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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페르노 1 ㅣ 로버트 랭던 시리즈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3년 7월
평점 :
댄 브라운이 돌아왔다. 오래전 <다빈치 코드>를 읽고 가히 충격에 빠졌었다. 중세 르네상스 시기의 걸작 <최후의 만찬>에 숨겨진 기호도상학적 코드를 바탕으로 비밀결사 조직인 시온 수도회 그리고 중세 말의 알비 십자군 전쟁에 이르는 정말 기상천외한 전개와 숨막히는 추격 등등 그야말로 재밌는 소설이 갖추어야 할 모든 요소를 갖춘 읽는 재미를 흠뻑 느낄 수 있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설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으로 나선 하버드대 출신의 패션 감각 넘치는 중년의 독신남이자 기호도상학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로버트 랭던 교수의 활약까지 더해지면서 댄 브라운 소설은 그야말로 탄력을 받았다.
댄 브라운은 신작 <인페르노>는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을 이루는 한 파트로 우리말로 하면 ‘지옥’편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는 성공한 자기 전작의 패턴을 <인페르노>에서도 그대로 반복한다. 어쩌면 진부할 정도로 말이다. 미스터리한 인물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인페르노>에서 영화 버전에서 주인공을 맡은 탐 행크스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 로버트 랭던 교수의 재기용은 물론이다. 여기에 영국 출신의 IQ208의 천재 시에나 브룩스를 사이드킥으로 장착했다. 바로 이 두 인물이 닥터 이블(Doctor Evil)의 인류 종말 프로젝트를 막는 메시야로 분한다.
아 한 가지 패턴이 빠졌다. 시온 수도회 같은 역할을 하는 집단으로 “컨소시엄”이 등장하는데, 소설의 초반 총상을 입고 기억상실에 빠진 랭던을 집요하게 추격하면서 소설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임무를 수행한다. 자, 다음 요소로는 공간적 배경인 피렌체다. 피렌체에 한 번이라도 가봤더라면 좀 더 구체적인 묘사를 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소설과 인터넷 블로그 정도로 만족하자. 중세 르네상스의 발원지이자 메디치 가의 후원으로 양성된 수많은 예술가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이자 동시에 소설의 미스터리를 증폭시키는 핵심인 단테의 고향으로 앞으로 영화화될 때 어떻게 그려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된 진용을 바탕으로 랭던 교수에게 벌어진 사건의 단서를 찾는 것으로 소설은 숨 가쁘게 달려간다. 마치 모든 시내가 강에서 만나 바다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실체는 산드로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를 거쳐, 베키오 궁전의 <마르시아노 전투> 그리고 단테의 데스마스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도상학적 전문 지식으로 독자를 휘몰아쳐 간다. 과연 작가 댄 브라운에게 그런 도상학적 분석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쪽 분야에 거의 문외한인 독자로서는 작가의 권위에 그대로 복종할 수밖에 없다. 기호와 도상이 보여주는 비유(parable)가 늘 그렇듯, 자의적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어째 입맛이 씁쓸해지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어찌어찌해서 랭던 교수와 그의 조수 시에나는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젊은 나이에 생물학 특허로 엄청난 돈을 번 생화학자 버트런드 조브리스트가 있다는 것에 도달한다. 안타깝게도 조브리스트는 바로 소설의 맨 처음에 죽는 것으로 나왔고, 그가 남긴 인류 종말 프로젝트의 가동을 둘만의 노력으로 막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임무가 기다린다.
<다빈치 코드>에서 이미 선보인바 있는 모종의 음모이론은 전작 <천사와 악마>, <다빈치 코드> 그리고 <로스트 심벌>에 의해 더 정교해진 느낌이다. 그것은 아마도 무명의 작가 시절 그가 접할 수 있었던 정보와 자료에 비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 시점에서 그가 모을 수 있는 그것의 양의 차이일 것 같다. 그런 자산을 바탕으로, 댄 브라운은 성공신화의 반복에 재도전한다. 그리고 확실히 스케일도 더 커졌다. 그동안 로버트 랭던이 소규모의 음모에 맞섰다면, 이번 <인페르노>에서는 인류라는 종의 구원을 위해 역설적으로 자신이 개발한 인류 멸망 방정식으로 인류를 파멸시켜야 한다는 정신 나간 닥터 이블을 막아야 한다. 문제는 이 닥터 이블이 그런 능력과 충분한 자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스케일은 더 커지고, 그에 맞서는 대응 또한 스펙터클해질 수밖에.
<인페르노>에 등장하는 여러 텍스트(도상 포함) 중에 에센스는 역시 단테의 <신곡>이다. 신곡 3부작 중에서 특히 지옥(인페르노)에 대한 선명한 묘사는 기존의 추상적 개념의 지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면서 교회로부터 멀어져 가던 대중의 발걸음을 되돌리는데 일조했다고 한다. 소설에 나오는 닥터 이블 조브리스트는 현세를 우리가 인지 못하는 “인페르노”로 간주하고, 자신이 창안한 “솎아내기”야말로 모든 문제의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 생각이 소설 <인페르노>를 추동하는 힘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산드로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의 상세를 보고 싶어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지만, 심지어 출판사에서 제공한 이미지조차 너무 작아서 책에서 묘사된 부분을 대조할 수가 없었다. 단테의 <신곡>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다 보니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롱펠로우가 번역한 영문 전문을 귀스타브 도레의 삽화와 함께 무상으로 서비스하는 것을 보고 왜 우리나라의 대학은 이런 서비스를 하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질문에 도달하게 됐다.
어쨌거나 댄 브라운의 신작 <인페르노>는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읽는 동안에는 만사 제쳐두고 읽을만하다. 문제는 그렇게 열심히 다 읽고 나서 인기작가의 자신만만한 성공신화 반복이 어째 불편하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물론 이 소설도 영화화가 될 것이고, 탐 행크스가 주연하는 로버트 랭던의 이미지도 되살아나겠지. 하지만 같은 작가가 계속해서 반복하는 클리셰이(cliche)가 더 이상 반갑지 않은 건 나만의 생각이려나.
[뱀다리]
“지옥의 가장 암울한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도대체 이 문구는 어디에서 온 걸까? 원서 미리보기를 봐도 나오지 않던데.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신곡을 패러프레이즈한 문구라고 하던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