩스타 L.L. Cool J가 떠오른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바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창부들 사이에서 자란 브루스는 그야말로 Ladies man이 아니었던가. 절친이자 포주 TJ와는 달리 풋볼 장학금을 받고 동부의 대학으로 떠났다가 4년 만에 귀향한 브루스의 옛 이야기가 스물스물 피어오른다. 요조숙녀처럼 능숙하게 아버지를 도와 YOBO의 안주인이 된 새엄마 도로시는 이미 세상물정 모르는 것이 없는 브루스에게 금지된 유혹이다. 세상의 모든 터부가 깨지게 되어 있듯, 그들 역시 선을 넘는다. 타인의 행복이 자신의 것과 등치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브루스는 자신 같은 여자를 조심하라는 새엄마의 경고를 들으며 동부로 떠난다.

 

클럽 DJ로 동경하던 여자를 얻게 되었지만 질투심을 이기지 못해 결국 그녀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풋내기 사랑의 주인공, 소위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몰라 외부와 차단한 것이 신화가 되어 버린 소년, 사랑하는 친구를 잃고 어쩔 수 없이 친구의 애인을 사랑하게 되어 버린 배신의 아이콘 등 야마다 에이미의 단편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독자의 불온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개체로 작동한다. 그녀가 말하고 싶은 혹은 보여주고 싶은 삶의 진실이 무엇일까? 우리가 모르는 어떤 세계에서는 이런 삶도 있다는 계도일까? 그녀가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는 내게 그로테스크하게 다가온다. 동시에 인간사 희로애락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이십대 중후반의 작가가 그린 흑인 청년들은 하나 같이 경험이 부족하고, 사랑에 고픈 인생들이다. 반면, 그들의 짝으로 등장하는 여성들은 노련하고 삶의 다양성을 체험한 산전수전 공중전의 명수들이다. 그들은 파트너와의 일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풋내기 사랑을 체험하던 파트너들은 절체절명의 사랑이라는 명제 앞에 선 베르테르처럼 고뇌하고 지속 불가능한 사랑의 부재에 슬퍼한다. 어쩌면 그들에게 필요한 건 과자가 아니라 빵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8개의 단편을 다 읽고 후기를 읽으면서 비로소 나는 야마다 에이미의 흑인에게 바치는 이 소설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도 그런 진 모르겠지만, 한창 시절 잘 놀던 작가의 남자 밝힘증<솔뮤직 러버스 온리> 창작의 원동력이었다는 비밀을 알게 됐다. 그녀는 음악을 몸으로 사랑할 줄 알지만, 일본어를 모를 그녀의 남자들을 거리낌 없이 희롱하며 이 작품을 헌정한다.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만 쓴다는 그녀의 선배격에 해당하는 아니 에르노만큼은 아니겠지만, 스스로 고백하듯이 수많은 남자에 중독된 아니 그들을 사랑할 줄 알았던 영미 씨의 고백을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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