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김경집 지음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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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교회는 건강한가?’라는 질문으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시작하고 싶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계 지도자는 배임과 횡령죄로 재판을 앞두고 있고, 성직자들의 각종 추문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여전히 성장지상주의와 대형교회화는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인의 수는 날이 갈수록 줄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사회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기독교계의 권위는 이미 땅에 떨어진지 오래고,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은 요원해 보이기만 한다.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의 저자 김경집 교수는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각성하고 다시 한 번 교회일치운동에 전념할 것을 이 책을 통해 주문하고 있다.

 

저자는 우선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가 하나가 될 것을 주장한다. 그러기 위한 첫 걸음으로 기독교 정경인 성경의 일치화가 이루어져 할 것이다. 기독교 신자로 왜 여전히 우리는 고어투와 한문투로 된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훨씬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쉬운 길이 있는데 굳이 약대(낙타)나 애급(이집트) 같이 보통 사람이 들으면 알 수 없는 말을 써야 하는지 이해불가다. 그것은 마치 중세시대 사어(死語)로 된 라틴어 성경을 고집했던 성직자들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 든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특권이었던 시절 말이다.

 

김경집 교수는 누구나 다 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존의 시각과는 달리 해석한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티누스의 호구 조사 때문에 만삭의 몸을 한 아내 마리아와 요셉은 고향 베들레헴을 찾는다. 베들레헴의 여관은 이미 만원이었고, 요셉 가족은 어쩔 수 없이 마구간에 기숙하게 된다. 문제는 이 불쌍한 가족을 외면한 이들이 바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라는 지적 앞에서 순간 뜨끔해졌다. 이기적인 나의 모습을 거울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건강한 영성을 가진 신앙인이라면, 풍찬노숙하는 요셉 가족을 외면하고 편안하게 잠을 이룰 수가 있었을까 하는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명예살인(honor killing)이라는 야만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천년 전 성령으로 잉태한 처녀 약혼녀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인 용기 있는 남자 요셉에 대한 분석도 예사롭지 않다. 착하고 선량한 청년 요셉은 약혼자 마리아를 보호하기 위해 씨족사회를 떠나 살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지금 같이 교통이 발전한 시대에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해서 사는 일쯤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유목사회에서 정든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성경에서 찾아낸 작은 서사를 예리하게 분석해내는 저자의 능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예수 그리스도는 짧은 공생애 동안 수많은 비유로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하지만 당시 직접 예수 그리스도를 대했던 열두 제자들은 스승의 설명 없이는 하나님나라의 신비를 일깨우는 계시를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요즘 표현으로 찌질하기 그지없다. 명실상부한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등장하는 베드로를 보자. 그의 직업은 어부로 안식일조차 지키기가 쉽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았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굶기를 밥먹듯 했을 것이고 멸시와 탄압도 이겨내야 했다. 어쩌면 그들은 세속적인 욕심을 가지고 메시야를 따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나라의 기쁜 소식(복음)을 듣고 자각한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그 누구보다 앞장섰다. 이런 사도들의 영광 이전에 있던 고난에 대해 우리는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신앙공동체 리더를 세우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처럼 보잘 것 없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배제되고 있지는 않은지 저자는 조용한 목소리로 묻고 있다.

 

중세이래로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행사하던 교회는 마르틴 루터와 지오다노 브루노 같은 종교개혁가들을 파문에 처하고, 이단으로 몰려 화형에 처했다. 시대를 앞선 이런 예언자들의 고난은 외면하고, 제사장의 역할만 하려는 이 땅의 교계 지도자들에게 저자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근본주의에 입각한 한국 교회의 주류 보수교단은 하나님나라의 구현을 위한 사랑의 실천이라는 기독교 정신의 본질보다 그 외형적인 면에 치중하는 형식의 권위를 강조하며 사회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귀를 닫고, 점점 더 특정한 기득권층을 위한 종교화되고 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이러한 진단을 바탕으로 저자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잘못된 신학에서 찾는다. 나만 잘살면 된다는 기복신학, 오로지 성장만이 선이라는 번영신학, 민주성이 결여된 권위주의와 근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냉혹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종교학자 제임스 파울러가 제시한 신앙 발단 단계이론을 통해 올바른 신앙의 성장을 권면한다. , 이제 모든 문제에 적용되는 해답은 아니지만 필요한 솔루션이 구체화됐다. 문제는 인식의 전환과 그에 따른 실천이 남아 있다. 다시 한 번 성경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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