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란 무엇인가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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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을 목 놓아 기다렸다. <위험한 독서>로 처음 알게 된 김경욱 작가는 개인적으로 처음 만나 오래 이야기를 나눈 몇 안되는 작가분이라 더 정감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위험한 독서>에 나오는 독서지도사로 분해 촬영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2년 전, 할로윈 데이에 나꼼수 콘서트에서 소설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를 읽었다. 얼마 전에는 또다른 소설집 <장국영이 죽었다고?>를 읽기 시작했다. 뉴스 미디어를 통해, 이번 여름 소설대전이 벌어질 거라는 전망과 함께 오매불망하던 김경욱 작가의 장편소설이 출간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의 이번 여름 비밀병기는 <문장 웹진>을 통해 20123월부터 12월까지 연재한 <야구란 무엇인가>였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빨리 읽고 싶다는 마음에 부리나케 읽었다.

 

소설과 인터넷 연재의 구성이 좀 다른데, 소설 단행본의 작가의 말에서 김경욱 작가는 <야구란 무엇인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야구에 관한 소설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시작한다. 남도의 모처에서 주인공 사내는 그토록 싫어하는 노래부르기에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분위기를 초토화시킨 후, 텔레비전으로 야구 경기를 본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 진구에게 어머니가 심상치 않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고향집으로 달려간다. 쇼펜하우어가 그랬던가, 모름지기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명확해야 한다고. 김경욱 작가는 20세기 위대한 철학가의 충고를 받아 들여 최대한 간결하면서도 확실하게 서사를 구축한다.

 

야구의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는 제목으로 시작한 이 소설의 중심에는 억울한 죽음의 연쇄반응이 자리 잡고 있다. 언제나 자신을 졸졸 따라 다니던 집안의 촉망 받던 아들이 30년 전, 빛고을에 투입된 무장군인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다. 그리고 그 가족들의 삶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특히 우리의 주인공 사내는 자신의 이름조차 당당하게 밝히지 못한 채 그렇게 준법의 테두리에서 살아왔다. 사내 어머니의 죽음은 어쩌면 그동안 사내가 미뤄왔던 보수설한(報讐雪恨)의 격발 장치였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문제 한 가지가 발생한다. 사내에게는 책임져야 하는 아들이 하나 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파란 토끼 아들.

 

소설은 이 지점을 지나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로드트립 형식을 띠기 시작한다. 공사판을 전전하느라 아들과 접점을 만들지 못한 부상(father figure) 상실의 시대에 사내는 파란 토끼 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논리적이지 못한 사내의 명령을 파란 토끼 진구는 당차게 거부하고, 아버지인 사내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죽은 동생의 복수를 위해 고속도로를 달리는 와중에 파란 토끼가 요청한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을 사기 위해 전주 시내를 누비는 장면에서는 나도 정말 복장이 터질 뻔 했다. 너무 궁금한 마음에 전지전능한 네이버 지도로 전주 시내의 KFC를 검색해 보니 모두 세 개가 있더라.

 

한편 야구는 사내와 사내의 아버지 그리고 사내와 파란 토끼의 실낱같은 관계를 연결해주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태생적으로 호랑이 팬으로 자라난 사내와 사내의 아버지 뿐만 아니라 사물에 대한 놀라운 관찰 능력을 보여주는 미래의 곤충학자 진구에게 야구는 유일무이하게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다.

 

소설 <야구란 무엇인가>는 어쩔 수 없이 지난 가을에 개봉한 영화 <26>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서 보여준 가상의 대체역사 보다 좀 더 현실적인 접근이라는 점이 더 마음에 들었다. 영화의 국가대표 사격선수나 소설의 사내의 방식이 너무 하지 않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초나라의 오자서가 남긴 유명한 말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다. “해는 지고 갈 길은 머니[日暮途遠]” 어쩌겠냐고.

 

유대인에게 여전히 홀로코스트가 현재진행형인 것처럼, 우리에게도 여전히 80년의 빛고을은 청산되지 않은 그 무엇이다. 사내가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주변을 정리하고 마침내 보수설한(報讐雪恨)에 나서지만, 기실은 파편화된 사내의 삶에서 망월동은 극복의 대상이다. 글을 읽으면서 내내 막막했다. 어쩌면 세상과 대화를 거부하고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이야기를 하는 파란 토끼를 대하는 사내의 심정도 이랬을까.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고,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무얼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서로 부딪히고, 깨지고 터지면서 그렇게 삶은 전개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김언수 작가의 <>에 나오는 뱀놀이주사위 게임은 공교롭게도 김경욱 작가의 <야구란 무엇인가>에서도 중요한 메타포로 작용하고 있다. 종착지인 100을 향해 달려 가지만, 후반부 곳곳에 포진한 뱀들은 사내를 어느 순간에라도 나락으로 떨어트릴 수 있다. 아무리 선행을 베풀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해도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뱀놀이주사위 게임은 말한다. 어디 인생에서 내 뜻대로 되는 게 몇이나 되던가. 복수의 대상인 염소를 찾아 가는 길에 주인공 사내가 느낀 거리와 시간의 등치만큼이나 일보전진은 쉽지 않다. 게다가 사내는 사냥꾼의 심정으로 염소를 쫓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이 사냥감이었다는 사실에 도달하지 않던가.

 

<야구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김경욱 작가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몇 개 생겼다. 명징한 전개에 비해 조금은 모호해 보이는 결말에 대한 의도와 도대체 오동나무 상자는 어디로 갈건지 등등 말이다. 요기의 말을 인용하자면 소설은 독자의 질문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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