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변화한다 - 모옌 자전에세이
모옌 지음, 문현선 옮김 / 생각연구소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아주 오래전 어느 미술관에서 20세기 현대미술의 아이콘이 된 피카소의 젊은 시절 작품전시회를 관람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그의 현대미술도 그렇지만, 그가 젊은 시절 그린 습작 같은 그림을 보면서 저게 뭐야, 저건 나라도 그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훗날 일가를 이루게 되면 그런 시절도 다 평가를 받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이야기할 모옌의 경우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작년 모옌이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그냥 그런 중국 작가 중의 한 명이었다. 하지만, 스웨덴 한림원에서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발표하는 순간 그는 그냥 그런 중국 작가가 아닌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가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나도 그의 작품은 그냥 짧은 단편을 하나 만났을 뿐, 본격적으로 그의 작품을 읽기 시작한 건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이후였다. 그리고 이 작가에 대한 생각(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편견)은 이전과 영원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환상적 리얼리즘의 대가라는 모옌의 첫 번째 회상록이라는 거창한 타이틀답지 않게 <모두 변화한다>에는 모옌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마치 작가의 위상 변화를 예언하듯 제목 한 번 멋지다. 그렇지 모든 건 변하기 마련이지. 중국혁명의 상징이었던 마오 주석이 죽고, 세상은 다시 한 번 바뀐다. 작가 모옌은 자신의 회상에서 이전의 문화혁명이 가져온 혼란상 대신 신중국 건설의 이데올로기를 이식하기 위한 적절한 타이밍으로 1979년을 꼽았지만, 어쩔 수 없이 1969년 문화혁명이 한창이던 시절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노라고 고백한다.

 

그 시절 아이들은 한국전쟁에 참가한 고물 트럭 국방색 가즈51의 속도감을 숭배했다. 그리고 회상록의 화자 는 대학을 포기하는 대신 군인이 되기 위해 인민해방군에 입대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귀인의 도움을 받았다고 읊조린다. 어느 국가든 개발 단계에서 군이야말로 최고 엘리트 양성소가 아니었던가. 훗날 대문인이 되는 작가 지망생 역시 군에서 그의 화려한 경력을 출발한다.

 

군복무 기간 동안, 베트남과의 전쟁도 체험한 천재 영웅은 장교로 진급하고 드디어 해방군 예술대학에도 진학하게 되면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연달아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인 <홍까오량 가족>을 발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소설의 성공은 경제적 여유와 드디어 노벨상수상이라는 영예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는 그의 소회를 전한다.

 

그 사이사이에 끼어든 허즈우와 루원리, 그러니까 작가의 어린 시절 친구들의 일화에 개혁개방 그리고 이제는 G2의 대국이 된 중국현대사를 적절하게 섞은 작가의 비망록으로 다가온다. 책의 띠지에 실린 대로 이 책이 모옌의 회상록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잘 쓰인 한 편의 소설이라는 점에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과연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자신의 회상일까 그 부분부터 명확하지 않다. 그러기에는 여백이 너무나 많다. 그냥 작가 모옌에 대한 짧은 소개서 정도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회상록이라고 하기에는 빈 공간이 너무 많고, 그렇다고 소설이라고 부르기엔 서사의 힘이 달린다.

 

모옌의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문학이 다루어야 할 핵심 과제에서 작가는 회피신공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는 사회주의도 아닌 그렇다고 자본주의도 아닌 이상한 시스템으로 변질되고 있는 중국식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대신 자신이 보고 싶은 그리고 국가가 보여 주고 싶은 사회의 단면에 천착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정말 첨예한 빈부의 격차 문제, 중국의 화약고라 불릴 정도로 불만이 팽배해져 가고 있는 수억을 헤아리는 농민공들의 모습, 최근 세기의 재판으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보시라이 재판 같은 부정부패 이슈를 정면으로 돌파해 볼 요량은 작가에게 묻고 싶다. 이 정도로는 그가 누구인지, 그의 문학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판단하기에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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