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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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미친 놈이 다 있지.”

 

밀워키의 살인귀 제프리 다머라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다는 조이스 캐럴 오츠의 픽션 <좀비>의 첫 이미지는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죽지 않고 이승을 헤매는 어쩌면 불쌍하기 짝이 없는 ‘좀비’가 등장하는 소설일 거라는 예상으로 조이스 캐럴 오츠의 <좀비>와 만났다. 그런데 소설에 나오는 좀비는 좀 달랐다. 그 좀비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희생자를 좇는 어느 살인자의 기록이더라.

 

주인공은 쿠엔틴은 늦깎이 대학생으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마운트 버넌의 교외 유니버시티 하이츠에서 학생들을 세입자로 받는 건물의 관리인이다. 아버지를 교수로 둔 유복한 가정의 평범한 군상 중의 하나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말이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은 쿠엔틴의 전과다. 십대 소년을 성추행했다는 전과로, 그는 현재 보호관찰 중에 있으며 정기적으로 심리학자와 만나 집단치료를 받고 그 결과가 당국에 보고된다. 한 마디로 과거에 작은 실수가 있었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갱생의 길을 걷고 있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표면의 모습이 주인공 쿠엔틴의 모든 삶의 지표를 있는 그대로 말해 주는 걸까. 바로 이 지점에서 소설 <좀비>는 일상에서 위장된 살인자의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좀비>는 제3자의 시선에서 본 살인자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살인자 자신의 기록이다. 조이스 캐럴 오츠는 정말 냉정한 시선으로 될수록 작가 자신 감정의 개입 없이, 선악에 대한 판별을 할 수 없었던 연쇄살인자의 실상을 재현해내고 있다. 흔히 연쇄살인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에서 그렇듯, 쿠엔틴 역시 “내 좀비”를 만들겠다고 부랑자, 마약중독자나 노숙자 같이 연고가 없어 사라져도 찾을 이가 없는 이를 상대로 끔찍한 범죄를 감행한다. 게다가 용의주도하게 아무도 자신을 의심하지 않게 가능하면 멀리까지 나가서 범행 대상을 물색한다. 어려서 자신의 성적 정체성 때문에 아버지와 심각한 불화를 겪은 쿠엔틴은 타인의 자유의지를 무시하고 자신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좀비를 만들겠노라는 망상에 빠져, 독학으로 전두엽 수술을 공부하고 실천에 옮긴다. 소설은 플래시백 기법을 이용해서, 현재의 시점에서 쿠엔틴의 과거를 기술하고 그동안 그가 저지른 범죄를 재구성한다.

 

대부분의 공포소설에서 그렇듯, 아드레날린은 범인의 끔찍한 범행 순간이나 아슬아슬한 추격 장면에서 교감신경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소설 <좀비>에서는 기존의 상례를 거부한다. 겉으로 보기에 지극힌 정상적인 캐릭터인 쿠엔틴처럼 홀로 사시는 할머니의 정원을 돌보고 다정다감한 손자, 교수 아버지의 지원을 받는 착실한 아들 혹은 커리어우먼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누나의 동생이 끔찍한 범죄의 주인공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는다. 그래서 사실 소설을 읽는 동안, 하이라이트 범행이었던 ‘다람쥐’ 사냥 때문에 이 연쇄살인자가 경찰에 체포되고,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쿠엔틴 가족이 받을 충격의 여파를 기대했다. 아니, 어쩌면 이런 끔찍한 범죄자가 철저하게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평범한 얼굴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조이스 캐럴 오츠가 그리는 공포의 근원인지도 모르겠다.

 

보통 같았으면 소설 <좀비>의 모델이라는 제프리 다머를 검색해 봤을텐데, 소설에 몰입하기 위해 다른 정보를 의도적으로 접하지 않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그는 정말 평범해 보이는 백인 청년이었다. 하지만 구글이 토해내는 그의 엽기적인 범죄 행각에 대한 기술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제프리 다머가 소설의 쿠엔틴처럼 실제로 희생자의 ‘기념품’을 보관하고, 희생자를 좀비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을 읽으면서 현실이 문학적 상상력을 능가하는 공포의 원형을 제시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뱀다리] 부제로 따라 붙은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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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양이 2012-04-30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현실이 문학적 상상력을 능가하는 공포의 원형을 제시한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