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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양억관 옮김 / 이상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이라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걸작 <제로의 초점>을 읽었다. 이 추리소설의 레퍼토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26세의 이타네 데이코는 전후 일본의 여느 청춘들처럼 선을 보고, 열 살 연상의 우하라 겐이치와 결혼했다. 그리고 채 신혼의 단꿈이 가시기도 전에 남편인 겐이치가 실종된다. 저자 마쓰모토 세이초는 새색시 데이코의 실종된 남편을 찾는 긴 여정을 통해 전후 일본 사회의 명암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광고대리업에 종사하는 데이코의 남편 겐이치는 도쿄와 가나자와를 오가는 생활을 한다. 도쿄 본사로 발령이 결정난 겐이치가 가나자와로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 떠났다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전에 겐이치와 떠났던 신혼여행에서 데이코는 남편에게 여자가 있었다고 직감한다. 여자 특유의 직감이 발동하는 순간, 자신과의 결혼이 어쩌면 남편의 미스터리한 실종사건의 단초가 되었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생전 처음 가보는 북국의 타지에서 데이코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남편의 발자취를 추적한다. 전화도 변변히 없었던 1950년대 패전국 일본에서 실종된 사람을 찾기란 난망하기만 하다. 변변하게 교제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혼을 한 데이코는 그 과정에서 자신과 결혼하기 전에 남편이 어떤 일을 했는지 하나씩 알게 된다. 중일전쟁 때는 일본군으로 중국 전선에 투입이 되었고, 전후에는 잠시 동안 경찰 업무를 수행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가 사회파 미스터리를 장기로 삼는다고 해서 잠시 중국전선에 배치되었었다는 겐이치의 전력에서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난징대학살 같은 사건으로 발생한 트라우마 때문에 이제 막 결혼한 새신랑이 일상에서 탈출한 것이 아닌 하는 그런 상상 말이다. 내 추측은 틀렸고, 바로 다음 경력이 소설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데이코의 남편 겐이치의 실종은 시작에 불과하다. 데이코처럼 겐이치를 찾아 나선 우하라 소타로(겐이치의 친형)와 가나자와에서 광고회사 동료로 데이코를 돕던 혼다가 연달아 살해당하면서 단순해 보이던 실종사건은 확대일로로 치닫는다. 도대체 겐이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는 모두 저자가 어떤 식으로든 독자에게 납득할 만한 결과를 제시해 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같은 게으른 독자는 작가가 소설의 곳곳에 예리하게 준비해 놓은 단서를 추적하기보다 작가가 마련해 놓은 설명을 더 기대한다. <제로의 초점> 역시 마찬가지다. 특이한 점은 정말 평범한 가정주부가 사라진 남편을 찾는다는 설정과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전제를 마쓰모토 세이초가 잘 조합했다는 것이다.
패전국 일본의 전후 사정에 대해 좀 더 접근할 수 있었다면 나의 <제로의 초점> 독서는 좀 더 재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미스터리 해결의 중요한 단서로 준비한 두 장의 사진은 평범해 보였지만 기대대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미스터리의 가장 기본인 등장인물 중에 범인이 있다는 기본 진리는 사회파 미스터리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책이 출간된 시점으로 보면 거의 고전에 반열에 오를 정도라고 추정되는 <제로의 초점>은 역시 미스터리 기본에 충실하다. 너무 기교적이지 않고, 단순한 구도면서도 기본을 충실하게 재현해낸 일본 추리문학의 전설은 역시나 명불허전이었다. 아, 처음에 나오는 가나자와가 위치한 노도 반도의 지도는 숙지할 필요가 있다. 익숙하지 않고 낯선 북국의 지명 때문에 몇 번씩이나 앞으로 돌아가 데이코의 여정을 되짚어 봤다.