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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 측 증인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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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출간된 실비아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라는 책의 서평을 읽었다. 이 책에서 현대 자본주의는 철저하게 계서화된 남성우월주의를 바탕으로 여성의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는 비평을 접할 수가 있었다. 여성이 직장에서 남성과 같은 일을 하면서 보수가 남성의 1/3 밖에 되지 않는다는 어느 보고서가 있었다. 자본주의를 굴리기 위한 노동력의 재생산과 보육이라는 중요한 축을 구성하고 있으면서도 여성에 대한 착취와 억압 구조는 여전하다는 이야기다.

 

왜 추리소설 리뷰에 앞서 이런 딱딱한 이야기를 하느냐고? 간단하다. 고이즈미 기미코의 <변호 측 증인>에는 바로 그런 여성에 대한 사회의 모순된 시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참 그전에 한 가지 고백할 게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치명적인 오독을 했다. 처음의 서장에서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주인공 미미 로이(야시마 나미코)의 남편인 야시마 스기히코라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였다.

 

작가는 현재의 결과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플래시백 기법으로 사건의 전모를 밝혀 나간다. 미미 로이는 잘 나가는 클럽 레노의 에이스 스트립 댄서 출신이다. 그런 그녀가 정말 굴지의 기업인 야시마 그룹의 후계자 스기히코와 결혼하게 된 거다. 그 다음 스토리는 좀 빤하다. 그렇게 잘난 집안의 사람들이 스트립 클럽에서 뭇 남성들 앞에서 벌거벗고 춤추던 스물두 살의 여자를 며느리로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다.

 

일단 야시마 집안의 골칫덩이의 열렬한 구애로 결혼에 골인은 했지만 그 다음이 더 걱정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 막장드라마의 흔한 내러티브 전개다. 문제는 살인사건이다. 괴팍하고 제멋대로인 야시마 그룹의 총수인 스기히코의 아버지가 살해된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남편이 범인이라고 생각한 미미 로이는 살해 현장에서 남편의 흔적을 없애는 증거 인멸을 시도한다. 문제는 남편이 아니라, 자신이 범인으로 지목된 거라는 것이다. 게다가 존속살해죄로 사형이 선고됐다. 이제 엄청난 유산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미미 로이는 과연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인가.

 

프랑스 대혁명으로 기존의 계급 사회의 질서를 타파했다고 생각해왔는데, 21세기 자본에 의한 계급의 고착화는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에 입각한 양극화 현상은 자본주의를 긍정적 발전 방향이 아닌 부정적 방향으로 인도하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극복할 수 없는 빈부의 격차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재벌가의 아들과 결혼해서 신분상승을 꿈꾸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드라마가 대중의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은 바로 이런 빈부의 격차로 인한 사회문제에 대한 반증이다. <변호 측 증인>의 주인공 미미 로이는 본인이 의도했던 그런지 않던 간에 누구나 부러워하는 집안의 며느리로 신분이 바뀌었다. 골칫덩이긴 하지만 류머티즘을 앓으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회장의 뒤를 이을 후계자의 청혼을 거절할 여자는 드물 것이다. 게다가 다른 일도 아니고 스트립 댄서라는 그녀의 전직은 야시마 집안과의 갈등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

 

고이즈미 기미코는 한술 더 떠서 새로운 안주인을 자신들의 상사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야시마 집안과 기존에 관계를 맺고 있던 이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스기히코의 누이인 라쿠코와 그녀의 남편인 히다를 시작으로, 노회장의 수발을 담당하는 집사와 가정부, 기사까지도 미미 로이의 존재를 부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산 상속이라는 범행 동기가 뚜렷한 미미 로이가 범인이 아니라면 누가 범인이겠는가. 그렇다고 처음 그대로의 설정으로 가는 것도 추리소설 애독자의 기대에 대한 배신이겠지만.

 

개인적으로 책을 펼 때,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성분 함량표”다. 고전의 반열과 대반전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다. 그건 아마 일본에서의 이야기겠지. 사실 고이즈미 기미코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다. 어쩌면 장르 소설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낮은 점수는 ‘선정성’이라고 되어 있는데, 어쩌면 주인공이 스트립 댄서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너무 낮게 평가된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역설적이게도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는 말은 그 결말에 대한 예상도 어느 정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고이즈미 기미코의 <변호 측 증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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